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문학예술연대(대표 최현숙)가 장애인 시인들이 자신의 육성으로 직접 낭독한 창작시를 CD에 담아 ‘살아있는 날의 詩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시집에는 한국시낭송가협회 이사 김태호씨를 비롯해 척수·청각·뇌병변·지체·시각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시인 7명이 직접 쓰고 낭독한 시 24편이 담겼다.
에이블뉴스는 이 CD에 담긴 시인들의 작품을 독자들이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차례차례 전한다. 이번에는 한국장애인문학예술연대 대표인 최현숙 시인의 작품 '내 손안의 묵주', '개심사 벚꽃' 이다.
내 손안의 묵주
최현숙
전쟁이 났다
하늘엔 바벨탑, 바빌론의 공중정원
떠다니는 곳
꽃비처럼 터지는 공습경보 속을
달려가는 알리, 알리는 열세 살
두 볼이 통통한 이라크 소년
열화우라늄탄 쏟아지는 사막
더러는 잘리고 더러는 뒹구는
팔, 다리, 화상 입은
알리들이 운다 나는 울지 않는다 무력하게
TV 앞에서
다만 지켜 볼 뿐이다
진흙판에 새겨진 이 세상 맨 처음 법이
검은 연기로 타오르는 장관을
역사의 강 건너는 미제(美製) 군화를
기억할 뿐이다 인류가 믿었던 마지막
질서마저 짓밟힌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줄기 눈물 사이로
밤을 새운 기도는 한갓 덧없고
버리지 못한 습관인양 아직도 내 손안엔
지구를 돌고 있는 바빌론의 묵주,
귓등을 후려치는 때늦은 공습경보
*알리 이스마일 압바스(13);
-미국?영국 연합군의 미사일 폭격으로 가족과 두 팔을 잃은 이라크 소년.
개심사 벚꽃
최현숙
개심사엔 연초록 벚꽃이 있다
흰 것인 듯 초록인 듯 가지마다 그늘져
대낮에도 서늘히 흔들리는 꽃
사람들은 신기하다 모여들지만
불심 핀 꽃인 양 합장하지만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 가지마다 틔우는
저 방자한 삶
바람 불 때마다 마음 졸이고
명부전엔 지장보살
그대로 살아라, 꽃잎 지고 나면
이나 저나 같은 처지
조는 듯 끄덕이는데
나는 문득 그 자리에 벚나무로 서서
흰 꽃이 되지 못하고, 분홍 꽃이 되지 못하고
낯선 초록으로 꽃잎 날리며
개심사, 저 무서운 길, 들어서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윤회를
길 잃어 떠도는가, 환생으로 마침내
깨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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