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문학예술연대(대표 최현숙)가 장애인 시인들이 자신의 육성으로 직접 낭독한 창작시를 CD에 담아 ‘살아있는 날의 詩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시집에는 한국시낭송가협회 이사 김태호씨를 비롯해 척수·청각·뇌병변·지체·시각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시인 7명이 직접 쓰고 낭독한 시 24편이 담겼다.
에이블뉴스는 이 CD에 담긴 시인들의 작품을 독자들이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차례차례 전한다. 이번 작품은 시각장애 1급 조미숙 시인의 작품 '사월의 밤은 나의 향기이다', '봄·새·겨울나무', '망막전문 병원에서'이다.
1. 사월의 밤은 나의 향기이다
조미숙(시각장애1급)
나뭇가지 위에 누운 내 하얀 속살위로
그대들의 재잘거림이 날아든다
하루가 삶의 전부인양 스쳐가는 사람들은
가슴 속 수많은 비밀들을 쏟아낸다
나는 그 비밀을 간직할 것이고
무거워진 가슴을 어쩌지 못해
그대들의 발자국 위로 나를 버릴 것이다
벗은 나의 몸 바람에 날리다
그대들 중 누군가와 눈 마주치면
나도 당신도 같이 기뻐 할 사월의 어느 밤
은은한 나의 향에 취해 비틀거리는
당신의 뒷모습 역시 한 계절을 사랑해
온 몸으로 춤추는 벚꽃인 것을
2. 봄? 새? 겨울나무
조미숙(시각장애1급)
긴 잠을 깼다
잘려버린 팔이며
벗겨진 살 속으로
누군가 놓고 간 봄날의 눈물
혈관 틈으로 쓰리고 아픈
외마디 비명 스며들어
지나는 길목마다 꽃을 피운다
꽃마다 창을 달고
바람을 종처럼 매어 놓으면
그대 오는지 알 수 있을까
까치발 딛고 섰던 저 하늘 너머
잠시 힘찬 날갯짓 내려놓고
흔들리는 창으로 날아오라
이름 없는 나뭇가지 내 숨결을 타고
그리운 그대 노래 들리는 날
3. 망막전문 병원에서
조미숙(시각장애1급)
희망을 가지세요
내 눈을 주사기로 찌르며
의사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혈관에 흘러드는 주사약
치밀어 오르는 구토
먹먹해진 가슴, 두 손으로 가린다
오후 세 시 창가는
낡은 소파들이 침묵하는 곳
단조롭게 이어지는 간호사의 호명에
소리없이 웅성이다
저 마다의 꿈을 놓고 돌아가는 사람들
햇살에 걸려 말라버린 고무나무엔
살아갈 이야기와 살아가지 못할 이야기들
주렁주렁 목이 마르고
졸다 깨어나 두 눈 크게 부릅떠 보면
티비에선 한 남자의 자살이
연속극 마냥 재방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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