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삼씨는 지적장애인과 지내는 대안가족, 보조공학 등의 다양한 서비스 활용으로 활기찬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제이넷티비

진삼씨는 시장가는 걸 즐긴다. 자립생활센터 근무를 마친 오후, 진삼씨네 3인방은 저상버스를 타고 농수산물 도매센터로 간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 열여섯 대 중 일곱 대가 저상버스.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나왔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길다. 그래도 안산 지역은 장애인콜택시가 활성화되지 않은 대신 저상버스가 오고가기에 전동휠체어를 타는 그도 시장 나들이를 할 수가 있다.

시장에서 오늘 저녁 찬거리로 고른 것은 표고버섯. 티비 프로 '6시 내 고향'에서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것 좀 사다먹어야지' 생각했던 것을 며칠 내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시장 상인과 흥정을 하는 건 진삼씨이지만 지갑에서 돈을 건네는 건 문관씨. 전신마비 장애인 진삼씨와 함께 사는 지적장애인 문관씨과 익윤씨는 이렇게 한 몸이 되어 어디든 동행하고 있다.

15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진삼씨는 한때 미인가 생활시설에서 생활했다. 지금처럼 티비를 보다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먹을 수 있는 자유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 견디다 못한 그는 4년 전 뜻이 맞는 7명의 장애인들과 지하셋방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지하셋방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진삼씨는 네 번이나 이사를 감행하면서 알맞은 거주지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지금은 주택공사의 전세자금 지원으로 계단 없는 1층 집을 얻어 전동휠체어를 타고서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

진삼씨는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자립생활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못 움직이는 거 이 친구들이 도와주고 심부름해주고. 이 친구들이 못 챙기는 건 내가 항시 생각하고 있다가 챙겨주고. 우리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예요." 진삼씨와 문관씨, 익윤씨는 이처럼 서로에게 대안가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장애인 혼자 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정부 보조금은 자립생활의 걸림돌이 되기 마련. 진삼씨네 식구들은 자신에게 나오는 보조금에서 생활비를 똑같이 나눠 내는 것으로 이 난관을 풀어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마다 영수증 관리는 철저히 한다.

진삼씨는 이렇게 말한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주거만 되고 이러이러한 서비스가 있고 이러이러한 정보들이 있다, 그런 거를 그 사람들이 안다면 나오고 싶은 사람은 나올 거예요. 생각 있는 사람 같으면 뭐 하루를 살더라도 나와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나을걸요."

그처럼 진삼씨에게 자립생활을 결단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정보. 이동용 리프트를 지원 받게 된 것도 다양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낸 덕분이라고. 체격 건장한 그를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길 때 가냘픈 여자라 하더라도 이 기계의 힘을 빌리면 문제될 게 없다. 남자 활동보조인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동용 리프트 같은 보조기기는 더욱 필요하다. 등받이가 굽혀지고 종아리 부분까지 접혀지는 최신식 전동침대도 몸 한 번 뒤척일 수 없는 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동사무소 직원조차 지원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그는 여러 군데 전화를 넣어 매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진삼씨가 살아가는 이야기, 진삼씨가 쓰는 보조기기는 다큐 프로그램 '날개를 달자''가뿐하게 휠체어에서 침대로' 편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장애인방송 ‘제이넷티비(www.jnettv.co.kr)’에서 방송 중.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9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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