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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곰두리와 함께한 하사가의 문화향기

사문진 나루터 그리고 인흥마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6-12 17:05:13
부산곰두리수송봉사단(이하 봉사단) 김경철 단장이 작년에는 다문화 가족나들이를 했는데 올해는 무엇을 할지 걱정을 했다. 그렇다면 하사가와 함께 하면 어떨까.

하사가의 문화향기는 15여 년 동안 해마다 봄·가을로 나들이를 했었다. 그런데 지난 2016년부터 부산시 지원금이 중단되면서 나들이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나들이 등의 행사는 공짜라는 생각에 많은 돈을 내고 참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는 어디로 할까. 얼마 전 필자가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사문진 나루터가 생각났다. 봉사단에서도 단원회의에서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그 후 장소는 사문진 나루터가 있는 화원동산으로 결정했다. 경비는 봉사단에서 왕복교통비 와 유람선 승선비를 부담하고, 하사가에서는 참가비 2만원으로 점심식사와 간식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말이라 유람선도 식당도 예약이 안 된다고 해서 문화관광해설사만 예약을 했다.

사문진 나루터에서.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사문진 나루터에서. ⓒ석우
지난 6월 9일 토요일, 봉사단에서 차량은 6대 인원은 7명이고, 하사가에서는 18명이 참가하여 총 25명이 아침 9시 부산시청 주차장에서 모였다. 부산시청 주차장이 주말에는 무료다.

유람선은 12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봉사단 단장은 참가자들이 코리안 타임으로 늦을까봐 노심초사했다. 봉사단 단원들은 모두 일찍 도착했고, 시각장애인은 보이지가 않고 봉사자도 처음이라 시청 주차장을 잘 못 찾아서 제일 늦었지만 그래도 8시 50분경이었다.

간식으로 어제 저녁 필자가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생수, 캔커피, 비스킷, 자유시간, 그리고 대추방울토마토는 새벽에 씻어서 한 움큼씩 담아서 1인용 봉지를 만들었다. 절편 두 되를 했는데 방앗간 근처에 사는 회원이 25봉지를 만들어서 아침에 같이 나누었다.

하사가에서는 간식 봉지를 나누고 봉사단 단장은 각 차에 탈 인원을 배치하여 9시 10분경에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청도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청도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장애인주차장이 달라져 있었다. 대부분이 휴게소 입구 가까운 곳에 가로 즉 사선의 평행주차인데, 청도휴게소는 입구 앞에 길게 세로로 설치되어 있었다. 주차하기 쉽도록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세로 주차장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음과 끝은 화장실 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을 담당하는 최리 문화관광해설사는 화원동산 주차장 입구에 있는 안내소로 오라고 했다. 11시 20분 쯤 모든 차량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최리 문화관광해설사와 인사를 하고 사문진 나루터로 향했다.

달성호 뱃머리.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달성호 뱃머리. ⓒ석우
화원동산은 달성군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을 하는데 유람선 승선을 해야 되므로 신분증을 지참하라고 했었다. 승선요금은 평일은 8천원이고 주말에는 만원인데 장애인은 본인만 8천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20명이상의 단체는 누구나 20% 감면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주말이고 단체라서 일괄 8천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요금은 장애인은 1~6급은 50% 감면이고 1~3급은 보호자까지 50%가 감면되는데 사문진 유람선은 좀 비싼 것 같다. 승선신고서 대표자만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을 쓰고 나머지는 이름과 생년월일만 쓰면 된다고 했다. 사전에 예약을 한다면 신분증을 미리 받아서 작성해 올 텐데 예약이 안 된다 했으므로 승선신고서는 각자가 쓰게 했다. 유람선이 12시에 출발하는데 평일에는 1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승선신고서를 제출하고 승선요금은 약속대로 봉사단에서 지불했다.

근처에 식당이라고는 사문진 나루터 앞의 주막촌이 전부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벌써 자리가 없었다. 유람선 타고 와서 점심을 먹을 거라고 했더니 자리는 약속 못하지만 주문은 해 놓고 가라고 했다. 국밥 25개, 손두부, 부추전 등을 주문해 놓고 유람선을 타러 갔다. 유람선은 저 아래 강가에 정박하고 있었다.

휠체어는 어디로 가야 할 거나. 데크 쪽으로 가면 길이 있다고 했다.

지그재그 경사로.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지그재그 경사로. ⓒ석우
사문진 나루터 가는 길은 매표소 앞에 돌계단이 있었고, 오른쪽에 나무데크가 있었다. 나무데크에는 양쪽은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가운데는 지그재그로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경사로가 끝나는 지점과 계단 아래위에는 노란색 점형블록이 있어서 저시력인들도 잘 보여서 사고 날 염려가 없겠다고 했다. 나무데크 끝에는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사진 찍는 곳이 있었다.

유람선을 타기 전 문화관광해설사가 나루터 앞에 다 모이라고 했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 전기 낙동강과 금호강을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이자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수행하는 나루였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1리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2리를 잇는 사문진 나루터가 번창해 1486년(성종 17)까지 대일 무역의 중심지였다. 사문진 나루터는 해방 이후까지 부산의 구포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오르내리는 낙동강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 왔다.

1900년 3월 26일 미국선교사 사이드 보탐에 의해 사문진 나루터에 한국 최초로 피아노 한 대가 들어 왔는데 사람들은 처음 보는 상자에서 소리가 나므로 ‘귀신통’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문진 나루터 보다 3년 앞선 1897년 부산항에 피아노가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1932년 일본의 침탈과 새 문명의 상륙을 비유로 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가 사문진 나루터 일대에서 촬영되면서 사문진 나루터는 더 유명해졌다.

달성호 타고 내리기.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달성호 타고 내리기. ⓒ석우
사문진 나루터를 오가는 도선은 처음에는 장대를 이용한 목선이었으며, 이후 자동차 엔진을 갖다 붙였고, 나중에는 엔진이 달린 철선으로 바뀌었다. 도선이 운항될 때만 해도 여름철이면 대구 시민들이 사문진 나루터를 찾아 화원유원지도 많이 알려졌다.

철도 개통 후 사문진 나루터는 대구의 화물을 철도편에 빼앗겨 예전과 같은 대구와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고, 1993년 7월 1일 사문진교가 개통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0년 이후 입구에 무분별하게 있던 식당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화원나루공원을 비롯하여, 옛 사문진 주막을 복원한 사문진 주막촌과 '달성호'라는 중형 유람선을 운항하는 사문진 선착장이 들어서면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사문진 나루터 앞에는 구라리라는 마을이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에서 휴양을 하고 있던 세자의 문병을 가다가 이곳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홉 번이나 다녀 간 곳이라 하여 구라리(九羅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문진은 여흥사로 가는 길목이라 하여 절 사(寺)를 쓰기도 했고 모래가 많다고 해서 모래 사(沙)를 쓰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이라는 沙門津(사문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12시가 임박하여 달성호에 승선했다. 달성호는 바다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흔들림도 없어 타기도 수월했고, 휠체어사용 장애인도 바로 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달성호는 강정보를 향해 달렸는데 배가 달리자 선장이 마이크로 인사를 했다. 이곳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늪지대라고 했다. 달성호는 사문진 나루터에서 출발하여 달성습지, 강정보디아크, 달성보 일원까지 40분 코스로 운항된다고 했다. 달성호는 2009년도에 건조된 배로 430마력의 엔진에 승선인원 72명의 24t급 중형 유람선인데 2014년 10월 3일 첫 항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귀신통이라는 피아노.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귀신통이라는 피아노. ⓒ석우
필자 외 몇몇 사람들은 뱃머리에 앉아 있었는데 바람이 엄청 불어서 아이들은 두 팔을 벌리고 타이타닉 흉내를 내기도 했고 바람이 싫은 사람들은 선실로 들어갔다. 선장의 인사가 끝나자 노래가 흘러 나왔는데 ‘사문진 나루터’였다.

‘사문진 나루터’는 곽치근·장순규 작사, 신웅 작곡, 신유가 노래를 불렀는데 신유 노래가 끝나면 여자 노래가 나오기도 했는데 ‘사문진 나루터’는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나루터야 나루터야 사문진 나루터야
낙동강 굽이돌며 속삭이는 물소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움에 젖게 하네
나루터에 정을 두고 떠나버린 사람아
보고픈 내 마음을 알고 있겠지
바람에 밀려갔나 안개에 가려있나
사문진 나루터에 님실은 나루배가
다시 올까 기다려지네’


편도 표를 산 사람은 강정보디아크에서 내리고 달성호는 뱃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가는 동안에는 바람이 불어서 모자를 잡고 있어야 했는데 뱃머리를 돌리자 바람은 고요했다. 바람이 반대로 부는 모양이었다.

12시 40분경 달성호는 다시 사문진 나루터로 돌아 왔다. 피아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막촌으로 가보니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일행 중에 한사람이 국밥을 못 먹는다면서 다른 것으로 바꿔 달랬지만 사람이 많아서 바꿀 형편은 못되기에 국수와 소주 3병을 새로 주문했다. 술꾼들이 봉사단 기사라서 오늘만은 금주라서 소주는 3병만 시켰었다.

주막촌이 평일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장소에 비해 손님이 너무 많아서 주문 받는 곳이나 음식 나오는 곳이나 북새통을 이루었다. 우리 일행 중에 자원봉사자들이 어찌어찌 자리를 잡았고 미리 주문한 덕분에 음식도 비교적 빨리 나왔다.

점심이 끝날 무렵 일행 중의 권순호 씨가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돌렸다. 아침에 봉지에 넣어 준 절편 2되는 설순순 씨가 찬조했다. 주막촌 옆에 수제맥주를 한잔 4천원에 팔고 있어서 몇 사람이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인흥사지와 석탑.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인흥사지와 석탑. ⓒ석우
점심을 먹고 나니 문화해설사가 구경 잘 했느냐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달성군의 문화관광해설사는 관광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최리 해설사는 이게 무슨 뇌물이라고 점심도 같이 안 먹겠다고 했다. 나들이를 하다보니 문화해설사가 관광지 담당이 아닌 경우 우리 일행과 같이 다니면서 해설을 해주는 곳도 있었다.

저녁에 일찍 돌아와야 된다는 사람도 있어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귀신통’ 즉 피아노를 다시 보고 사진도 찍고 했다. 그런데 ‘귀신통’의 ㄴ이 떨어져서 ‘귀시통’이 되어 있었다. 다음은 인흥마을이었다.

인흥마을은 남평 문씨 세거지인데 세거지(世居地)란 일종의 집성촌이란다. 처음 나들이를 기획하면서 문화해설사에게 연락을 했고 화원동산에서 배타고 점심 먹고 한 군데 쯤 더 보고 싶다했더니 인흥마을을 소개했었다. 그래서 문화해설사도 우리 일행과 같이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최리 해설사에게 인흥마을 해설사에게 연락을 좀 해달고 했더니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인흥마을이 화원동산에서 그리 멀지는 않아 20여분 걸렸다. 인흥마을에도 관광안내소가 있었고 마침 정란희 문화해설사가 있었다. 남평 문씨 세거지는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전해 준 문익점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곳인데 광거당과 수봉정사 인수문고 등 조선말기의 전통한옥 아홉 채와 정자 두 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는 수리 중이고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몇 곳 외에는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인흥마을과 광거당.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인흥마을과 광거당. ⓒ석우
인흥마을은 원래 인흥사라는 절터인데 창건에 대해서는 미상이고 삼국유사 저자 일연(一然)이 1264년 중창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불타고 석탑만 남아 있다. 예로부터 절터는 기가 세서 일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했는데 풍수에 조예가 깊은 문경호가 인흥사 터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천수봉을 등지고 인흥천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 집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인흥마을 오른쪽에는 문익점의 후손답게 목화 싹이 자라고 있었다. 정란희 해설사는 사람이 살고 있다며 조용히 해 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집들은 기와지붕이 있는 흙담으로 이어져 있었다. 끝 부분의 한군데를 가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곳은 볼 수 있지만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서 안내소에 가서 열쇠를 가져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일행은 근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커다랗고 낯선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이 많았고 이름이 무엇인지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기도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근처에서 일하던 농부 아저씨가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다가 왔다. 아저씨도 나무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아저씨는 하나에 천원이라며 애호박을 사라고 했다.

아저씨는 호박을 팔러 온 모양인데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호박 한 덩이씩 가지세요.” 필자가 호박 20개를 사서 한 덩이씩 나눠주었다. 부부도 있어서 20개면 족했는데 작은 호박 4개를 덤으로 주셨다.

해설사가 열쇠를 가지고 왔다. 그곳은 광거당((廣居堂)이라고 했다. 유학자들이 모여서 공부하며 강론하던 곳인데 현재 2만권의 책이 인수문고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이름난 서화가이자 문신이었던 석촌 윤용구가 쓴 ‘광거당(廣居堂)’이라는 편액이 전면에 걸려 있고 누마루 바깥쪽에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 누마루 안쪽에는 ‘고산경행루(高山景行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마구간이 있고 광거당과 행랑채 사이에 흙과 기와로 헛담을 쌓아 공간을 구분하였다고 한다. 헛담이란 담으로써의 기능이 아니라 광거당과 행랑채를 구분 할 뿐이라서 헛담이라고 했단다. 광거당 옆으로는 대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대나무가 자그마했다. 큰대가 너무 자라서 근처 소나무들을 망치는 것 같아서 다 베어내고 새로 심었는데 오죽(烏竹)이란다.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는데 광거당이 ‘수석, 묵은 이끼, 연못이 있는 집’이라는데 현재 수석은 물론이요 묵은 이끼나 연못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고산경행루(高山景行樓)는 중국 개화기의 학자 장건이 쓴 글씨라는데 ‘이 마루에 앉아 역시 높은 산의 웅지와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광거당 화단에는 늙은 회화나무가 ‘보호수’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광거당 담 밖의 마로니에. ⓒ석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광거당 담 밖의 마로니에. ⓒ석우
그리고 담 밖에 있는 나무를 물었더니 해설사도 잘 모른다고 했다. 마침 광거당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일러주기를 ‘마로니에’라고 했다.

인흥마을은 정겨운 돌담길로 이어져 있었는데 곳곳에 접시꽃이 빨갛게 피어 있고 보리수나무에서도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연못가에는 연분홍 연꽃이 피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화장실을 들렀는데 화장실 입구에 남녀 칸막이가 없어 서로에게 민망할 것 같다. 화장실 입구에도 남녀 칸막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흥마을 주차장에 모두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오가는 길 수송해 주시고 유람선도 태워주신 부산곰두리수송봉사단 여러분 고맙습니다. ‘하사가의 문화향기’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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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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