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헤옹주 이미지.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 코너는 장애인에 대한 현상을 대중문화 차원에서 비평하는 난으로 A는 able로 가능성을 뜻하고 able에 Culture를 붙여 ‘가능성의 문화’로서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이며 나이 육십에 얻은 고종의 유일한 딸이었던 덕혜옹주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소설을 통해 세상에 제법 알려지고, 최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덕혜옹주는 조현병을 지니고 있었고 영화에서도 이러한 점이 묘사되고 있다. 조현병 (調絃病, Schizophrenia) 은 만성 사고 장애로 환각, 망상, 환영을 동반한다. 전 세계 인구 중 조현병 증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은 0.3~0.7%이고 일생 동안 조현병에 걸릴 확률은 1%에 이른다.

조울증이 감성의 양극단에 치우치는데 반해 조현병은 이성의 양극단을 오간다. 사고의 비약, 관계망상의 형태가 있는데 망상장애는 대부분 근거 없는 믿음과 의심에 기인한다. 조울증은 좋고 나쁨을 오간다면 조현병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의심하는 것은 한없이 의심한다.

이에 헛것이 들리는 환청과 헛것이 보이는 환시가 동반된다. 2011년 3월 이전에는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 이라고 불렸는데 분열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어감에 개명을 하게 되었다.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그렇다면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이 조현병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우선 영화 <덕혜옹주> 에서는 정신적인 충격에서 기인한 것으로 묘사된다. 억지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인과 결혼하여 감금되다시피 하여 20년 동안 오매불망 조선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덕혜옹주,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한다.

덕혜옹주는 뛸 듯이 기뻐하고 딸을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들고 항구로 가 조선으로 가는 배를 타려 한다. 드디어 덕혜옹주의 차례가 왔고, 신분증을 제시한 덕혜옹주의 이름을 듣고 명부를 뒤적거리던 심사관은 충격적인 말을 한다.

“명부에 이름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거부한 명단에 이름이 있습니다. 조선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직계 왕족이 한국에 나타나면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매달려도 소용없었고 끌려 나갔다. 이때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덕혜옹주를 포함하여 대한제국 황족을 괴롭혔던 친일파 한택수(김제문)가 지나간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옹주님은 절대 조선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일본에서 장관까지 지낸 그는 유유히 심사대를 빠져나가고 심지어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 조선으로 향한다. 해방에도 핵심적인 친일 인사 한택수는 전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덕혜옹주는 조선에 가지 못하는 신세로 묶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덕혜옹주는 웃기 시작한다.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닌데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이상 주변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은 듯이 말이다. 조현병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정신적인 큰 충격이 조현병이 일어나게 만들었음을 말해 준다.

생각컨대 매우 오랜 동안에 축적된 정신적인 고통이 이런 증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추측하게 한다. 물론 그 뒤에도 덕혜옹주는 한국으로 돌아오길 원했고 몇 차례 시도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조현병이 등장하는 것은 김장한(박해일)과 다시 만났을 때다. 한때 김장한은 영친왕과 이방자, 덕혜옹주를 이우 왕자(고수)와 함께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에 합류시키려 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김장한은 부상을 입고 남양군도에 총알받이로 끌려갔는데 간신히 살아서 남한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덕혜옹주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김장한이 덕혜옹주를 찾아낸 곳은 정신병동이었다.

오랜 동안 생사를 찾아 헤맨 김장한은 마침내 덕혜옹주를 정신병동에서 찾아내고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김장한이 눈물을 흘리며 “옹주를 지켜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자, 덕혜옹주는 10분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던 예전 김장한의 말을 되뇌이며 빨리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현실 병동과 일본 탈출 시도 당시의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덕혜옹주는 10분 뒤에 따라온다더니 왜 이제 왔냐고 말한다.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세 번째 등장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공항 입국에서다. 공항에는 상궁 나인들이 잔뜩 대기를 하고 있었다. 울면서도 기뻐하고 큰절을 올리는 상궁 나인 출신들의 눈물 어린 환대에도 덕혜 옹주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을 끝까지 지켜 주었던 궁녀이자 유일한 동무였던 복순에게만 시선을 많이 줄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궁궐이다. 예전에 고종 황제(백윤식)와 어머니 양귀인(박주미)과 같이 노닐던 덕수궁 중명전에서 잠시 김장한은 덕혜옹주가 좋아하는 사이다를 사러 간다며 자리를 비운다.

그러자 고종 황제와 양귀인이 덕혜옹주를 부른다. 세상에 이미 없는 사람들이 덕혜옹주와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환상적으로 처리된다. 이는 조현병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낭만적인 분위기로 부모와 나누는 해후를 그린 영화적 연출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곧 김장한이 사이다를 들고 오는데 대화는 여전히 직접 대화가 아니라 마음의 대화체로 이뤄진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점은 영화 <뷰티플 마인드>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가상의 세 인물이 실제 친구들인 듯 보였고 영화는 그것을 후반부에 전복시켜 반전의 미학을 추구했다.

이렇듯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조현병을 지닌 옹주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현실과 가상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환청보다는 환시에 대한 측면을 낭만적인 가족 코드로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로써 물리적 증상 측면보다는 낭만적이면서 은유적인 관점에서 조현병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헌식_대중문화평론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제40회 방송대상 심사위원, 저서 『비욘드 블랙』, 『세종, 소통의 리더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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