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극본 설이나, 연출 박보람)은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린 동기 없는 살인이 급증하던 시절,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연쇄살인범들과 위험한 대화를 시작한다. 악의 정점에 선 이들의 마음속을 치열하게 들여 봐야만 했던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라고 한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0여 년 전 프로파일링이나 사이코패스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범죄심리분석 수사관 즉 프로파일러(profiler)가 생기게 된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형사들은 장래 프러파일러가 될 범죄심리분석관을 마땅찮아 했다. 그래서 범죄행동분석팀 국영수(진선규 분) 팀장과 송하영(김남길 분) 분석관, 정우주(려운 분) 통계분석관은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SBS

그러나 백준식(이대연) 형사과장과 허길표(김원해) 기수대장은 범죄행동분석팀을 믿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애써 팀의 와해를 막아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형사들은 연쇄살인이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했지만, 범죄행동분석팀 송하영(김남길 분) 분석관은 살인사건의 유형이 다르다며 두 명의 살인자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살인사건은 여전히 일어났다. 송하영은 두 명의 살인자가 존재한다고 했으나 살인에 사용된 흉기는 조금씩 달랐다. 형사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는데 송하영은 범죄양상이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살인사건에서 금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므로 그렇다면 사인을 즐겼다는 것일까.

송하영은 두 명의 살인자라고 했는데 그 중의 한 명에게 당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송하영은 몽타주를 그리자고 했다. 윤태구(김소진 분) 팀장은 사람들이 정신을 잃어서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몽타주를 그리느냐고 했다. 송하영은 법최면을 하자고 했다.

송하영 분석관의 브리핑. ⓒSBS

법최면은 최면을 이용하는 범죄 수사 기법으로 1999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후 흉악범죄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내거나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 등 다양한 현장에서 법최면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법최면을 통해 가름한 얼굴의 이마가 벗겨진 40대 정도의 남자 얼굴이 그려졌다. 그런데 몽타주하고는 전혀 다른 얼굴의 용의자가 잡혔다. 이름은 구영춘(한준우 분)이었는데, 성매매여성들을 납치했다가 잡혔단다.

기동수사대 김봉식(서동갑 분) 계장이 취조하는데 구영춘은 부유층 주택 침입 살인이 7건, 성매매여성납치 암매장이 11건이라고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확인해 봐야겠기에 국영수 팀장이 감식반과 동행하라고 했다.

구영춘의 입에 볼펜을 물리고. ⓒSBS

그런데 취조실에 혼자 있던 구영춘이 뒤로 넘어졌다. 다른 방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취조실로 뛰어 들어갔다. 구영춘의 수갑을 풀고. 송하영이 구영춘의 입에 볼펜을 물리고 구영춘이 발작하므로 발작을 못 하도록 다리를 눌렀다.

발작이 멈춘 구영춘에게 김봉식 계장이 “간질 있냐?”고 물었다. 윤태구 팀장이 그래도 수갑은 채워야 한다고 했으나, 구영춘이 찬바람 한 번만 쐬자고 해서 김봉식은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구영춘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구봉식이 화장실로 따라 들어가면서 윤태구 팀장에게 밖에서 지키라고 했는데 구영춘은 김봉식 계장을 치고 창문으로 달아났다.

필자는 드라마 속에 장애인이 등장하면 어떤 장애인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보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쓴다. 그러나 필자가 모든 드라마를 다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으면 이를 유심히 본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러면 지나간 회차를 돈을 주고라도 다시 돌려 보곤 한다.

발작하는 구영춘의 다리를 누르고. ⓒSBS

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철 소장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뇌전증 장애인에 대해 잘못된 정보로 시청자들에게 편견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첫째 간질이라는 병명에 편견과 비하의 의미가 있어서 뇌전증(腦電症)으로 변경되었는데 아직도 간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장애유형은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에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서 정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은 1981년에 제정되었으나 장애인등록은 1988년 11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당시의 장애유형에 뇌전증은 없었다.

2003년 7월 1일 법 개정에서 장애유형이 15가지로 확대되면서 뇌전증이 포함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뇌전증은 간질이라고 했다. 그 후 2014년 법 개정에서 뇌전증장애인으로 변경되었다. 드라마에서 이 부분은 자막으로라도 설명을 좀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둘째, 뇌전증 장애인에게 볼펜을 물리는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뇌전증장애인이 경련 발작을 일으킬 경우 고개만 옆으로 돌려주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2~3분 안에 깨어나는데 만약의 경우 입에 볼펜을 물린다면 볼펜을 깨물어 이를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뇌전증장애인이 경련 발작을 할 경우 고개만 옆으로 돌리고 주위에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가만히 두면 2~3분 안에 깨어나는데 드라마에서와 같이 다리를 누를 경우 더 발버둥을 쳐서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넷째, 드라마에서는 범죄자가 수갑을 풀고 도망가려고 일부러 발작을 가장하여 연출한 것 같아서 더욱 불쾌하다고 했다.

다섯째, 그러잖아도 뇌전증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한 터에 왜 하필 범죄인을 뇌전증장애인으로 설정해서 뇌전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정철 소장의 그 이야기를 듣고 뇌전증장애인이 나오는 회차를 다시 돌려보고, 시청자게시판에도 들어가 보았다. 맙소사! 이 노릇을 어찌할꼬? 온통 항의 글이었다. 가족 중에 뇌전증이 있어도 이런 내용을 쓸 수 있느냐는 글도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 ⓒSBS

김정철 소장은 필자에게도 항의 성명서를 보내왔다. 필자가 첫째와 둘째에서 나열했듯이 발작 후 응급처치하는 과정에서 ‘입에 어떠한 것도 넣지 않는다’, ‘몸을 누르지 않는다’ 등 당연시되는 대응 방법을 무시한 채 입에 볼펜을 물리고 몸을 강제로 눌러 발작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시청자에게 뇌전증 발작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성명서는 “교육에서 취업까지 뇌전증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과 함께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현실에 반하여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조장하는 장면을 내보낸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사과방송과 함께 해당 방송분을 삭제할 것을 SBS 드라마국과 제작진에게 강력하게 촉구한다.”라고 했다.

성명서는 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사람희망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는데, 아직 뇌전증장애인 당사자 단체가 미흡한 상태에서 두 단체는 뇌전증장애인이 운영하면서 뇌전증장애인들의 단체설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뇌전증장애인이 길에서 발작을 일으켜서 지나가던 행인이 119구급대를 부른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슴이 엄청 아픈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니 119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겁니다.”

관련 성명서. ⓒ사람희망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필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소방청에 문의했었다. 119구급대원 교육에 뇌전증에 관한 교육이 있느냐고. 없다고 했다.

소방청은 그렇다고 해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경찰청 이야기지만, 드라마니까 작가나 연출가 등 관계자들이 뇌전증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관계자들에게 자문은 안 구했을까.

다른 드라마에서도 뇌전증장애인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뇌전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뇌전증장애인은 발작이 두렵다. 언제 어디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뇌전증장애인이 발작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데 드라마에서는 그들의 고통을 장난식으로 흉내 내어 희화화 시키거나 위기를 모면하려는 수단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뇌전증장애인이 발작을 일으켰는데, 마침 비행기 안에 한의사가 있어서 침을 놓아 진정시켰다는 보도를 보고 필자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사는 침을 놓은 한의사를 천사인 양 극찬했는데, 뇌전증장애인에게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

뇌전증은 약물치료를 통해 약 80%는 호전할 수가 있다. 대부분의 발작은 그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대응 방법만 잘 알고 편견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뇌전증을 가진 사람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다.

3월 26일은 세계적인 퍼플데이(Purple day) 즉 보라데이다. 김정철 소장은 혹여 주변에서 뇌전증으로 경련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을 만난다면 너무 놀라지 말고 주변에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치워주고 조용히 지켜만 봐 달라고 했다. 경련 발작은 2~3분 안에 끝나는데 그런 일은 별로 없지만, 만약 5분이 넘어가면 그때 119에 연락하라고 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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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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