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의 잔치는 끝났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올해로 23회인데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해운대와 남포동 등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70개국 335편(역대 최다 편수)이 총 803회 상영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영화 12편이 배리어프리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점자 프로그램. ⓒ이복남

배리어프리(Barrier-Free)란 장벽(barrier)과 자유(free)을 합친 단어로, 1974년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모든 분야로 넓혀 가고 있다. 배리어프리영화는 영상과 소리로 이뤄진 영화에 자막과 화면해설이 포함되어 시·청각 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이번 영화제에서 배리어프리영화는 허스토리, 독전, 나는 보리, 신과 함께-인과 연, 풀잎들, 남한산성, 공작, 뷰티풀 데이즈, 마녀, 시선, 버닝, 변산 등 12편이었는데 그 중에서 날짜 요일 시간 장소 등을 고려해서 ‘시선’을 선택했다.

‘시선’은 10일 수요일 오후 4시 CGV센텀시티7관이었다. 시각장애인 봉사자 청각장애인 수어통역사 등과 함께 관람했다. 극장 입구에서 시각장애인은 신분증과 화면수신(해설)기를 교환했고, 청각장애인용 한글자막기는 들어가면 있다고 했다. 평일 오후라서 직장인인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직장에 국제영화제 표를 보이고 조퇴했단다.

‘시선’은 이장호 감독 작품인데 2014년 4월에 개봉된 영화로 이번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회고전’으로 상영된 영화다.

죽음을 앞 둔 인질들. ⓒ네이버 영화

‘시선’의 줄거리는 선교활동을 하러 온 한국인을 대상으로 통역·가이드를 하는 선교사 조요한(오광록 분)은 목사 구민영(남동하 분)을 비롯한 드림교회 신도 8명을 데리고 이스마르(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 국가) 리엠립 지역으로 향한다.

이들을 태우고 가던 버스는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고장이 나고, 숲속에 있던 현지 반군에게 피랍돼 인질이 된다. 아홉 명의 한국인을 인질로 잡은 반군은 세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첫째 돈이고, 둘째 정부군에게 잡혀 있는 반군 지도자의 석방이고, 셋째 이슬람교로의 개종이다.

한국 정부가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 권사 성도 등으로 이루어진 아홉 명의 인질들은 반군의 총칼 앞에 겁에 질려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싸우기도 한다.

생사의 기로에 선 선교사와 목사. ⓒ네이버 영화

한국 정부는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반군의 요구대로 돈을 지불하고 반군의 지도자를 석방시킨다. 그런데 세 번째 요구 즉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인질들의 몫이었다.

인질들은 목숨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먼 외국까지 선교활동을 하러 갔던 사람들인 만큼 순교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들이지만, 막상 목숨 앞에서는 순교를 할 것인가 배교를 할 것인가로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인질들을 감시하던 소년병의 여동생이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조요한 선교사가 그 소녀의 눈을 보더니 한국에 가면 고칠 수 있다고 꼭 동생을 데리고 한국으로 가라고 당부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인질을 감시하던 소년병. ⓒ네이버 영화

영화가 끝나고 함께 ‘시선’을 관람했던 몇 명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시선’에 관한 배리어프리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먼저 시각장애인 A 씨가 말했다.

화면해설은 대체로 괜찮은 것 같은데 조용한 가운데 찬송가를 부르고 있을 때의 화면해설은 영화 감동 요소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찬송가는 굳이 화면해설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 장면은 그 장면에서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개정된 점자 신·구조문대비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편, 극장에 입장하면서 점자로 된 팸플릿 프로그램을 받았었다. 현행 점자는 2006년 재정 공포된 이후 10여 년 동안 논의가 되었던 몇 가지가 개정된 『개정 한글점자』 「점자법」( 2017.12.12.)이다.

점자는 6개의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소괄호( ( ) )가 전에는 여는 소괄호( ( )나 닫는 소괄호( ) )나 둘 다 3.6점이었는데 개정 된 점자는 여는 소괄호는 2.3.6점 3점이고, 닫는 소괄호는 6점 3.5.6점이다. 그런데 ‘시선’에 나온 점역에서는 개정되기 전의 점자가 사용 되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공식적인 점자 자료가 이렇게 허술하게 제작되어 시각장애인의 올바른 정보접근권과 배리어프리영화의 이미지를 방해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개정된 점자 문장부호. ⓒ점자세상

청각장애인 B 씨는 “자막을 아는 사람은 괜찮은데 빨리 지나가는 자막을 잘 못 읽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수어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도에 청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수어를 잘 모르는데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B 씨는 가끔 혼자서 영화를 보기도 하는데 외국영화를 본 단다. 한국영화는 자막이 없으므로.

그러면서 청각장애인 B 씨는 “솔직히 한글 자막에서는 자신도 잘 모르는 단어들이 많다.”고 했다. B 씨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이지만 그래도 공부한 지식인이다.

모르겠다고 말하는 청각장애인 B 씨. ⓒ이복남

그러자 ‘시선’을 함께 관람했던 강주수 수어통역사가 몇 가지를 얘기했다.

‘이상한 거지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청각장애인들은 ‘이상한’은 모르고 ‘거지’만 안다는 것이다.

세찬빗줄기->강한 비, 기독교인가->기독교인이다. 봉변당하다->창피당하다, 웅성거리는 소리->주변이 시끄럽다.

웅장하고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고 했는데 웅장하고 비장한 음악을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선’에서는 ‘배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는데 아마도 ‘배교’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교’보다는 ‘기독교 배신하다’이라는 말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할 때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등 보다 많은 관계자들과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청각 장애인 중에서도 선천성장애인과 후천성장애인의 다른 삶과 문화를 배려한 자막·수어 제작, 영화 분위기와 감동을 헤치지 않는 화면해설의 세심한 제작과 검수가 있어야 될 같다.

더구나 형식적이고 보여주기 식의 배리어프리영화가 아닌 제대로 된 수어와 점자 자료 등으로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만족하는 배리어프리영화가 되었으면 싶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