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시인 ⓒ최명숙

세상에 한 달 먼저 나온 것이

최명숙은 1962년 강원도 춘천 시골 마을에서 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9삭둥이였다. 당시는 집에서 전문산파나 아기를 받아 본 경험이 많은 동네 어르 신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는 때였다.

그런데 난산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생긴 뇌손상은 치명적이었다. 뇌성마비라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다. 그저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아기가 작으니 잘 먹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통 아기들과 다른 증상을 보였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여 제대로 걷지 못했고 말도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동네 사람들도 그녀의 장애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은 그렇게 순박한 파라다이스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서울은 그동안 살던 시골 마을과 너무나 달랐다. 시골 학교는 한 반이 29명밖에 안 되고 모두가 아는 친구였지만 서울 학교는 한 반이 79명이고 오전과 오후반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는 명숙의 느린 걸음과 느린 말투를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기다려 주었지만 서울 학교에서는 기다려 주는 법이 없었다.

문화적 충격이 너무나도 컸다. 서울에 와서야 자신의 장애가 뇌성마비라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 와서야 자신의 신체적 조건으로는 취업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고뇌가 그녀를 문학 소녀로 만들고 있었다.

학교 특별활동은 당연히 문예반을 선택하였고, 고등학교 1학년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자 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졸업 후 덕성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 시와 소설 공부를 하며 기초를 닦았고,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문학 공부를 하였다.

어머니의 두 가지 가르침

엄마가 딸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였다. ‘지금 네 발로 걸을 수 있어야 나중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기도처럼 읊조리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걸음이 몹시 더딘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절에 데리고 다니셨다.

절에 올라가려면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걸었다. 걷는 연습을 그때 많이 했다. 법당에 들어가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처님 얼굴 한번 만지겠다고 덤비는 탓에 엄마 속을 많이 썩였지만 그 덕에 그녀는 불자가 되었다. 최 시인 가정은 각기 다른 종교를 갖고 있고, 엄마만 유일한 불자였다.

두 번째 당부는 ‘남이 양보하기 전에 네가 먼저 양보해라’라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가될 것 같은 일은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으니 좀 봐달라’는 식의 말은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생각 자체가 없으셨다. 걸음이 이상하다고 아이들이 놀리든 말든 사람 많은 장소에 가면 시선이 집중되든 말든, 별 반응 없이 남들과 똑같이 대하셨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과 함께 ⓒ최명숙

이외수 선생님과 함께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뇌성마비 청소년 모임인 청우회 활동을 하였다. 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오뚜기글방에서 뇌성마비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5년 동안 하다가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직원 공채로 입사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지난 29세에야 직장을 얻게 되었다. 직장이 생겨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독립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동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과감하게 결행을 하였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그녀가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건 2002년 때의 일이다.

“저와 똑같이 장애를 가진 옆 동네 친구랑 기차여행을 하다가 안동역에 내렸는데 문득 청량사 생각이 나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이야 교통이 좀 편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사찰까지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친구는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하여 혼자 택시 타고 무작정 청량사로 갔죠.”

어스름한 저녁, 불편한 몸으로 비탈을 오르는 최 시인의 모습이 당시 청량사 주지였던 지현 스님 눈에 띄었다.

“스님 한 분이 밖에 나와 내려다보고 있더라구요. 뭐 저런 보살이 다 있나 하셨겠지요. 어둠을 뚫고 힘들게 올라오고 있었으니…. 법당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스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내려가겠다고 하자 꼭 다시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씀 한마디가 큰 힘이 됐었어요.”

그날부터 한 달에 한 번 봉화 청량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3000배를 그때 했다. 솔직히 세 번 절을 하는 삼배도 힘들지만 108배에 도전하여 성공하자 하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하여 1000배에 도전하였고, 그것 역시 해내자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인 3000배도 자신이 생겼다. 그렇게 도전에 성공하며 살아갈 힘도 얻었다.

스님과 가까워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때쯤 지현 스님이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하셨다.

“장애인 불자 모임 한번 만들어 보는 거 어때요?” 처음엔 손사래를 치며 웃어 넘겼다. 장애인 불자를 찾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모임을 운영하려면 경제적, 시간적 희생이 필요했고 또한 언어장애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가 힘든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모임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3년을 버텼지만 지현 스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진짜 안 만들 거예요?”라는 스님 말씀에 최 시인이 졌다.

미얀마 불교문화순례 중 ⓒ최명숙

장애인 불자 모임 보리수아래

체계적인 장애인 포교 시스템을 갖춰 온 다른 종교단체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했다.

“가만히 앉아 부처님 말씀만 듣자고 했다간 안 될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공연과 시집 발간이에요. 장애인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어 보자며 시작했지요. 받지만 말고 우리도 뭔가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주면 나름의 긍지가 생기거든요.”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홍보팀장으로 근무한 경력도 보탬이 됐다. 2005년 창립 후 해마다 장애인 불자와 후원자를 끌어모았다. 처음부터 잘될 리 없었다. 처음엔 2명이 모이고 그러다 1명이 더 오고, 그렇게 지내온 13년이다. 보리수아래 회원은 현재 300여 명으로 전국에서 모인 뇌성마비, 소아마비 장애인 불자들이다.

인원이 적든 많든, 후원금이 많이 모이든 말든, 월 1회 정기모임과 연 1회 정기공연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문학작품집 발간과 음반 제작도 때마다 냈다. 음반 <봄길 위의 동행>, <그가 내게로 오다>, 시집 「보리수 아래 그를 만나다」 1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단 하나의 이유」 등이 그 결과물이다.

2018년 한국과 베트남의 장애시인 11명의 시를 한데 묶은 시집 「시로 엮은 내 사랑을 받아주 오」를 펴냈다. 이 시집은 2017년 최 대표가 미얀마 장애시인들과 함께 펴낸 시집 「빵 한 개와 칼 한자루」 이후 두 번째 아시아 장애시인 공동시집이다.

1인당 4편씩 총 40여 편의 서정시가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각각 수록됐다. 2016년 25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최 대표는 요즘 제 살 깎아먹으며 산다. 퇴직금은 모임 운영비로 쓰고 카페를 전전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정기 후원이 거의 없고 사무실 하나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지만 절망하진 않는다.

최 대표가 최근 주력하는 일은 장애인 불자 들을 설득해 재적 사찰 등록하기, 사찰마다 장애인 고용 추진하기, 한국과 미얀마 장애인 불자들의 교류 등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냥 사찰에 가면 장애인을 좀 반겨 줬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시선으로만 쳐다보지 말고, 장애인이 절집에 찾아가면 스님과 신도들이 딱 한마디만 해 주시면 돼요. ‘우리 절 신도로 오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녀를 잡아 준 청량사 지현 스님의 꼭 다시 오라던 그 말 한마디처럼.

시인으로 정진

지난해 시집 「마음이 마음에게」를 냈다. 이번 책은 ‘한지본’과 ‘일반본’ 2종으로 출간됐다. 최명숙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독창적인 언어와 삶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통찰이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최명숙 시인은 1992년 반년간지 『시와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해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2004), 「져버린 꽃들이 가득했던 적이 있다」 (2007)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2000년 솟대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장 애인문화예술대상(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최 시인의 활동들 ⓒ최명숙

최명숙 대표작

새날을 맞는 기도

눈 속을 걸어온 당신의 미소가

온누리에 사랑의 빛으로 빛나는

새날의 아침입니다

당신의 혜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더욱 초롱하게 하고

당신의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어디서든 고요를 간직하게 하며

당신의 따뜻한 눈빛과 손이

가슴이 시린 사람들에게 항상 머물게 하소서

당신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을

나 또한 감사히 여기게 하시고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맞설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시고

나로 하여금 부지런히 정진하여

신중한 생각과 깨끗한 행동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그리하여 삼백예순 날 하얀 눈길을 걸어

비움의 바다에 닿게 하여

저 노을이 어둠의 바닷속으로 다시 지듯이

다시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에

이 목숨을 다하여 부끄러움 없이 살았음에

당신 앞에서 감사함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하동 가는 길

흐르는 강은 깊다

바람이

줄지어 선 나무의

하얀 꽃잎 사이를 지나갈 때

막 깨어난 강물이

새벽을 달려와 가차에서 내린

객의 눈빛에 젖는다

아침 안개 걷히는 벚나무 십리길에는

꽃비가 내린다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과 사투리가 결한 사람들의

부딪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손짓

나는 못 본 척하며 낙화하는 꽃길을 간다

꽃잎은 길 위에 떨어져 길을 지운다

구례에 내려 화계장터 호중별 유천

쌍계사로 가는 길이 멀다

산수유 마을과 지리산 화엄사

조금 멀리 청학동 요가철학자 이형록이 사는 숲속 명상원으로

서로 만나 불현듯 찾아가도 좋은 구례에선

흘러가는 강물 위에

들고 있던 삶의 짐들이 재가 되어 풀어지는 것을

인연 밖에서 보아야 한다.

최명숙

#주요경력

한국문인협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원 ‘보리수 아래’ 대표(불교와 문화예술이 있는 장애인들의 모임) 제5차 여성불자 108인

#수상

1990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입선 1992년『 시와 비평』 신인상 1995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소설 당선 2000년 솟대문학상 본상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문학 부문)

#저서

시집 「인연 밖에서 보다」, 「마음이 마음에게」, 「따뜻한 손을 잡았네」, 「목련꽃 환한 계단에서의 대화」, 「산수유 노란 숲길을 가다」, 「져버린 꽃들이 가득했던 적이 있다」,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들은 절로 떠난다」, 「진실 그 비움에 관하여」, 「당신을 사랑함으로 하여」, 「풀잎 뒤에 맺힌 이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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