장애인체육,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체육이라는 공식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때는 1981년이다.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해’ 기념사업으로 시작된 제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장애인체육의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고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장애인체육대회는 해마다 열리게 된다. 나는 장애인재활협회 전북지부 사무국장직에 자원봉사로 근무하면서 매년 전북지역 장애인체육 애호인들을 인솔해 대회에 참가했다. 연습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연습할 장소도 없는 것이 80년대초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88년부터 장애인체육 실질적 시작

1회 대회 때는 5개 종목의 운동경기가 있었는데 여의도 고수부지와 정립회관등지에서 열렸다. 그후 경기종목은 7개로 늘어나고 대회의 운영주최도 바뀌게 된다. 1985년 장애인체육대회는 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가 맡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곧바로 열리게 되는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장애인체육의 대부격으로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난후 서울 장애인올림픽이 열리게 되고 우리나라의 장애인체육 애호인들(장애인체육선수)은 세계장애인체육선수들의 경기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장애인스포츠의 진수를 맛 보게 된 장애인체육경기였다.

서울장애인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88년 11월 나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사카장애인스포츠센타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는 장애인스포츠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일본선수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경기종목별로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전문선수훈련과 일반 장애인들의 여가선용을 위하여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부러움을 느꼈다. 선수들의 자세 그리고 많은 시설 지도요원들, 잘 짜여진 계획표에 의한 관리 시스템 등.

1989년 고베시 개최 아·태장애인경기대회를 보면서 고베시당국이 이번 대회를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국내선수들의 양성과 훈련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면서 장애인스포츠를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고난 후 한국의 장애인복지체육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올림픽이 끝나고 난 후 조직위원회가 해체되면서 곧바로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장애인체육, 스포츠정책면에서는 실패

우리나라의 장애인체육은 국내대회를 포함해서 89년 일본 고베시개최 아·태장애인경기대회, 94년 북경대회, 96년 태국대회에 선수를 파견하는 일과 2002년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를 치르기까지 한국의 장애인체육은 양적으로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실제 스포츠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실패한사업이다.

대회를 앞두고 장애인체육선수들의 궐기는 전적으로 정책입안자들의 실수인 것이다. 장애인체육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의지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정책판단의 미스였을까. 장애인체육이 시작된 지 24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장애인체육의 현재를 다시 짚어보고 바르게 정립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박제완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1993년부터 장애인직업생활상담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