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씨가 열심히 말하는 것을 이창순씨는 듣고만 있다. 방송내내 이창순씨에게는 거의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소장 김정열·이하 연구소)가 지난 12일 방영 8주 만에 막을 내린 MBC 오락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한 코너인 ‘신동엽의 D-Day'에 대한 모니터 보고서를 내고 조기 종영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연구소는 “이번 조기종영 사태는 장애인과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에 이해가 부족한 제작진의 섣부른 시도로 불거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연구소는 지난 5월 8일부터 6월 13일까지 ‘신동엽의 D-Day' 코너를 집중 모니터링하고, 작성한 모니터보고서를 지난 15일 방송위원회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에 제출한 상태.

연구소측은 먼저 “장애인이 오락 프로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에 기용되어 MC로 배정됐다는 것과 장애인 문제를 오락 프로의 소재로 채택해 소외계층인 장애인의 현실이 방송을 통해 보여질 수 있었던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전제한 이후, 조목조목 이 코너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연구소가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신동엽의 D-Day' 코너의 문제점은 ▲제작진의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족 ▲도전과 장애극복-인간승리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만남 ▲장애인 MC 이창순씨의 형식적인 등용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제작진의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족=연구소측은 “6회 방영분에서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사용이 통일되지 않고 장애인, 장애우 등 그때그때 다른 표현이 사용됐으며, 심지어는 ‘정상인’이라는 장애비하용어가 그대로 자막에 나오기도 했다”며 “이는 제작진의 장애인권에 대한 기본적 인식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또한 “지상파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MC의 기용’이라는 일면 파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장애인 MC의 역할은 거의 부재하여 형식적이고 상징적 의미만을 강조하는 소품적 역할로 전락”했다며 장애인MC 이창순 씨의 방송 분량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 이창순씨의 별명인 ‘슈퍼맨’과 관련해서도 연구소측은 “장애인 MC에게 ‘슈퍼맨’이란 별칭의 사용은 장애를 극복하고 방송인으로 거듭난 ‘대단한’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정한 듯 하지만, 이 부분도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본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반한 것이므로 부적절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연구소측은 코너의 MC 신동엽씨와 관련 “장애인 가족을 둔 MC 신동엽의 배치는 제작진의 의도적 설정인 성격이 강함에도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심정적 동정심이 방송 곳곳에 묻어나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전과 장애극복-인간승리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만남’=연구소측은 “장애인이 스스로 제안한 미션을 성공해야만 휠체어 리프트 차량을 기증하는 구성부터가 문제”라고 질타했다.

최근 불거지는 오락 프로의 가학적 측면에 매달린 오락성 추구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힘들어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끔 일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연구소측은 “장애인의 도전은 여전히 극복이며 인간승리로 봐야하냐”면서 “지금까지 방송은 장애인이 하면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고, 그러한 도전이 성공하면 인간승리였다. 마지막회 장애인국가대표 수영선수의 한강도하 도전만 봐도 ‘무리한 도전’이 ‘불가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장애인MC 이창순씨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연구소측은 “스타와 장애인의 2MC체제를 도입한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라 대대적인 홍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이창순씨를 게스트만도 못한 역할로 비추어 장애인을 수동적인 이미지로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측은 “방송에서 아무 목적의식 없이 장애인 MC를 등용한 결과 이창순씨가 방송에 등장하는 경우는 코멘트와 인서트 화면 차원에서 평균 3,4회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연구소측은 장애인의 방송참여와 관련 향후 과제에 대해 “이번 조기 종영과 같은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장애 극복의 신화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방송사는 방송제작진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방송에서의 장애인 참여를 적극 고려, 실천해야한다. 즉, 방송기획, 제작과정에서 장애인방송 모니터요원을 활용하고 MC, PD, 방송작가 등과 같은 장애인방송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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