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고 있는 대원들이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DPI

8월 30일, 작성자: 이권희(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태풍이 올 것으로 예상되어 과연 출발할 수 있을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대원들이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오전 6시 언저리에 모두 기상하여 여느 때처럼 씻은 후 개인 짐들을 챙겼다. 수원을 향해 행군을 하고자 한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여 태풍 앞을 달리는 것이 나을 듯 했다.

행군출정 전에 비가 오고 있어 체온조절이 중요하고, 태풍이 언제 우리를 앞질러 갈지 모르니 최대한 속도전을 할 것이라는 얘길 들었다. 그만큼 기상조건이 악화될 것을 대비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수원에 입성하고자 함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원들의 각오가 새로워졌고, 평소보다 행군속도는 매우 빨랐다. 못해도 최소 시속 12킬로미터는 넘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빗줄기가 굵어졌고 앞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달리기 힘들 정도였다. 문제는 급격한 체온저하였다.

대전에서 수원까지 구간대원으로 참여한 권인자 대원의 B-500 전동휠체어가 방전되었다. 밤새 충전하는 과정에서 잭의 연결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스텝차량에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실렸고, 다른 대원들은 계속 전진하였다.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행군을 시작하였는데 30분 정도 후에 최선두에서 대열을 이끄는 이강천 대원의 휠체어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대열 밖으로 벗어났다. 문경희 대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행군은 계속되었다.

더 이상의 전동휠체어와 대원을 실을만한 차량이 없는 관계로 이영석 대장이 운전하던 선두차량은 권인자 대원을 실은 채 빠른 속도로 최종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는데 이는 권인자 대원을 내린 후 다시 돌아와서 이강천 대원을 실어 나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경희 대원이 휴식공간을 찾아 잠시 멈추었고 곧이어 이강천 대원이 합류하였다. 다행히 배터리 방전이 아니라 컨트롤 쪽의 문제였는데 적정하게 조치되어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했다.

다시 경험 많은 이강천 대원이 선두에서 대열을 이끌자 금방 안정감을 되찾았고, 행군속도는 최고에 달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평택을 벗어났고, 병점을 지나 수원시내에 접어들었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길가에 시민들은 별로 없었는데 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에 많은 박수를 보내주어 힘이 되었다. 그렇게 또 한 20킬로미터 정도를 한 걸음에 내달려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수원호스텔에 도착했다.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한동식 회장(한소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과 직원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어느 때보다 힘든 장거리 행군을 훌륭하게 수행한 대원들의 피로는 극에 달했다. 체온이 너무 떨어져 있었고 옷도 흠씬 젖어 있었다. 서둘러 방을 배정 받은 다음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권인자 대원은 식사시간을 기다리다가 귀가를 위해 자신을 데리러 온 지인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식사도 못한 채 천안으로 내려갔다. 내일 있을 수원지역 결의대회와 시민선전전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놈의 날씨가 도와줘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다.

저녁 9시도 되지 않아 모두들 잠자리를 청하는 분위기다. 대전지역까지 행군을 같이 했던 김정영 대원이 9시가 조금 넘자 다시 숙소로 결합하였다. 제발 자고 나서도 대원들의 컨디션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오늘의 행군거리는 약 40킬로미터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