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조향현 회장.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조향현은 전남 진도가 고향이다. 만 1세에 찾아온 소아마비로 두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그 당시 진도는 깡촌이라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열악하였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삼육재활원을 택하였고 그곳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대부분 직업 기술을 배워 시계포 등의 자영업을 하였지만 그는 꿈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국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서예 부문에 참가를 하였는데 입상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향현은 장애인복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지장협 기획부장 자리까지 진급하며 장애인복지 실무를 익혔다.

장애인복지행정의 고수

장애인복지가 발전하면서 장애인이 국가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조향현은 개방직 6급 공무원 채용에 합격하여 1997년 12월부터 보건복지부 재활지원과에서 장애 인복지행정 전문가로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복지부에서 6년 5개월 동안 근무하며 장애인복지를 위한 제도개선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장애인복지행정 전문가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공무원 신분으로 2000년에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고,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자기 계발을 위해 저녁에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장애인복지의 이론을 쌓아 갔다. 하지만 6급 개방직 공무원의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강윤구 차관은 그에게 늘 미안해했다.

그 정도의 실력과 경륜이 있으면 진급을 해야 하는데 항상 6급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한번 나갔다 오게. 자네는 행정 능력이 탁월해서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어.”라고 조언해 주었다.

조향현은 행정적으로 장애인복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2004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장애인복지 현장으로 돌아왔다. 전국 최연소 관장이 라는 타이틀과 함께 의정부장애인종합복지관 초대 관장으로 취임하였다.

장애인문화체육의 기초를 다지다

드디어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에 기회가 왔다. 장애인체육이 보건복지부에서 2005년 7월 문화관광부로 이관되면서 그해 11월 장애인체육과가 설치되었다. 그 당시 팀장은 내부에서 발령받은 일반직 공무원이었는데 장애인체육의 전문성과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팀장이 일반직에서 개방형으로 바뀌어 2007년 11월 초대 팀장자리에 임용되었다.

보건복지부 재활지원과에서 근무하며 장애인체육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큰 장점으로 평가되었다. 그 당시는 조직이 팀장제였다가 곧 과장제로 바뀌어 조향현은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문화체 육과 과장으로 4급 서기관이 되었다.

Q: 그 당시 장애인체육과에서 장애인문화예술 업무를 하고 있었나요.

A: 아니요. 장애인문화예술 관련 업무가 뿔뿔이 흩어져 있었어요. 예술, 문화관광, 레저, 도서, 종무 등이 각 관련 부서 안에서 이질적인 업무로 구색 맞추기식으로 실시되고 있었죠. 문화부에 생긴 장애인 전문 부서는 장애인체육과가 유일하다 보니 장애인 관련 민원은 체육이 아니어도 장애인체육과로 보냈어요. 그래서 우리 과에서 해결을 하려고 해도 실국 간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어요.

Q: 장애인문화체육과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A: 2008년 3월에 유인촌 장관이 취임을 하셨어요.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모토로 했기 때문에 정부 조직이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런데 유 장관님의 의지가 확고하셨어요.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할 때 편의시설이 없어서 장애인 관객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며 공연장 편의시설 확충을 주문하셨어요.

그리고 장애인 가운데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여 보고를 드렸더니 장애인문화예술을 전담하는 부서 설치를 지시하셨죠. 그때부터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었어요. 국별로 장애인 업무가 산재되어 있어서 예술국에 부서를 마련한다 해도 그 다양한 업무를 다 커버할 수 없어서 장관 직속으로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가 되었지만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아 효율적인 방안을 찾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있는데 유인촌 장관님이 출근을 하면서 저를 보시고는 “조 과장.” 하면서 다가오는 거예요. 제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휠체어로 옮겨 타느라고 시간이 걸렸죠.

민망해하고 있는데 장관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장애인문화예술 부서는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거야?” 그 말씀에 서둘러 부서를 마련한 것이 장애인문화체육과입니다. 장애인체육에 장애인문화예술을 얹혀 놓은 거죠. 2009년 1월 5일에 장애인문화체육과라는 부서 명패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장애인문화예술단체 워크숍을 개최하고 장애예술인과 장관 오찬 모임 등으로 의견을 수렴하였지요.

Q: 그때부터 장애인문화예술이 공식적으로 시작이 된 것인데 장관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국회에서도 도와주시는 의원님이 있지 않았습니까?

A: 물론입니다. 국회 문방위 소속 이정현 의원님은 장애인문화예술에 관심 이상의 애정이 있으셨어요. 장애인문화예술 토론회, 의정보고서 발간, 상임위 발언, 국정감사 등 그 당시 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가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지요. 장애인문화체육과로 확대되는 것이기에 인원 확충이 필요했어요.

3명을 요구했지만 행안부(현재 안행부)에서 2명밖에 주지 않았지요. 그때 유 장관님과 이정현 의원님이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장애인문화예술 전담 직원을 개방직(전문계약직 5호)으로 채용하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문화부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요. 우리 과에서 요구한 것은 5급이었는데 부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루고 돌아오니 6급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Q: 그때 채용된 직원이 정재우 주무관이죠?

A: 그렇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높았어요. 하지만 정재우 씨는 그 당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근무 11년 6월이란 경력을 갖고 있었고,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재원이라서 적격자라는 평을 받았어요.

정재우 씨는 6급 주무관으로 2009년 6월 22일부터 근무를 시작하며 장애인문화예술의 전반을 꼼꼼히 챙기면서 틀을 갖추어 갔습니다. 사실 당시 장애인문화예술 예산은 장애인체육 예산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죠.

장애인문화체육과가 체육국에 속해 있어서 장애인문화예술도 체육국장님께 결재를 받아야 했는데, 국장님께서 장애인문화예술은 과장이 알아서 진행하라고 하실 정도로 관심이 없으셨죠. 좋게 얘기하면 호의적이셨다고 할 수 있지만.

Q: 장애인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장애인문화예술과가 설치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부서를 만들어 본 입장에서 조언을 해 주신다면.

A:당연히 장애인문화예술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가 설치되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죠. 예산 규모가 장애인체육의 절반 수준으로라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행부로부터 7명 이내의 직원 티오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 3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4명이 더 필요하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명문화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장애인문화예술이 2009년도 처음 시작되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이음센터도 생겼고, 장애인문화예술 연합체(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도 구성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향현은 2009년 11월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의 초대 원장이 되었고, 2012런던장애인올 림픽대회에서는 총감독을 맡아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는데 일조하였다. 조향현은 항상 처음 만들어지는 조직에 기용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행정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회장으로 노동부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데 조향현은 장애인 복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모든 부처에 장애인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