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혁이가 그린 달팽이 그림. <임선미>

지난 24일 금요일에는 승혁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첫 프로젝트 전시회가 있었다. 승혁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늘 가는 곳이지만 아이들이 올 한 학기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이 학부모들 앞에 첫 선을 보인다고 하니 왠지 가슴이 설레였다.

더구나 공작품이라고는 집에서 기껏 신문지를 갈기갈기 가위로 '찢듯이' 오리는 일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승혁이의 작품도 있다고 담임선생님이 귀뜸을 해 주셔서 전시회가 있던 날 아침부터 빨리 아이가 만든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프로젝트 수업이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유아가 이행하는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수업이다. 종전의 교수방법이 교사 주도적이었다면 프로젝트 접근법에 의한 교수방법은 유아와 교사, 유아와 유아간의 적극적인 사고의 교류와 상호작용이 중요시되는 협동적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학습내용선정에 있어 프로젝트 접근법에 의한 학습내용은 교사가 사전에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1단계에서 교사와 유아에 대한 공동 주제망 형성과정을 거쳐 정해지게 하며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도 유아의 관심을 반영하여 그 내용이 수정되거나 새롭게 추가된다.

전시회의 주체가 된 햇살반(승혁이네 반), 샘물반의 두 주제는 각각 달팽이와 공룡이었는데 그동안 승혁이네 반에서는 수개월 동안 달팽이에 대한 갖가지 학습이 이루어졌다. 우선 실물 달팽이를 통해 달팽이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교실 한켠에서 달팽이를 키우게 했다.

그 달팽이를 보고 아이들이 내놓은 의견 또한 다양했다. "달팽이와 함께 케잌을 먹었으면 좋겠다", 또는 "달팽이가 혼자라서 외로울 것 같다", 등등 아이들 관점에서 본 달팽이에 대한 여러가지 소감이 주간 학부모 통신문에 소개되곤 했다.

물론 달팽이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승혁이는 그림책에서 또는 TV에서 달팽이가 나올 때마다 '다패이'하고 달팽이를 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번 프로젝트 전시회를 마치면 다음 주부터 곧 여름방학이라 승혁이로선 한동안 선생님을 못 보게 된다. 그래서 승혁이와 동생 모두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도 오랜만에 정장 차림을 하고 프로젝트가 열리기로 한 저녁 5시 30분이 훨씬 넘어서야 어린이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새 옷을 입고 부산스럽게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아이들 생각에도 의아했는지 아이들 역시 어린이집 가는 길에 마냥 들떠 있었다.

승혁이는 너무 들뜨다 못해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앞으로 고꾸라질 듯 마냥 뛰어가다가 결국 어린이집 근처에서 크게 넘어져 무릎에 피까지 나는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전시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도착한 학부모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큰 소리로 울어대며 한 쪽 무릎은 내 손수건으로 동여맨 채 쩔뚝거리며 들어가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아이들이 만든 것이니 소박하고 작은 규모일 줄 알았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들어서는 순간 이미 온 교실은 마치 달팽이와 공룡 박물관을 옮겨놓은 듯 온통 전시작품으로 꽉 차 있었고 집에서 매일 엄마만 쫒아 다니며 훼방을 놓곤 하는 아이들은 내 손을 뿌리친 채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는 눈치였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아이들의 전시작품 틈에서 승혁이가 직접 만들었다는 달팽이 작품도 있었다. 다른 부모들도 자녀들의 작품을 보고 흐뭇했을 텐데 나역시 승혁이가 두 배로 더 대견했다.

아이들 보육을 하는 틈틈이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몹시 바쁘고 피곤하셨을 텐데도 승혁이 담임선생님은 전시물 하나하나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해 주시며 승혁이가 달팽이에 무척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전에 비해 비장애 아동들과의 수업도 훨씬 잘 참여하고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전시회를 관람하던 중 한가지 옥의 티를 발견했다. 승혁이네 교실문에 붙은 아이들의 그림 중 한가운데가 뻥 뚫려 찢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 선생님, 여기 그림이 찢어졌네요. 혹시 우리 아이들이 장난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아, 그거요. 그거 어제 달팽이가 갉아 먹은거예요. 저기 창가 어항안에 있던 녀석이 어느 틈에 여기까지 기어나와서 도화지를 갉아먹은거 있죠"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리곤 달팽이를 넣고 키우던 네모난 유리 어항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시는데 적어도 교실문까지는 5미터는 훨씬 넘어 보였다. 그렇다면 1센티미터를 기어가는 데에도 힘들었을 어른 손톱만한 조그만 달팽이가 멀게만 느껴지는 그 먼 거리를 우직하게 기어나갔을 생각을 하니 새삼 달팽이의 의지가 경이로왔다.

승혁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도 어쩌면 달팽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병원에서 '아이가 정신지체인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2년 전 처음엔 절망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신지체란 정신이 죽어있는 것이 아니고 느리지만 조금씩, 아주 서서히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곤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그 갸냘픈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꾸준히 언어치료를 받게 하고 다행히 장애아를 받아주는 여기 어린이집을 운좋게 들어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처음엔 멍하니 천장만 응시하고 아무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승혁이는 일년이 지난 지금 가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제 나름대로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마치 달팽이처럼.

나역시 승혁이가 언젠간 조금씩 조금씩 아무리 먼 거리도 앞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자신의 가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달팽이처럼 꺽이지 않는 의지와 희망만 있다면 말이다.

"승혁아, 우리 앞으로 달팽이처럼 조금씩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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