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하는 최예나.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미숙아의 운명

울산 중구 약사동에 위치한 특수학교인 울산혜인학교에 최예나라는 학생이 있다. 고등부 1학년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17세(2004년생)가 되었다. 그녀는 판소리 명창이 되는 꿈을 갖고 그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예나는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로 몸무게 1.68kg의 미숙아였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어린 부모는 미숙아에게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특수 인큐베이터에서 아기의 몸무게가 정상이 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열흘 정도 지났을 때 의사가 아기의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다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말도 해주었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로 그 밖의 다른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각장애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정화심)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두렵고 무서웠다. 처음에는 책도 찾아보았지만 시각장애인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명확할 것 같아서 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이미용봉사를 나가게 되었다.

미용사였던 엄마는 예나가 태어나기 전에도 이미용봉사 활동을 했었지만 예나 때문에 매월 첫째주 월요일 복지관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정보도 얻었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겼다.

판소리와 만나다

빛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예나는 모든 생활을 소리에 의존하다 보니 자연히 청력이 발달했다. 일반 어린이집에 다닐 때 외부 강사가 와서 장구를 가르쳐 주었는데 예나가 제일 잘 따라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7세 때부터는 노래를 듣고 그냥 피아노를 치는 수준으로 피아노를 쳤는데 초등학교 2~3학년에 피아노학원을 보냈더니 실력이 늘어 학원에서 출전하는 피아노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였다.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오는 외부 강사들도 예나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악기를 배우라는 권유를 하였지만 엄마는 예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예나가 공부를 해서 특수학교 교사가 되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선생님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온 외부 강사는 판소리 전공자였는데 예나가 판소리에 재능이 있다고 판소리 배우기를 강권하였다. 엄마는 역시 거절하였지만 교장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외부 강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외부 강사는 자신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업료는 받지 않을 테니 예나를 한번 가르쳐 보고 싶다 하였다. 그렇게 진심으로 권하였지만 바로 선생님 학원에 가지 않았다. 판소리가 예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예나가 사회에 나가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자서도 잘 걸어 다닐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초등학생 발레교실에 예나를 보냈다. 시각장애로 평형감각이 부족한데 발레가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나가 발을 접질러 발레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그때 판소리를 떠올렸다. 학원에 가서 일단 판소리를 배워 보고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의 선택은 예나가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예나가 판소리를 너무도 좋아하였다.

판소리의 소리(창)는 물론 몇 장이나 되는 말(아니리)을 아주 쉽게 외우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 놀라워하였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예나가 겨우 열 살이었다.

피아노 치는 최예나.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소리꾼이 되기 위해

판소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일대일 개인 사사를 받아야 하기에 스승을 찾아야 했다. 복지관에서 부산에 있는 국립 부산국악원을 찾아주어 그곳 단원인 김미진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울산에서 부산으로 오가며 판소리를 배웠다.

판소리는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손짓과 몸짓이 곱고 아름다운 발림이 필요한데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예나로서는 선생님의 설명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아 선생님의 손과 몸을 만져 보면서 익혔다.

문희경 교사가 담임이 된 5, 6학년 때 예나의 꿈은 구체화 되었다. 문 교사는 판소리 명창이 되겠다는 예나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곁에서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예나는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판소리대회에 출전하여 평가받기로 하고 부지런히 대회를 쫓아다녔다.

2015년부터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2016년 제17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 대회에 나가서 장원을 하였고, 지방 판소리대회의 대상을 싹쓸었다.

그리고 2018년 제6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사상 최연소 나이인 15세(만13세)에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차지했다. 60팀 155명이 참여하여 경연을 펼쳤는데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 그녀가 대상감이라 예상할 정도로 군계일학이었다.

2018년 대전TJB에서 주최한 제11회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에서는 종합 대상을 차지해 예나의 존재감이 빛나게 되었다.

예나는 글도 잘 써서 글짓기상도 많이 받았고, 나눔글짓기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 하였다. 동백 국제콩쿨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피아노 연주 실력가이고, 가야금과 고법(북반주)도 배우고 있다.

예나는 배우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아 교육비가 제일 많이 든다. 다양한 교육이 예나의 판소리 공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나는 홍보가를 완창하고 심청가는 오는 5월에 완창이 된다.

예나가 워낙 작다 보니 대회에 나가려면 한복을 맞춰야 하고, 고수와 함께 출전을 해야 해서 고수사례비도 필요하다. 다행히 엄마가 미용 기술이 있어 머리와 화장은 엄마가 해 주고 있다.

공연 요청이 들어와도 엄마는 선뜻 길을 떠나지 못한다.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이 출연료보다 더 들곤 하기 때문이다. 개인 콘서트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관부터 팸플릿 인쇄 등 비용이 만만치 않아 지금으로서는 실력을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하기 때문에 예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항상 웃는다. 엄마는 힘들더라도 예나는 마냥 즐겁다.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르는 최예나는 소리꾼으로서 대중을 압도한다.

대중이 그녀의 소리에 교감하는 것은 최예나에게서 심청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최예나가 심청이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꾼에게 시각장애는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를 진정한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앞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최예나를 소리꾼으로 키우는 것을 개인의 노력이나 가족의 헌신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소리꾼 최예나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며 응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에서 대상 받는 최예나.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최예나

2019. 08. 04. 제13회 순천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법 부문 학생부 최우수상 2019. 07. 07. 제22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가창 부문 학생부 대상 2019. 06 .23. 제10회 장수 논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대상 2019. 05. 18. 제15회 사천수궁가 전국판소리/고법 경연대회 학생부 대상

2018. 11. 24. 제18회 울산시 청소년국악경연대회 가창 부문 금상 2018. 11. 03. 제4회 전국국악경연대회(김해예술제) 학생부 판소리 부문 최우수상 2018. 07. 14. 제19회 공주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 학생부 판소리 부문 우수상 2018. 06. 03. 제20회 여수 진남 전국국악경연대회 초중등부 최우수상 2018. 03. 24. 제13회 황산벌 전국 학생일반국악경연대회 중등부 최우수상

2017. 12. 02. 제17회 울산시 청소년국악경연대회 대상 2017. 09. 24. 제20회 울산시 전국국악경연대회 금상 2017. 08. 27. 제5회 서천 전국국악경연대회 최우수상 2017. 08. 13. 제11회 순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 2017. 05. 21. 제13회 전국판소리수궁가경창대회 우수상 2017. 04. 08. 제6회 판소리 명가 장월중선명창대회 우수상

2016. 09 24. 제23회 부산국악대전 차상 2016. 07. 23. 제17회 공주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 학생부 판소리 부문 장원 2016. 04. 03. 제6회 전국국악경연대회(부산예술대학교) 대상 2016. 04. 16. 제5회 판소리명가 장월중선명창대회 최우수상

공연은 1년에 10회 이상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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