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태양은 이글거렸고 대지는 목말랐다. 채소나 과일 값도 폭등했고 메마른 땅에서는 잔디도 시들어 갔다. 그러자 삼락공원에 설치 된 다이나믹 파크골프장도 8월 1일부터 15일까지는 문을 닫았다.

16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지만 9월 1일의 대회를 앞두고 회원들은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19호 태풍 솔릭이 지나가고, 21호 태풍 제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서울 경기 강원도 등에서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나 부산 경남 등 아래 지방은 비가 부족했다.

비 내리는 파크골프장의 아침. ⓒ이복남

‘어제는 비가 내렸네’ 유행가 가사가 아니라 8월 31일 부산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도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일 즉 9월 1일에는 ‘2018년 부산장애인총연합회장배 어울림파크골프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부산장애인골프 김정포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은 노심초사했다.

이번 대회는 제·호·영 대회였다. 제·호·영이란 제주, 호남, 영남이다. 각 지방 단체장들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연달아 대회가 있어서 연기할 날짜도 없었다. 결국 천재지변이 아닌 한 우천임에도 경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필자는 이번 경기에서도 선수는 아니고 심판(기록인)으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31일 오후 내일(9월 1일) 대회는 예정대로 개최한다는 문자가 왔다.

비속에서 치르는 파크골프 경기. ⓒ이복남

우르르 쾅쾅 밤새도록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고 비는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대회는 예정대로 개최한다 했으므로 비 내리는 삼락공원 파크골프장으로 향했다. 파크골프장으로 가는 길, 낙동강변을 따라가노라니 저 위쪽에서도 폭우가 내렸는지 낙동강은 누런 황토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낙동강물이 저렇게 만수위이다 보니 파크골프장에서도 물이 빠질 데가 없으리라.

아침 8시 쯤 경가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대부분의 선수들이 천막아래서 짐을 풀고 비옷을 차려 입는 등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도클럽 이태영 회장은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데 어디선가 지원을 받았다며 전신을 덮을 수 있는 연두색 비옷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이태영 회장도 이번경기에는 선수가 아니라 심판(기록인)으로 참가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기에 이태영 회장이 웃으면서 “파크골프장이 물에 잠기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말했다. “왜요? 나무에 오른다면서요?” 이태영 회장이 다리는 힘이 없지만 팔은 힘이 있으니까 나무는 오를 수 있을 거라는 농담을 했던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 오는 버스를 보고 저 버스는 몇 시에 출발했을까 했더니 옆에서 누군가가 어제 저녁에 왔다고 일러 주었다.

오른쪽 연두색이 전동휠체어용 비옷. ⓒ이복남

경기 시작 전에 정복만 경기위원장이 심판(기록인)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대부분의 대회에서는 그 구장에 맞는 로컬룰을 제시하는데 특히 이번 대회에는 다른 규정이 하나 있었다. 김정포 회장 등 임원진에서 물이 덜 고이는 곳으로 홀을 옮기기도 했으나 어쩔 수 없는 홀이 몇 군데 있었다. 파크골프 공이 물에 빠지면 공이 나가지를 않는다. 그래서 공이 물에 빠지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1타를 가산하고 물이 덜 고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군데 홀에서는 그런 지점에 빨간색으로 물-티 표시를 해 두었다. 그러나 공이 물 빠짐을 위한 도랑에 빠질 경우에는 무벌타로 옮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는 개인전 36홀 스트로크방식인데 비가 오는 관계로 오전에는 9홀만 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비가 갠다고 했으므로.

오전 9시부터 대회는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비가 내렸기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나름대로 비옷을 준비해 왔고 미처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주최 측에서 일회용 비옷을 제공했다.

이번 대회에는 200 여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비가 내린 탓에 몇 사람은 빠진 모양이다. 필자는 B코스 8번 홀의 심판(기록인)을 맡았다. 전에도 대회에 비가 내린 적이 있었는데 비가 내리면 선수들도 공을 치기가 어렵지만 심판(기록인)도 곤란했다. 기록지가 비에 젖어서 글이 잘 안 써지기 때문이다.

장애인 그룹부터 경기는 시작되었다. 필자가 맡은 B코스 8번 홀은 앞에 물이 많아서 원하는 사람은 1타점을 가산하고 앞에 있는 곳으로 공을 옮길 수가 있었는데 앞에 있는 곳은 홀컵에서 10m 쯤 떨어진 오른쪽에 빨간색 물-티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OB-티는 따로 있었다. 그러자 몇몇 선수들은 처음부터 2타를 가산하고 물-티에서 공을 치자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 된다. 왜냐하면 1타에서 물잔디를 건너 홀컵 가까이 붙이는 선수들도 있었고 그래서 2타나 3타에 넣기도 했던 것이다.

김남희 전 의원에게 꽃다발 증정. ⓒ이복남

비가 내리므로 선수들은 공치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선수들은 자리를 잡기 위해 애를 먹었다.

개회식은 11시 40분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선수들이 한창 경기 중인데도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마이크 소리는 전 구장에서 다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개회식 취재를 해야 되는데……. 선수들이 계속 오고 있어서 홀을 비울 수도 없었다. 선수가 안 오는 틈을 타서 7번 홀 심판(기록인)에게 부탁했다. 7번 홀은 도그레그 홀이라 심판(기록인)이 두 명이었던 것이다.

본부석에 마련된 개회식장에 가보니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조창용 회장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대한장애인골프협회 김순정 회장은 격려사에서 전국의 파크골프 대회를 다니다보니, 대부분이 시도에서 지원하고 개최하는데 이렇게 민간단체에서 개최하는 파크골프대회는 처음이라면서 조창용 회장에게 고맙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삼락파크골프장에 파고라(휴게시설), 에어건(먼지털이), 휠체어 충전기 등을 갖추도록 여러 가지로 힘써 준 부산광역시시의회 김남희 전 시의원에게 김정포 회장이 감사의 꽃다발을 증정했다.

기존의 본부석이 온통 물바다라 본부석을 물이 덜 고인 곳으로 고른 게 하필 A코스 9번 홀 앞이었다. 그래서 9번 홀까지 온 선수들은 개회식 동안 대회를 멈추어야 했고, 대회가 속개 되어도 그곳이 9번 홀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게 선수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8번 홀로 가서 심판(기록인)을 했다. 오전 경기가 다 끝나고 본부석으로 오니 천막아래 조창용 회장이 있었다. 이번 대회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조창용 회장이 1천만 원을 기증하여 개최한 행사였다.

“인사말을 하면서 노숙자가 되지 않는 한 이 대회를 계속하겠다고 하시던데, 이 대회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장배이고, 연합회장은 임기가 있잖아요?”

“연합회장 임기가 끝나면 조창용배라도 할 터이니 염려 안 해도 될 겁니다.”

조창용 회장이 정치인도 아니니 설마 빌공자 공약(空約이야 하겠냐마는…….

비는 그치고. ⓒ이복남

그제야 필자도 점심을 먹으러 갔다. 비는 오는데 오늘따라 봉사자가 없었다. 장애인들이 우산도 써야 되고 식판도 들어야 하므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졌다. 비가 오는 줄 알았으면 차라리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나눠 주든가, 비가 오는데 목발을 짚는 장애인은, 한손장애인 등등은 어쩌란 말인가.

오후 경기가 시작 될 무렵 비는 그쳐서 오후 경기는 예정대로 18홀을 한다고 했다. 비가 그쳤으므로 비옷도 벗고 우산도 접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 왔다. 잠자리도 날아왔다. 매-엠-맴-맴 귀청이 떠나갈 듯 매미도 울기 시작했다.

나비나 잠자리 날개는 비에 젖으면 더 이상 날지를 못한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태풍이라도 올라치면 나비나 잠자리 등 곤충들은 나뭇잎 뒤에 숨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정말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비가 그치자마자 나타난 것일까? 필자는 심판(기록인)이고 연방 선수들이 와서 더 이상 나비나 잠자리를 쫓아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가 올 때는 매미도 울지 않는다. 매미의 유충은 7년 쯤 땅속에서 살다가 우화등선하여 성충이 되면 한 달쯤 살다가 간다고 한다. 그야말로 긴 유년기를 보내고 짧은 성년기 동안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 한 달 만에 사라지는 것이 매미의 일생이다. 매미의 소리는 사실 울음이 아니라 노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수컷만 내는 구애(求愛)의 노래다. 그러니 비가 와서 생사가 갈릴 판에 누가 사랑을 하겠는가. 비가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인 모양이다.

오후에는 18홀을 돌다보니 경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땅이 질퍽거려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장애인 선수들은 긴 한숨을 쉬었다.

장애인 남자 A그룹 수상자. ⓒ이복남

동점자는 B코스 9번 홀에서 백-카운트로 결정했다. 마지막 점수를 체크하는 동안 순위에서 멀어진 지방 선수들은 먼저 출발하기도 했다.

시상을 하러 나온 조창용 회장은 낮에 필자가 물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면서 이 대회는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회는 총 6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치렀는데 장애인 남자부 A그룹( PGW. PGI. PGST1)과 B그룹(PGST2. PGST3), 장애인 여자 A그룹(PGW. PGI. PGST1)과 B그룹(PGST2. PGST3) 그리고 비장애인 남자 그룹과 비장애인 여자 그룹이 있었다. 수상자는 1~5위까지 시상했는데 장애인 여자부는 참가자가 많지 않아서 3위까지만 했다. 시상금은 1위 50만원, 2위 30만원, 3위 20만원, 4위 10만원, 5위는 5만원이었다.

장애인 남자 B그룹 수상자. ⓒ이복남

장애인 남자 A그룹( PGW. PGI. PGST1)

1위 박재현 대구(101), 2위 조성태 영도(103), 3위 이보화 울산(103), 4위 윤원석 대구(104), 5위 김서중 광주(104)

장애인 B그룹(PGST2. PGST3)

1위 이광호 경남(95), 2위 정치한 에이스(97), 3위 홍상희 대구(97), 4위 이순복 울산(102), 5위 천명재 에이스(103)

장애인 여자 A그룹(PGW. PGI. PGST1)

1위 임외자 경남(112), 2위 설정애 광주(113), 3위 조영경 경남(116)

장애인 여자 B그룹(PGST2. PGST3)

1위 박추임 전남(101), 2위 김선옥 경남(108), 3위 이영선 경남(108)

비장애인 남자 OPEN 그룹

1위 이창희 부산진(94), 2위 최진규 부민(94), 3위 이수연 이토(95), 4위 신용덕 영도(96), 5위 이진식 울산(99)

비장애인 여자 OPEN 그룹

1위 임순필 울산(107), 2위 황옥자 삼목회(108), 3위 김영자 부경(111), 4위 김정애 광주(111)

5위 이영옥 부산진(112). *선수 존칭 생략.

대회 참석자들. ⓒ이복남

모든 경기는 끝났다. 그러나 전국대회인 경우 선수들은 공을 치기 전에 자신이 소속된 팀이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공을 쳐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심판(기록인)이 다시 물어 보면 신경질을 내기도 했는데 비가 오는 탓에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랬으리라.

어느 분의 증언(?)에 의하면 비오는 날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로 한손장애인은 공을 멀리 치려다보니 비에 젖은 골프채의 그립(손잡이)이 미끄러워 공은 5m를 채 못 갔는데 채는 20m를 날아가더라고 했다.

이번 대회를 개최해 주신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조창용 회장을 비롯하여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참가해 주신 선수들과 심판(기록인)여러분, 비가 내리는 탓에 물빠짐 도랑을 파는 등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신 권정대 고문,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신 김정포 회장과 강신기 부회장, 송정애 전무 등 모두 모두 정말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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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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