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족 1000회 기념식에서 찍은 방송제작진 기념사진 ⓒKBS

티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의례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KBS 2TV '사랑의 가족'은 1993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장애인들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이다.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5시를 굳건히 지키는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동안 방송 회차만 1900건이 넘는다.

여느 방송이 그러하듯, 한 때는 무늬만 장애인 방송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장애인 제작진들이 밑 작업을 하고 비장애인 아나운서들이 브라운관 전면에 나서서 장애인들은 들러리 출연자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이 장애인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오게 된 것은 강원래 한 사람의 힘이 컸다. 2004년 MC를 맡은 이래, 강원래씨는 휠체어에 앉아서 방송을 진행하는 그 모습 자체로 장애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톱스타였던 그가 언제까지 시청률 낮은 장애인방송을 계속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장애인 타이틀을 이용해 철밥통 일자리를 얻은 거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었다. 척수장애인들에게 잦은 욕창이나 바쁜 스케줄로 방송을 자진하차하는 날이 머지않아 곧 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우려를 딛고 강원래씨는 '사랑의 가족'의 아이콘이 되었다. 일생에 단 한 번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얻은 장애인들은 강원래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악수 한 번 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강원래와 독설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어로 알려졌지만 실상 그는 남몰래 선행을 베풀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누군가는 그의 까칠한 조언을 듣고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합격의 기쁨을 누렸고,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던 누군가는 병원을 소개해주어 새 인생을 살게 됐다. 스타 친구들을 줄줄이 둔 그이지만 장애인 동호회에 나타나 술잔을 기울였고 장애인예술단을 만들어 운영비에 쪼들리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원래씨는 그렇게 장애인들의 친구가 됐다.

'사랑의 가족'을 시청할 때면 강원래씨 옆 자리에도 장애여성이 자리하길 바랐다. 그 날에야 진정한 장애인 전문 방송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작년 가을, '사랑의 가족'은 지체장애인 가수 박마루씨를 영입해 3MC 체제로 개편되었다. 2월 27일부터는 아예 강원래씨가 빠져 버렸다. 이제는 정다은 아나운서와 박마루씨 2MC가 진행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원래씨가 빠진 '사랑의 가족'이 낯설기만 하다. 채널을 돌려야 하나.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21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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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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