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사진), 버스킹(음악), 화첩(회화), 3개의 테마로 구성된 '2017 테마가 있는 장애인 가을여행'의 마지막 화첩여행이 11월 1일에 시작되었다. 진도 운림산방과 명량대첩의 울돌목 여행을 시작으로 드디어 둘째 날이 밝았는데.

백련사 가는 길

아침에 호텔 밖을 내다보니 온통 안개로 가득하다.

하지만 오늘은 일정이 빡빡한 날.

아침 아홉 시에 벌써 버스 두 대가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 추수가 끝난 빈 들판과 부드럽게 이어지고 겹쳐지는 먼 산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어린다.

차츰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크고 작은 억새 무리가 빛의 꽃무더기인 듯 흔들리는 길을 달려간다.

드디어 백련사 일주문.

일반적으로는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가야 하나 장애인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주최 측 선발대가 먼저 올라 있다가 옆으로 난 좁은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동백나무 숲을 끼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오르막길로 버스가 힘겹게 오르자 꿈처럼 아름다운 도량이 나타났다,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발아래서 출렁인다.

백련사 배롱나무 아래서. ⓒ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하얀 연꽃의 사찰이라는 백련사(白蓮寺)의 이름처럼 단아한 경내에서는 하늘도 더 잘 보였다. 지붕에 곱게 올려진 단청도,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린 것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보라는 뜻인가.

까망 기와와 붉은 흙으로 쌓아 올린 담장에는 군데군데 액자 같이 단순한 그림까지 박혀 있어 이 자체가 예술품이다. 그 아래 피어있는 꽃들도, 발아래 밟히는 자갈돌도 햇살과 바람에 씻겨 맑고 깨끗했다.

우리나라 사찰은 법당이든, 지붕이든, 마당의 한 송이 꽃이든 하늘과 산등성이 실루엣과 어울려 결국은 크게 빈자리를 드러내고 있다.

개체가 개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툭 트인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 이 열림의 조화로운 세계를 자주 사찰에서 보게 된다. 우리가 사찰에 가고 싶은 이유이다.

"사찰은 뭔가를 배워서 가져가는 곳이 아니라 버리고 가는 곳입니다. 하다못해 쓰레기라도 버리고, 사장님들은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버리고 가시면 됩니다."

주지 일담 스님의 환영인사에 웃음이 터졌다.

푸른 하늘과 하나가 된 강진만을 내려다보며 작가들이 스케치북을 펼쳐들었다. 어디서 구도를 잡아도 하나같이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는 곳에서 장애인 작가들이 화첩을 펼쳐든 모습도 또 하나의 예술이었다.

스케치 중인 작가들. ⓒ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나는 만경루 툇마루에 앉아 대웅전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에 대해 감사했다. 주최 측 ICF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었다. 어디 그 뿐이랴, 이런 일정을 가능하게 만든 문체부, 한국관광공사와 GKL사회공헌재단, 또 세금을 낸 우리나라 국민들……. 아아, 우리는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의 몇몇 분은 육화당에서 주지스님과 차담 중이었다. 나는 보조기 신발을 벗기 어려워서 툇마루에 걸쳐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스님 앉으신 뒤로도 하늘과 숲이 환하게 열려 있었다. 시 한 편 아니 나올 수 없는 정경이 아닌가.

오래 전 고향처럼 오고 싶었던 남도의 사찰

어느 선업의 인연인가

한 마리 새들처럼 동료들과 불현 듯 올라

도량 가득 채운 햇살

하얗게 웃고 있는 뭉게구름

대웅전의 은은한 예불소리

탁 트인 허공과 자연이 잇닿은 자리에

나 또한 낑겨 있으니

여기가 그 곳

바로 그 세계인 듯

가우도 출렁다리

펼쳐든 스케치북을 접어 이제는 가우도로 향한다.

강진만 바다 위로 가로지른 출렁다리를 휠체어로 달려서, 또 걸어서 가로지른다. 보이는 곳마다 푸르고 시원하여 숨이 저절로 깊어진다. 열병식처럼 줄을 지어 앞으로 걸어 나가다 중간 쉼터에 모였다. 좁은 자리에 60여명이 모여 사진을 찍자니 어깨도 엉덩이도 서로 맞대야 한다.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단체사진. ⓒ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그리고 가우도 섬으로 들어가 마을의 협동조합 식당에서 싱싱한 회비빔밥을 먹고 해변 산책로를 쉬엄쉬엄 걸어 나갔다. 작가들은 또 다시 화첩을 펴서 군데군데 스케치 중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온다.

교실에서 하는 인권교육 몇 시간보다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스스럼없이 자리를 펴고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을 한 순간 보여주는 것이 백 배 만 배 더 깊은 감동을 나눠줄 것이다.

김경아 구족화가. ⓒ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김영랑 생가와 시문학파 기념관

망호 출렁다리를 건너 가우도에 들어왔다가 돌아갈 때는 저두 출렁다리를 넘어 강진 시내로 들어갔다.

김영랑 생가는 시내에 있어 조금 떨어진 곳에 버스를 세우고 기념관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길.

깨끗하게 조성된 인도 바닥에는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 구절들이 판화처럼 박혀 있어 이엉으로 지붕을 올리고 담장을 덮은 옛날 집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김영랑의 집은 원래 강진의 큰 부잣집이었다는데 서정적인 그의 시에 맞추어 초가집 형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삽작문이 아니라 기와집 못잖은 큰 대문이어서 턱도 높아 장애인이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바깥 널찍한 마당에서 남성보컬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나마 목발이어서 천천히 반세기를 건너 옛날 외갓집에 가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꽃은 지고 없지만 여전히 손님을 반기는 모란과 정겨운 장독대. 안채와 사랑채, 앞마당과 뒷마당의 보송한 흙마당.

뒤꼍에는 오래된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빽빽하고 언덕진 곳에는 아직도 아욱이 자라 시골에서 자랐던 나이 든 일행 몇몇의 눈이 빛나고 얼굴이 저절로 펴졌다. 묵은 나뭇결이 드러난 마루에도 걸터 앉아보고 영랑 시비를 읽으며 천천히 돌아보고 있는데 바깥에서는 7080 가요들이 흘러나온다.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넉넉하고 흥겨워져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졌다.

음악은 이 뿐만 아니었다. 이 순간부터 시작된 음악은 밤을 온통 불태울 것처럼 열정적으로 이끌어 갔는데…….

마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이제는 바로 옆의 시문학파 기념관으로.

기념관 관장이 먼저 인사말을 하시는데, 우리나라 82개의 문학관 중 김영랑 생가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임방울 명창이 살아 있을 때 영랑시인은 북 고수를 그렇게 잘 했다고 하시니 예술은 역시 서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오늘은 여기서 운영하는 영랑감성학교 프로그램 중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한다.

50평 남짓한 강당인데 두 분의 성악가가 보무도 당당하게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니 이곳은 삽시간에 축제장으로 변했다.

테너 장호영씨가 투우사의 노래를 부르고 올레를 외칠 때는 우리도 함께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올레!!! 라고 외쳤는데 몇 십 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이 뿐이랴, 소프라노 윤혜진씨가 엄마에 대한 주제로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심금을 울리는데, 여기저기서 킁킁 거리더니 훌쩍이기 시작한다. 앞자리에 앉았던 나도 가능한 뒤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콧물을 닦으려는데 뒤에선 나보다 더 훌쩍이는 분들도 있어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세상에 엄마라는 주제만큼 우리를 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열렬한 우리의 호응에 성악가 두 분의 열정도 더 커져서 무대와 관객은 그야말로 한 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장애인들이야말로 얼마나 신명이 넘치며 불같은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인가를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벌게진 얼굴들을 서로 쳐다보며 우리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는데 이게 예술의 힘이자 감동의 힘, 그리고 사랑의 힘이 아닐 것인가.

실컷 놀고 실컷 그림 그리고 실컷 웃고 울고 감동으로 그득그득 채웠는데도 배는 고팠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남도 한정식 집으로!

과연 말로만 듣던, 상이 떡 부러지도록 성대하게 차려진 전라도 상을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삼합이며 회며 잡채며 떡이며 80명 가까운 인원들이 테이블에 앉을 사람은 테이블에, 그리고 나머지는 바닥에, 이 모든 동선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준비한 스텝 진들의 힘이 대단하지 않은가.

예술의 흥을 만끽한데다 맛난 음식상까지 마주하고 보니까 이거야 원, 칭찬하고 싶은 마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냠냠냠.

이 강행군 속에서도 여행 이틀째인 오늘의 일정이 끝난 게 아니었다.

호텔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이어진 도예 체험.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데 시간이 모자라 준비된 초벌구이 접시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삼십분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각자 하얀 접시마다 개성이 넘치는 그림들이 올라지는 걸 보니 작가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를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작업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구필화가 김영수 선생 역시 짧은 시간에 완성을 하시는데.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 입으로 긴 붓을 물고 그렸는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던한 선과 색의 조화를 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식당에서 하시던 박윤서 선생의 말씀이 다시금 떠올라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조차 했다.

“저는 여기 안 오려고 했어요.

이 분들은 목숨 걸고 그림 그리시는 분들인데, 취미로 하는 제가 어찌 여기에 끼이겠느냐요.“

박 선생의 그림도 정말 좋은데 이처럼 겸손하기 그지없는 말씀을 하시니 더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물론, 그 뜻을 저 또한 모르지 않겠기에 말이다.

여기서 감동이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이어진 음악회

아니, 또 있었다. 전라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생고기와 탕탕 낙지. 그리고 무화과가 다시 테이블 위에 차려졌는데 이 모두 우리를 위해 어떤 분들이 준비해주신 거란다.

윤총장님께서 분명히 소개를 해 주셨을 텐데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잘 듣지를 못했으니 여기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황영택 휠체어 성악가가 ‘오솔레미오’로 힘차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함께 온 음악가 팀 ‘골든뮤직’의 김대염 실장과 함께 감미롭고도 힘찬 하모니. ‘유 레이즈 미 업’

우리는 이미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있던 몸들이었으니 모두들 음악과 혼연일체. 시문학관에서 팔을 번쩍 뻗어 소리치던 ‘올레!’가 순간순간 마구 튀어나왔다. 그리고 터지는 웃음의 바다.

이 뿐이랴!

‘골든뮤직’ 4중주단의 아름다운 연주.

우와, 힘찬 재즈 색소폰.

사실 김재호 작가한테 친구처럼 따라다니면 케어하던 이문석 선생이 재즈 색소폰 연주자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그랬던 그가 색소폰을 매고 무대에 서니까 그야말로 거인이 따로 없었다.

그는 ‘모베르블루스’ 등 우리 귀에 익숙한 팝을 재즈로 연주했는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나도 멈추지를 않는 것.

감동에 겨워 어쩔 줄 몰라 나는 옆에 앉은 김영수 선생 손을 덥석 잡고 막 흔들기 시작했는데(바로 옆에 사모님도 계시건만~ㅎ) 그래도 이 모습이 좋게 보였던 걸까.

테이블을 돌며 신나게 연주를 하던 연주자가 우리 앞에 와서는 마지막 힘까지 부어주려는 듯이, 신명을 바치듯이, 숨도 쉬지 않고 계속 계속 계속 연주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감격해서 뒤에 알아보았더니 이런 똑같은 패턴의 반복을 ‘릭(Lick)’라고 한다는데, 그냥 반복이 아니라 거듭할 때마다 더 큰 열정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런 공감, 감동의 이런 나눔이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여행을 우리는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여기에서 뷰가 끝내준다는 호텔 2층 베란다에 나가 목포 밤풍경을 감상하면서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을 식혔다.

휘영청 높이 뜬 보름달이 우리를 보고 웃네, 웃네…….

<다음 편으로>

*이 글은 소설가이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인 김미선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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