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 범어사 일주문.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예 장애인 상담실입니다" 대답도 채 끝나기전에 "원장님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필자가 잘 아는 6급 장애인이었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내용인즉 1급 장애인 한사람을 데리고 단양 구경을 갔는데 동굴을 구경하려고 하니까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담당자와 옥신각신 다툼이 있었던 터라 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단양의 동굴이라. 잠시 필자도 말을 잊었다. 장애인복지시책에 고궁, 능원, 국·공립박물관 및 미술관, 공원은 장애인 본인은 물론이고 1~3급 장애인은 보호자까지 입장요금이 무료이다. 그리고 국·공립공연장 및 공공체육시설 요금은 50% 할인을 하는데 단양의 동굴이라면 어디에 속하는지 헷갈렸던 것이다. 한숨을 돌리고 차근차근 이야기 해 보라니까 문화재라는 것이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 할 테니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로 전화를 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문화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문화관광부로 전화를 하니 문화재청으로 하라고 했다. 문화재청에 알아보니 문화재는 그 지역에서 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단양군으로 전화를 했는데 장애인 면제조항 같은 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온 전화에 그런 사실을 알렸고 결국 그 장애인은 입장료를 내고 구경을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범어사를 찾아갔던 장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 공립 공원은 무료 입장인데 입장료를 내라고 하니 말이 됩니까?" 열을 받아서 입구 관리인과 대판 싸우고 범어사 관람을 했다던가 안했다던가.

범어사 문화재 관람료 안내문.

며칠 후 필자가 직접 범어사를 찾아가서 알아보니 입장료가 개인은 1000원이고 차량은 2000원인데 걸어가는 장애인은 면제를 해주고 있으나 차량은 50%할인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법에는 면제 조항이 없지만 자기네들이 장애인에게 선심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범어사는 한국사찰 삼대 본산 중의 하나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호국의 대가람으로 삼층석탑(보물 제250호), 대웅전(보물 제434호), 일주문(지방유형문화재 제2호), 당간지주(지방유형문화재 제15호),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6호)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명찰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관련 법조문을 찾았다. 문화재보호법[일부개정 2002.12.30 법률 제06840호] 제39조 (관람료의 징수) ①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ㆍ보유자 또는 관리단체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관람료는 당해 문화재의 소유자ㆍ보유자 또는 관리단체가 정한다.

관련조항 어디에도 장애인 면제조항은 없었다. 부산시의 문화재 관련조례를 찾아보았다. 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보호조례(개정 2003. 7. 18 조례 제3858호) 제29조의 관람료의 징수조항은 문화재보호법 제39조를 그대로 베껴 놓았다. 결국 문화재관람료는 소유자 또는 보유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 장애인요금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경제적 부담 경감조항에 문화재 관람료만 제외

장애인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에 장애인복지법 제27조 경제적 부담의 경감 조항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투자기관, 지방공기업법에 의한 지방공사 또는 지방공단은 장애인 및 장애인을 부양하는 사람의 경제적 부담경감을 도모하고 장애인의 자립촉진을 위하여 세제상의 조치, 공공시설 이용료의 감면등 기타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못 박고 있다.

이 같은 입법 취지에 따라 민간에서 운영하는 항공료나 연안여객 전화요금까지 장애인은 할인을 해주고 있는데 도나 시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입장료를 받으면서 장애인 할인을 안 해주다니 너무 한다 싶어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서울특별시 문화재보호조례(2002.7.15 개정) 제20조에 장애인면제 조항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서울특별시문화재보호조례(2002.7.15 개정)

제20조(시 소유 문화재의 관람료 면제)

1. 국빈, 외국사절단 및 그 수행자

2. 12세 이하의 소아 및 65세 이상의 노인

3.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수첩을 소지한 자

4. 국·공립기관에서 요양 중에 있는 상이군경

5. 공무수행을 위하여 출입하는 자

6.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의 규정에 의한 국가유공자 및 그 배우자와 국가유공자의 유족 중 국가유공자 유족증서 소지자. 이 경우, 상이등급 1급에 해당하는 국가유공자의 경우에는 보조자 1인을 추가한다.

7. 기타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그렇다면 다른 시·도는 어떨까. 16개 시·도의 문화재 관련 조례를 전부 다 뒤졌다. 경기도와 경상남도가 서울시 문화재조례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고 충청남도에서는 면제조항은 있었으나 장애인은 빠져 있었다. 결국 서울ㆍ 경기ㆍ 경남 외의 다른 시도에서는 문화재보호법 제39조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 장애인 면제 조항은 없었다.

사실 문화재관람료가 얼마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복지시책이란 이 땅의 서럽고 고통받는 장애인들에게 심리적 보상은 못해줄 망정 조금이나마 물리적 보상을 해주기 위함이다. 독일에서는 집안에 장애인이 한사람 있으면 그에 대한 지원비로 온가족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가족들로부터 우대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장애인이 어쩌다가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문화재를 찾았을 때 당연히 면제라고 알고 있었는데 매번 시비가 붙게 되니 동행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서 여지없이 짓밟히고 무너지는 자존심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더구나 일반사람들이 고궁ㆍ능원ㆍ박물관ㆍ미술관ㆍ공원 등을 생각할 때 문화재도 그에 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문화재 관람료도 당연히 면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면제가 안되고 있으니 곳곳에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나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제39조에 장애인 등의 면제조항을 예시하여 문제의 소지를 없애 주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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