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15일 창원에서 울산 입성을 위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국토대장정 대원들. ⓒ한국DPI

8월 15일-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날씨는 비온 뒤에 갠다고 아주 맑았다. 오랜만에 좋은 기상조건에서 행군을 하겠다며 모두들 좋아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대장님의 출발선언과 함께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우의를 챙겨 입느라 약간 지연은 되었으나 평소에 자주 연습한 덕택에 금방 대열을 정비했다.

어제처럼 급한 경사는 없으며,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도로를 약 20킬로미터 행군한다고 했다. 그러나 핸드싸이클을 운전하는 이권희 대원이 아무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단한번의 대열이탈 없이 목적지(창원시청 앞 용지공원)에 도착한 걸로 봐서는 코스가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행군시작을 알리는 대장의 구령이 떨어지는 순간 또 갑자기 비가 내리 쏟았다. 또다시 우의를 급하게 입고 출발하였으나 행군 도중에 대열에서 이탈하는 대원이 제법 있었다. 활동보조인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비는 맞아서 옷은 젖어 있고, 행군으로 인해 체온은 올라가 있으며, 비온 뒤 내리쬐는 햇빛으로 우의 속의 온도가 너무 더워서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 급하게 행군을 멈추고 우의를 벗어 던졌다.

드디어 목적지인 창원시에 진입하면서 무탈하게 하루 일정을 마친 것에 모두들 감사해하면서 서로 옆에 있는 동료대원들 덕분이라며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제2기 국토대장정 팀의 대원들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느낌의 실제적인 증거였다.

도착하자마자 파랗게 자란 공원 잔디밭에 짐을 풀고 공식적인 하루일정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행군도중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창원입성을 축하라도 하듯이 날씨가 맑다’며 대장이 말문을 열자마자 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내일이면 창원시청에서의 지역 결의대회를 마치고 이번 국토대장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거점(울산)투쟁을 위해 울산으로 이동한다. 평가회의를 계획보다 1시간 미리 끝내고 울산에서 넘어오신 성현정 소장(울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과 함께 지도부는 거점투쟁에 대한 대책회의를 진행하였다. 가능하다면 울산의 ‘메아리 복지원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라 한다)와 연대하여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모양이다.

이유는 울산지역 문제에 타 지역사람들이 개입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고, 사건도 거의 다 해결되어 가는 마당에 괜히 원점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란다. 대책위의 요구사항도 거의 수용되어 가고 있으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한단다.

그래서 국토대장정팀 단독으로라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과 피해자 구제, 책임자 처벌,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대책이라 할 수 있는 반시설 정책의 수립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에 대해서 울산지역 내에 알려야 한다는 대원들의 결의가 더욱 높아졌다.

시설은 시설일 뿐 그 규모를 줄이거나 공익이사제 등을 도입하여 운영이 투명해지고 민주화된다고 하여도 시설은 시설이며, 수용이 아닌 것 아니다. 울산의 메아리 복지원사건은 전형적인 시설문제의 단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인권유린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더해져 있다.

운영법인 이사장은 아버지, 그 법인의 사무국장은 아들, 시설원장은 어머니, 학교 교감은 딸이 앉아있는 족벌체제의 전형이다. 수많은 인권유린의 사건들이 있겠으나, 메아리 복지원에서 벌어진 성폭행 문제는 이제까지 시설에서의 성폭행 사건보다 훨씬 심각하며,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다.

이제까지는 시설교사나 직원들이 원생에게 성폭행들의 하는 형태였으나, 메아리 복지원에서는 원생들끼리 서로 성폭행을 한 형태다. 남자원생이 자신의 성기를 남자원생의 항문에 넣거나 빨개하는 등의 성폭행인데 어떤 원생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놀랍다기보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시

설생활로 인해 성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고, 수화를 잘 모르는 여선생님들이 대부분이어서 원생들 간의 일상적인 대화나 일부 학생들의 보고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취침생활을 할 수 없어서 야간에서의 실질적인 생활지도가 불가능했다.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울산시 북구청이 울산시청에 무수히 많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고하였으나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며, 경찰 등 정부당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인간을 사육하는 시설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의 인권보장도, 차별금지도 요원할 것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인간이라면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러기에 이는 인권의 기초를 이룬다.

시설은 더 이상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장애인을 사육할 권리가 없음을 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모인 제2기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울산 진입이다. 반시설에 대한 지금의 열기와 결의가 식지 않기를 바란다

16일 울산시청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갖는 국토대장정 대원들. ⓒ한국DPI

8월 16일-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창원에서 울산은 그 거리가 약 120킬로미터 정도여서 전동휠체어로 이동할 경우 최소 3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차량으로 이동하였는데 경남DPI에서 5톤 트럭을 렌트하여 전동과 핸드싸이클, 개인 짐 등을 모두 실었고, 대원들은 모두 스텝차량에 나누어 타고 이동했다.

오후 4시쯤 대원을 나눠 태운 차량이 울산을 향해 출발했고, 오후 5시 30분에 울산시청 동문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수상하게 생긴 두 무리가 시청 안팎에 자리하고 있어 누군지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시청 안에 있던 무리는 울산시청 공무원과 메아리 복지원 졸업동문선배와 재학생들이었고, 밖에는 정보과 형사들이었다.

울산시에 국토대장정 대원이 입성했음을 알리기 위한 약식집회를 위해 사전 집회신고가 접수되었기 때문에 정보과에서는 나왔을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전에 국토대장정팀과 공식적으로 협의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울산시청 공무원이 메아리 복지원 졸업동문선배와 재학생들을 불러놓고 국토대장정 대표단과 간담회를 하고 싶다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제안한 것이다.

최소한 우리와 메아리 복지원 문제를 포함한 울산시의 시설정책 또는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문의를 하거나 최소한의 환영의사는 표현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청으로 진입하는 동문은 걸어 잠근 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떨고 있는 대원들에게 비 피할 곳 하나 마련해주지 않았다.

인정이 없어도 어찌 이리 없으며,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후한 환영과 대접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후문에 의하면 국토대장정 대원들이 울산을 거점투쟁 지역으로 선정하여 거쳐 간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울산시청이 상당히 긴장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긴 하는 건지, 온다면 얼마나 오는지, 왜 오는지, 혹시 메아리 복지원 문제라면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 약 30여개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타 지역 장애인활동가들이 왜 개입하는 건지 등의 질문을 울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하루에도 10통 가까이 전화해서 물어보기를 1주일 이상 했단다. 이것만 봐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 땅에 시설이 존재하는 한 지역사회 장애인의 인권은 결코 완전히 보장될 수 없으며, 언제든지 메아리 복지원과 같은 인권유린이 발생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신규시설 승인은 중단되어야 하며, 기존의 시설에 있어서는 실태조사 등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시설부터 우선적으로 폐쇄하여 장기적으로는 시설을 없애되 지역장애인들이 그 지역사회에서 정당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자립생활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시설 및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법 제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전국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알려내는 것이 국토대장정의 취지와 목적이다. 그러한 활동을 위한 대장정 코스로 전형적인 시설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메아리 복지원 사건이 벌어진 울산이 거점투쟁지역으로 결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울산에는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책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 대책위의 활동에 대해서 개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전에 국토대장정 팀과 대책위가 공식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연대했다면 좋았을 법 했으나,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메아리 복지원 사건에 대해서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만이 해결권한을 독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일 것이다.

특히, 인권의 문제라면 가능한 더 많이 연대하여 공동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어찌됐건 우리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반시설 및 장애인자립생활 보장 제정의 목적과 취지를 알려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행군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지나는 지역마다 그 지역주민과 행정부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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