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뉴질랜드 원정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교통사고나 추락, 낙상, 다이빙 등의 스포츠사고로 중도장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척수장애인은 사고 후 전신과 하반신에 운동기능과 감각기능의 마비 외에 방광기능, 장기능, 성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매우 심각한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를 겪게 된다.

또 병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제2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늦어지게 된다. 장기간의 병원생활 후 현실세계(지역사회)의 괴리감을 어떻게 완화시키느냐가 성공적인 사회복귀의 관건이다.

국내의 경우 긴 병원생활만큼 전혀 준비되지 않는 사회복귀로 인하여 자존감과 자신감의 상실,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 가족 간의 분리 등 많은 문제점을 남긴 채 지역사회에서 또 다시 고립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협회는 이런 다각적인 문제의 개선을 위하여 ‘준비된 지역사회복귀’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지었고, 이를 위하여 병원과 사회 사이에서 중간 가교 역할을 해 줄 척수센터(가칭)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영국, 스위스, 미국, 일본의 선진시스템을 견학하였고, 매년 국제세미나를 개최하여 효과적인 시스템구축을 위한 꾸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척수센터는 예산 등의 문제로 아직 현실화 되지는 못했지만, 지역사회로 돌아 온 척수장애인의 안착을 지원하기 위하여 2010년부터 전국에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를 개소하였고 현재 중앙과 지방 4개소는 국고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1년 뉴질랜드의 사회복귀시스템인 ‘Transitionz’가 협회에서 구상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로버트 맥도날드(Robert MacDonald)씨를 초빙하여 국제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더 깊은 연구와 현장경험을 위하여 한국장애인재단의 후원으로 그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5월 18일부터 26일까지 8박9일간의 긴 여정으로 척수장애인 5명과 활동보조인, 스탭 등 모두 9명의 대규모(?)의 인원으로 편도 비행시간만 14시간 걸리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지에 있는 버우드재활병원을 연수차 방문하고 왔다.

크라이스트처지에 있는 버우드재활병원은 연간 2,500명의 뇌손상, 뇌출혈, 정형외과, 성형외과를 중점으로 치료하는 남부지역 최대의 재활병원으로 오클랜드와 더불어 척수장애인재활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아름다운 환경에 병원이 있었다. 또한 한국과 확연히 다른 것은 병원 내에 민간단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사이좋게 공존을 한다는 것이다.

NZ Trust(뉴질랜드 척수재단, 한국척수장애인협회와 유사한 민간단체), BAIL(버우드 자립생활 아카데미), ABC(알렌빈센터-협회가 운영하는 도서관) 등이 척수병동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 척수손상환자의 초기개입부터, 직업재활, 심리상담, 가족지원, 사회복귀훈련과 퇴원 후의 사후관리까지 유연하고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경외과의사였던 알랜빈박사의 헌신에 의해 척수손상인의 입원초기부터 재활의학과와의 협조가 자연스럽게 되었고 병원 내에 도서관을 설립하고 환자교육 및 가족지원 등이 원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병원과 협회가 서로 협조는 하지만 이렇듯 친밀하게 공존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전문 영역에 대한 수성(守成)도 중요하지만 한 인간의 미래가 달린 문제는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혜를 이곳에서 배웠다.

버우드 병원내에 있는 도서관은 12년 전에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병원 안에 설치됐다. 이 도서관은 실질적으로 병원과 호스텔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복귀 프로그램의 시작점과 핵심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뉴질랜드의 경우, 척수손상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외과의사와 재활의학과 의사가 함께 개입한다고 한다. 이는 환자의 사회복귀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들어서야 재활의학과 의사가 개입을 하게 되어, 재활치료과정이 지연이 되고 시간적으로도 손실을 보게 된다.

수술직후부터 환자의 사회복귀가 계획되고 실천되는 것이다. 의사와 함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심리상담가, 직업재활상담가, 호스텔코치(동료상담가) 등이 한 팀을 이루어 한사람의 환자가 하루속히 사회인(장애인)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척수장애를 받아들이고 제2의 삶을 준비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환자들이 병원복을 입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 척수 호스텔(Spinal Hostel) 직원들과의 기념촬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병원생활 말기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4주정도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호스텔에 입주를 하여 현실에 적응을 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요리와 쇼핑, 세탁, 지역사회 적응, 가상위험체험, 레저 활동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고 퇴원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병동 옆에 호스텔이 있지만 병동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신은 더 이상 병원 환자가 아니라 호스텔 손님입니다." 자율권과 선택, 선택에 대한 책임,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훈련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주는 약을 시간마다 먹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가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 누구의 통제도 없이 스스로가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한다. 손상 전의 생활로 되돌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주위에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팀을 이루어 보호하고 지켜봐준다. 놀라운 것은,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훈련시키는 담당자는 척수장애를 가진 장애인 당사자이다.

자기의 경험을 전달해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동료로서 선배로써의 역할을 하고 이들의 사회복귀훈련을 세밀하게 코치를 한다. 이들을 자립생활코치(ILC)라고 한다. 현재 2명의 ILC가 병원에 소속되어 호스텔에서 일하고 있다.

코치들은 외부활동 등 환자가 경험하고 싶은 것들은 안내해 준다. 예를 들어 서핑을 하고 싶다면 관련 클럽을 연결해주고 같이 바다로 가서 체험을 한다. 레저의 천국답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일행들이 사격을 체험하는 사진.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우리 일행은 이곳에 있는 동안 볼링과 사격을 할 기회를 가졌다. 볼링장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도 좋았고 유니버설디자인(UD)으로 설계된 볼링장은 꼬마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연령이 이용하고 있었다.

사격의 경우에는 사격동호회의 자원봉자사들이 도움을 주었다. 사회복귀란 이렇듯 한 곳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다면적인 지원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깊이 느꼈다.

호스텔에서는 요리도 직접 하는데, 일주일에 한번 씩 메뉴를 정하는 미팅도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쇼핑센터에도 나간다. 환자의 사생활을 보장하고, 호스텔에 있는 개인숙소에서 생활을 한다.

가족이 있는 경우는 같이 묵을 수도 있다. 세탁도 개인이 한다. 이런 호스텔의 생활도 의료비로 다 지원이 된다고 한다. 사회복귀 훈련을 의료수가 인정하지 않아 꺼리는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호스텔 내부 사진. 일반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훈련 후에 지역사회로 돌아간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척수손상 후 장기간 병원에 머물지 않는다. 흉수(하반신 마비)는 3~4개월, 경수(전신 마비)는 6~7개월 만에 퇴원 하여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이 기간 안에는 1개월간의 호스텔에서 사회복귀프로그램인 호스텔 프로그램(Transitionz, 이후 TR이라고 한다)을 체험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협회의 2012년도 설문조사에 의하면 입원기간이 평균 26개월로 나타나고 있다. 뉴질랜드의 병원관계자나 척수장애인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의 척수장애인들도 오랜 병원기간을 결코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초기에 TR프로그램을 계획하게 된 것은 뉴질랜드 협회의 몇몇 직원이 스위스에서 연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뉴질랜드의 척수손상 후 재활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병동에서 가정까지의 연결에 문제가 있고 여기에는 환자가 계속해서 (걷겠다는)희망을 갖는 것, 준비 없는 사회복귀가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시스템도입에 대한 타당성조사를 위한 1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4년 전부터 TR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TR프로그램에는 스웨덴의 자립생활의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놀라왔던 사실은 퇴원후의 주택개조, 특수휠체어의 구입, 차량개조 등도 정부에서 모두 지원을 해 준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사는 척수장애인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퇴원 후 환자들의 관리는 협회에서 한다. 정기적인 연락과 Connecting People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최신 소식을 전달한다. 외부모임을 개최하기도 하고 소식지를 전하고 지역사회에서 안착을 하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직업재활이야기를 해야겠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2~4주후부터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직업상담사가 개입이 되어 퇴원후의 직업이나 학업에 대한 상담을 한다고 한다. 이곳의 직업 복귀율은 50%가 넘는다.

2003년 직업 복귀율이 12.3%이었으나 사회복귀프로그램이 도입된 이후 급격한 상승률을 보였다고 한다. 자신감의 회복이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병원 복도에 걸려있는 직업생활을 하는 척수장애인들의 사진을 보았는데, 경비행기 조종사, 어부, 중장비 기사 등 직업을 가지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센터 벽에 전시되어 있는 직업재활 사진.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뉴질랜드가 성공적으로 사회복귀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과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의료시설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지역사회의 준비가 미흡해서도 아니라고 본다. 각자의 영역은 준비가 되어 있지만, 각각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서로 대화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만을 지키려는 이기주의가 척수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지연시키는 이유이지는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정부도 병원도 협회도 지역사회도 마음을 열고 한 장애인이 진정한 사회인으로써 우뚝 설수 있도록 협력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복귀에 관련된 의료수가도 인정을 해주어야 하며, 척수장애인들이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 할 수 있도록 결단도 필요하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자. 척수장애인의 완전한 사회복귀, 우리도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누구나 기고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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