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박윤정 학생. <사진제공 장애여성문화공동체>

청년장애여성 취업을 꿈꾸다-②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일명 취업고시생이다. 청년실업시대에 전전긍긍하면서 영어공부, 시사상식 암기하고, 여러 자격증을 건드리는 등 별별 것들을 다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쪼이는 4학년이 되고 보니 3년전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장애를 극복했고 이제 내 인생은 피었다고 생각하며, 대학생활에 대한 낭만, 환상에 푹 빠져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당연하게도 그 기대는 오래가질 못했고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대학이라는 공간에 동화될 수 없었다. 신입생 때는 선배의 전화를 받지 못해서 새터, 엠티에 가질 못했고, 강의 시작할 때 출석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교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책을 펼치면 눈물부터 났다. 자존감과 자아에 크게 상처를 입었고, 장애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성숙시키기도 전에 동기, 선후배, 교수의 편견과 선입견 속에 장애를 숨기고 방패막치기에 급급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기 위해서 말 그대로 투쟁을 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설립을 위해 일인시위를 했고 학교 내에 장애인권연대사업팀활동을 하면서 학내에 장애문제를 의식시키고 인식개선운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벌써 4학년에 이르러 취업이라는 문제에 막막하기만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주위 동기들은 1~2학년 때부터 착실히 준비를 해오고 있는데, 나는 그럴 겨를이 없던 것이다.

뒤늦게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비장애중심사회에서 나에게 알맞은 지원과 적절한 정보, 콘텐츠를 찾기란 힘든 일이다. 같은 장애여성으로서의 역할모델도 드물고 비슷한 사정에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정보에도 약하고, 취업시장 속에 어떻게 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등등들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인텐시브 캠프에 참가하다

<청년장애여성, 꿈, 삶 그리고 일> 인텐시브 캠프에 참가해, 1박2일간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비장애인에게는 당연시되는 취업관련교육 컨텐츠들을 편하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접해보고, 중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스카우트회사에서 나오신 전문가들의 강의와 조언들이 장애여성에게도 맞춤 제공된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사실 장애여성이라는 입장이 사회도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도 굉장히 제한적인 입지에 가두어 버린다. 그래서 보통 장애와 관련 있는 사회복지, 특수교육 쪽으로 많이 몰리고 있다. 나의 부모님조차도 고등학교 때는 그쪽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많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기회와 적절한 교육, 넓은 시야와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곳에서 생산과, 가치창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직업 소개와 내가 알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쓰기를 하는 시간에 고작 몇 개밖에 못쓴 리스트를 보면서 얼마나 내 자신을 편협된 울타리에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일이 있고, 항상 변화하는 사회 속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생겼다가 사라져 가는가? 장애여성으로서 그 일들을 못 하리라는 법은 없다.

방귀희 선배님과 김미주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애여성으로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능력을 가져야만 인간의 존엄성, 가치가 정립된다는 그런 사고에서 많이 벗어나 어떤 능력이든지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가, 능력으로 얼마나 성취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루어내어 성취감을 가지고 있는가에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고를 통해 정말 잘하는 것, 남과 다른 나만의 능력,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좀더 깊게 고민을 하고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글쓰기, 표현하기 등을 통해서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어 취업시장에 자신을 어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준 시간은 참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장애를 가진 존재로서 사회가 원하는 하나의 모델로 자신을 재가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보통은 자신의 장애를 너무 크게 인식한 나머지 장애가 생긴 이유부터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인간 승리식으로 표현하기 마련이었다. 관심분야, 능력, 이력, 경험 등 정작 중요한 요소에는 미처 생각도 못하고 소홀했던 것은 내 장애에 너무 얽매여 있었음이다.

이 캠프를 통해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나의 능력과 가능성에 더 이상 한계를 두지 않게 되었고, 자신감이 커졌음을 느꼈다.

인텐시브 캠프를 마치며

장애여성에게도 장래의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그 가운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역할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장애여성이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직업, 자립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지 못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에서 95년부터 특별전형이 생기면서 많은 장애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가 사회 인력의 일원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이 대학교육은 직업과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본으로 미래의 직업생활에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교육기회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은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애써 대학에 입학하지만 장애여성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학공부는 그렇다 쳐도, 사회 생활하는데 있어서 자양분이 될 대학생활 - 해외여행, 어학연수, 유학, 사회에 인적자산이 될 대인관계구축 등등 -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이러한 교육적 측면에서 차별은 취업 기회 제한의 원인으로 이어지면서 취업시장에서의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전형 시행이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특별전형의 효과 면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과와 성과가 보일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대학교에서 비장애학생을 위한 지원, 서비스와 비교해볼 때, 장애학생을 위한 구체적, 실질적인 진로, 취업관련 교육이 차별을 받아 잘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동정과 시혜가 아닌 우리의 능력을 끌어내고 주류사회에 나아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게끔 해주는 일련의 교육, 프로그램, 훈련 등이고. 이 인텐시브 캠프는 사회생산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장애여성들에게 크나큰 지원이 되리라고 본다.

*박윤정씨는 서울대 학생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장애여성입니다. 이 글은 장애여성문화공동체가 지난 11월 24일 서울여성플라자 NGO센터에서 개최한 ‘삶, 꿈 그리고 일’ 결과워크숍에서 발표된 원고입니다. 에이블뉴스는 김빛나 학생에 이어 두번째로 청년장애여성들의 취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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