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소통의 도구
30cm자를 이용하여 온 마음을 그려 내는 작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작가의 눈에는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생명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숫자, 도형, 물건들까지도 의인화하여 표현되어진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이 탄생한 것은 세상과 소통하고픈 열망이었을 것이다. 어우러지는 삶으로 인간세계의 따뜻함을 표현해 낸 것이 중첩으로 작가만의 독창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한부열은 세 살 때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자폐증이 심해서 엄마한테조차 눈을 맞추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열은 9세가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서야 ‘엄마’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부열이는 통제가 안 된다며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이라고 하였다. 그 말은 곧 교육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말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진단한 의사의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선생님! 저 좀 살려 주세요.”라며 매달렸다. 아빠의 근무지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바뀌게 되어 부열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주 평화로운 항구도시 제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부열이는 대상을 보는 시각이 아주 독특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요. 그림을 그릴 때 집중도 잘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행복해 보여요.” 교장 선생님의 부열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엄마조차 모르고 있었던 한부열의 그림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똑같은 학생이지만 교육적 가치가 달랐다.
그때부터 부열이는 하루에 A4용지 100장 넘게 그림을 그리며 대부분 시간을 그림에 매달렸 다.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어 대는 등 통제가 불가능한 극단적인 강박증세를 보였던 부열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그림에만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며 부열의 과잉행동은 점차 줄어들었다.
아들이 그림을 좋아한다니까 엄마는 아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연필을 사 주고 종이를 사 주는 정도로 지원을 해 주었을 뿐이지 그림 공부를 별도로 시킬 수가 없었다. 아들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기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세상과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자폐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림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림으로 세상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욕구와 생각들을 표현했다.
그림은 그가 바라본 세상을 묘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다. 세상과 공유하기 위한 발판을 그림을 통하여 찾아냈고, 상상력의 범위를 넓혀 가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중국에서 11년 동안 살면서 외부의 개입 없이 온전히 자신의 특별한 방법을 찾았기에 독특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전업작가 한부열
작가가 세상을 보는 독특한 방식은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다른 사람에게 인사할 때는 그 모습을 흉내 내, 그 사람의 손바닥이 자신을 향했던 것처럼 자신의 손바닥이 자신을 향하도록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지금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손바닥을 바깥으로 하여 인사를 하지만 여전히 그가 그린 그림 속에서는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시각들이 작고 작은 디테일로 드러나 있다.
‘부열이 시력은 5.0 정도 되는 것 같아.’라고 종종 말한다. 그는 비장애인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에 돌아와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한부열을 알리기 위해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라이브 드로잉으로 한국에서 공식적인 자폐 1호 라이브 드로잉 작가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개인전, 단체전, 공모전,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2015년 5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KPAM 대한민국 미술제를 시작으로 전업 작가로 발돋움하며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작품이 매진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엄마는 아들의 작품을 사 준 고객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판매 금액 전액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2015년 한부열 작품이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정회원이 되어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엄마는 아들의 그림 활동을 쓴 에세이 『아들아, 오늘도 너의 꿈을 세상에 그리렴!』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한부열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 결과 한부열의 활동이 확장되어 갔다.
2016년
구립 어린이집을 돌면서 ‘우리는 친구’라는 제목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 였고 어린이들 대상 워크샵도 이어 가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 활동을 전개하려 준비 중이다.
한부열의 독특한 미술세계
그 독특한 시각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현대미술의 핵심인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림 애호가뿐만이 아니라 그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한눈에 ‘야, 정말 독특하다.’는 감탄을 쏟아 낸다.
해외에서도 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온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30㎝ 자를 이용해 인물을 각(角)지게 그리는 그의 그림은 얼핏 입체파 화풍을 연상시킨다. 고치거나 지우는 것 없이 한 번 시작하면 단번에 마무리 짓는 것 또한 그만의 작풍(作風)이다.
기본 도형과 원색을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한 작가의 그림은 한 번만 봐도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첩으로 여러 개체를 겹치거나 또는 한 개체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것인데 엄마는 ‘부열이의 그림은 겹쳐서 그리는 것과 얼굴을 숫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부열이 30cm자를 사용하는 것은 작은 흐트러짐도 못 견뎌 하는 자폐 성향에서 나왔다. 장애가 그를 화가로 만든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부열 작가의 그림 속에는 ‘엄마’, ‘아줌마’, ‘누나’ 등 주변 사람과 유난히 안아 주는 그림이 많다. 지인들과 즐거웠던 일, 인상 깊었던 일 등이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집착을 보였던 고무장갑도 많이 등장하는데 고무장갑 속의 매니큐어를 칠한 손을 표현하여 인간의 감추어진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엄마의 삶과 하나 된 이름 한부열. 대화로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까지 엄마 마음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엄마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너의 맘을 다 알아차려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때가더 많았던 것 같다.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가장 큰 소통의 길은 엄마였을 텐데…
돌이켜보니 부열이가 그리 펄펄 뛰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을 때는 분명 하고픈 말이 있어서였을 텐데, 알아차릴 수 없는 행동들을 감당할 수 없어 엄마는 엄마대로 속앓이 하는 세월의 연속이었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일상 속에서 많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너의 맘을 이해하기보다는 엄마까지도, 힘든 부분만 부각시켰을 뿐진정한 너의 안타까움에는 소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큰 것은 부열이 목소리까지 두 사람의 소리를 세상에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야. 그런데 정작 그 큰 소리를 부열이를 부르는데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그 소리에 오히려 네가 놀라기도 했던 때가 떠오르네^^ 부열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를 안다는 것으로 너를 안다고 착각한 세월이 참으로 길었구나.
부열이가 진정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소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한 줄기 빛을 본 듯했단다.
부열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그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소통이 가장 확실하게 되는 그 현장이, 바로 세상과 하나 되는 시간이었지. 부열이가 그렇게도 울부짖는 몸짓으로 표현을 했던 하고 싶은 일의 성과가 아니었을까? 그 천상의 미소는 엄마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단다. 고마워 아들!
30년의 세월이 암흑이었다면 이제는 빛의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찾았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것이 가장 큰 기쁨이란다. 장애든 비장애든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란다.
그런 면에서 부열이는 타고난 축복받은 사람일 거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지. 지금까지의 세월이 비운 마음 때문에 그 환희가 더 크게 다가왔을 거야. 오히려 지금부터 엄마가 욕심을 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마음이 드는구나. 지금까지는 엄마가 부열이 보호자였다면 지금부터는 부열이가 엄마를 잡아 주는 멘토가 되어 주렴.
엄마의 편지를 세상의 귀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거야.
하지만 너와 나, 하늘의 눈빛으로 우리끼리만 아는 대화로 하자꾸나.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로는 다 표현되지 못할 엄마의 마음을 부열이는 알거라 믿어. 아들~ 사 랑해!"
-『아들아, 오늘도 너의 꿈을 세상에 그리렴!』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부열
# 주요 경력
2013년
7월 SK 이노베이션 본사 사옥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로 한국 공식 첫 자폐인 라이브 드로잉 작가 데뷔
10월 강남 패션 페스티벌 라이브 드로잉
11월 중앙대학교 라이브 드로잉
12월 온오피셜 프리뷰 마음속의 이야기 3인 전으로 전시 데뷔
2014년
3월 WCO C! Talk 전시 및 라이브 드로잉
5월 숭실대학교 라이브 드로잉
6월 사운드 홀릭 페스티벌 라이브 드로잉
6월 EBS 희망풍경 방영
7월 도곡동 브라운 핸즈 전시
8월 마이크 임팩트 공모전 당선 전시(1달간)
9월 중국 청도 적십자 초청 개인전 및 중국 청도 소재 엘림 자폐학교 라이브 드로잉 작품 완판. 작품 판매 대금 전액 중국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지원 및 엘림 자폐학교 후원
2015년
2월 동대문 DDP 갤러리 문 전시회
5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15 KPAM 대한민국 미술제 부스 개인전 장애인 미술협회 창작아트페어 출품
10월 인사동 갤러리‘ 올’ 세 번째 개인전
11월 중량구 소재 어린이집‘ 우리는 친구’ 프로젝트 시작
2016년
컬쳐 디자이너 어워즈 작품전(서울역)/온새미로전(이음센터)/JW ART AWARDS 수상자 전시(이음센터) 개인전 전국투어 LET’S go with HBY!!!(4월 RISK, 에프터글로우-제주, 5월 예술의 전당-청주 6월 엑스코-대구, 6월 예술가의집-대전, 11월 현대아트센터 경기도-오포, 12월 갤러리 활-서울)
2017년
개인전 1월~3월 LET’S go with HBY!!! 석주갤러리-춘천/4월~7월 아름다운 소통 전 한독 생명갤러리-음성 LET'S go with HBY!!! 아름다운 소통 전 KT 교동 제비집 강화/7월~9월 OUR STORY 광화문 신한갤러리-서울 10월 너랑나랑 전 내설악 공공미술관-인제/11월~한부열 그리고 앤디워홀미묘화랑-속초
2018년
개인전 1월‘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속초 보광사 개인전 4월~5월‘ 안아 주세요’ 커피에스페란토 공모전 당선 개인전-서울
# 수상 경력
2014년 제24회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 입선 2014년 마이크 임팩트 청춘열전 공모전 입선 2015년 꿈틔움 공모전 대상 2016년 중외제약 JW ART AWARDS 공모전 최우수상
# 저서
자전 에세이 『아들아, 오늘도 너의 꿈을 세상에 그리렴!』(2015) 그림책 『한부열의 선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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