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대 선생.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장애인의 대모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역사를 쓴 황연대 선생의 모습을 지난 3월 18일 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볼 수 있었다.

올해 81세가 된 황연대 선생은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 기억은 아주 또렷하다고 한다. 특히나 황연대라는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정립회관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황 선생이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과 당직의사 시절에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흰 가운을 벗어던졌을 때의 나이가 27세이고 보면 2018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이란 공식 직함까지 54년 동안 장애인복지계에서 리더로서 장애인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살았다.

황연대의 눈물

황 선생은 눈물이 많기로 유명하다. 장애인 문제가 생기면 장애인을 붙들고 울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득권과 싸우느라고 울었고, 문제가 해결되어 장애인이 판검사가 되는 모습이 대견해서 또 울었다. 당시는 그렇게 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황 선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장애가 문제가 되었고, 의대 입학과 졸업 후의 인턴 생활 때도 장애 때문에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겪었을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민주화 열기 속에 기득권에 대한 공격으로 명예롭지 못하게 정립회관을 떠나야 했을 때는 정말 피눈물을 흘렸다. 황선생의 가장 큰조력자였던 남편이 그 과정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정말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황 선생의 사회활동은 왕성히 이어져 나갔다. 장애인 조직이 생기면 황연대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거명되었다. 요즘 같았으면 국회의원이나 장관도 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장애인복지 1세대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다.

황 선생은 무수히 많은 일을 했지만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때 제정한 '황연대 성취상'이 가장 보람이 크다.

장애인올림픽 참가 선수들 가운데 MVP를 선정하여 금으로 만든 메달을 수여하는 것인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을 끝으로 30년 동안 운영되던 황연대 성취상이 종료 된다. 황 선생의 건강 문제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본인의 경비로 메달을 만들고 장애인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개최국으로 가서 수상자 결정과 수여 방식 등 모든 과정을 개인 자격으로 진행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힘이 없다.

그래도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 황연대 성취상의 30년 업적이 소개되고 세계 각국에서 수상자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 주었을 뿐 아니라 캐나다의 콜렛 부르곤즈, 핀란드의 시니 피, 스웨덴의 데이비드 레가, 일본의 엔도 다카유키가 직접 평창을 찾아주고 황 선생에게 감사의 메달을 목에 걸어 주었다.

그 순간 황 선생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지난 시간의 회한이 한꺼번에 사르르 녹아내리며 흘린 눈물이리라.

황연대를 기리다

지난해 10월 황연대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7, 80년대에 정립회관에 모여 장애인 문제를 고민했던 청년들이 50대 후반의 중년이 되어 한자리에 모여 황연대 선생의 80년 삶을 기리는 모임을 갖기로 하였으나 황 선생의 고사로 이루지 못하였다.

그때 준비했던 선생 기념의 글을 싣는다.

우리나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많은 변모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6·25 전후는 말할 것도 없고 7, 8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인이란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존재, 더 심하게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취급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를 조직하고 장애인의 의료와 교육, 스포츠를 주장하며 나선 이가 있었는데 바로 황연대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5월 4일을 <소아마비 어린이날>로 지정하고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이용시설인 <정립회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정립 회관은 편의시설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었을 뿐 아니라 장애인 수영장도 있어서 장애인수 영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양궁, 사격 등 일반 학생들도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 수업을 장애 학생들에게 제공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장애인이란 불쌍하고 무능력하다는 패러다임을 완전 뒤집는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새로운 상상력의 발현이었습니다.

당시 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기회는 전무하다시피 했고 설사 학교를 다니더라도 체육 수업에서 제외되고 체육 점수를 받지 못해 상급학교 시험에서 떨어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육 위탁수업을 실시했고 전국지체부 자유학생들에게는 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여름학교, 합동수련회, 전국지체부자유청소년체전및 삼애축제 등을 개최하여 신체적 활동에서 소외되고 움츠러들었던 학생들이 이를 통해 건강한 몸과 호연지기 정신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변캠프, 스키캠프를 열어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또한 백일장과 사생대 회, 베데스다 현악4중주단을 적극 지원하여 문화적인 토양을 다지는가 하면 장애 청소년들의 활발한 모임과 동호회 활동을 권장하여 창조적인 자기개발과 협동정신을 획득하도록 장려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애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을 거절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였 습니다. 매년 입학시험 발표 날이면 신체검사나 면접에서 떨어져 낙망한 학생들을 데리고 선생은 교육부로, 언론계로 뛰어다니며 해결사이자 대모 역할을 했습니다. 학교 문제가 해결될 즈음 선생은 취업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1987년 서울시 장애인공무원 특별채용을 시작으로 장애인공무원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장애인의무고용제>를 만들어 내는 시금석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교육계, 법조계, 체육계, 공무원 등 선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인간다운 생활에서 비켜날 수 없다는 당위성에 의거한 정당한 요구였고 그리고 시대적인 과업이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고 나선 분이 바로 황연대 선생이셨습니다.

선생은 언론인 황문철 선생님의 7남매 중 맏딸로 1938년 태어나 장애인이 공부하기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아재활과 당직의사로 재직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장애 어린이들을 잘 성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잘 알고 있었기에 그 아이들을 단지 의사로서만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을 함께 치워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빛에는 반드시 그늘이 따르는 것처럼 한평생 어려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시대의 긴 흐름에서 보자면 선생은 장애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요, 인간으로서 장애인 삶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 내신 분입니다. 덕분에 많은 장애 청년들이 어려웠던 고비들을 넘겼고, 이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회 주역 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선생님의 노고에 칭송을 드리는 건 너무나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선생을 통해 지나온 시대의 족적을 되새기는 일이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확장시키는 뜻깊은 자리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엎드려 감사를 드리며 선생님의 팔순을 축하드립니다.

2017. 10. 장애인 제자이자 후배 일동

황연대 선생.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황연대 선생 발자취

1938년 언론인 황문철 선생의 7남매 중 장녀로 서울에서 출생, 1941년 3세 때 소아마비에 걸림. 1957년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 1963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63~64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인턴 1965~66년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과 당직의사.

*황연대 선생의 삶에 있어 가장 빛나는 존재감이 있었던 시절은 정립회관을 중심으로 펼쳤던 장애인복 지사업이어서 그 시기를 자세히 정리하였음.

<한국소아마비협회>

1965. 10 소아마비 성인들의 모임인 삼애회 발족 1966. 04‘ 사단법인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 설립 허가 1968. 05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 김팔봉(작가, 본명 김기진) 초대회장 1970. 10 정립회관 건립 착공 1975. 10 장애인이용시설‘ 정립회관’ 개관 황연대 초대관장 취임 1977. 06‘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 설립 허가 김현옥(전 내무부장관) 초대이사장 취임 1980. 09 제2대 김원기(전 부총리) 이사장 취임 1990. 07 제3대 송영욱(변호사) 이사장 취임

<정립회관 행사>

-1968. 05 5월 4일 소아마비 어린이날 제정

-1970. 08 제1회 소아마비 소년·소녀 캠프

-1975. 07 지체부자유학생 수련회 개최(초, 중, 고)

-1975. 08 제1회 지체부자유학생 수영대회

-1976. 05 제1회 예능경연대회(그리기, 글짓기, 붓글씨) 및 웅변대회 제정, 07 소아마비 및 지체부자유 청소년 여름학교, 07 소아마비 장애인 어머니 교실 개최, 07 제1회 지체부자유학생 합숙 수련회, 10 제1회 전국지체부자유청소년체전 및 삼애축제(6개 시도: 1,115명 참석)

-1980. 12 전국 시설, 특수학교 영세아동 초청 수련회

-1981. 01 제1회 재활문고 읽기 운동 05 제1회 삼애봉사상 제정 및 시상, 05 전국 모범 지체부자유학생 표창 및 초청 수련회

-1982. 05 제1회 장미축제 실시 1983. 07 제1회 장애인 해변캠프 실시

-1985. 01 제1회 장애인 스키캠프 실시(알프스 리조트) 1098. 12 제1회 회원의 밤 실시

-1988. 10 제1회 장애인 스포츠 세미나, 11 제1회 츠야마 국제교류 휠체어 역전 경주대회 참가

-1989. 06 제2회 장애인 스포츠 세미나(장애인 스포츠 세미나의 새로운 전환)-1989. 10 제1회 재가 장애인 건강교실 개설

-1991. 10 제1회 장애인 사격선수권 대회 개최, 10 제1회 장애인 양궁선수권 대회 개최, 11 제1회 장애인 자가운전을 위한 강연회 개최

-1994. 10 제1회 좌식배구대회 개최 1997. 06 제1회 장애인 문화기행 실시

<연구사업>

1973. 03 제1회 전국지체부자유학생 실태조사 실시, 1978. 03‘ 전국소아마비학생실태조사(’73~’77년) 보고서’ 발행, 1982. 10 제3회 전국지체부자유학생 실태조사 보고서 발행, 1987. 10‘ 전국지체부자유학생 실태조사 보고서’ 발행, 1989. 07‘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 의식조사 보고서’ 발행

<기타>

-1979~1984. 베데스다 현악사중주단 연주회 1985. 01 라살(lasalle) 현악사중주단 초청 연주회(호암아트홀)

-1986. 03 일본 아사히 가와소(장애인종합복지시설) 직원연수 시작

-1986. 05 한·카 친선 휠체어 마라톤 국토종단(KBS와 공동 주최): 휠체어 세계일주 릭 헨슨 방한

-1987. 04 제1기 장애인 공무원 시험준비반 운영, 10 장애인공무원 합격자 연수

-1988. 05‘ 곰두리와 함께 전국을’ 행사(KBS와 공동), 10 ‘88서울장애인올림픽’ 2개 종목(보치아, 당구) 경기 개최, 11 장애인 등록 사업에 따른 진단 실시(진단기관 지정)

-1989. 05 ‘ 정립회관’:인권옹호단체 대통령 표창 1989. 07 자립작업장‘ 정립전자’ 운영(협력회사: 삼성전자)

<이후 주요 경력>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한국장애인체육회 부회장, 1988 서울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한국장애인복지대책위원회 위원(대통령직속 기관),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고문,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장, 2018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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