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모부성권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든 장애인 모습.ⓒ에이블뉴스DB

저출산에 따른 양육정책, 워킹맘‧대디를 겨냥한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 모성권’은 길을 잃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외치지만 여성장애인들은 임신 출산 후 아이 양육의 어려움까지 혼자 감내하고 있다.

2014년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 인구추정 수는 272만 6910명, 전체 장애 인구 중 여성은 42.3%이다. 여성장애인의 42.5%가 배우자가 있으며, 약 90%가 결혼을 경험했다. 혼인경험이 있는 장애인 중 95%가 자녀가 있으며, 자녀 2명의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국가단위의 건강 증진을 위한 중장기 계획에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에 대한 고려가 배제돼 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상의 모성건강 증진 계획은 비장애 여성을 중심으로 수립되어 있고, 장애인건강증진 계획에는 모성권에 앞서는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장애인이 무슨 애를 낳는다고..’

인천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 부부 오명진씨(42세, 뇌병변·청각1급)와 신지은씨(여, 35세, 뇌병변1급)는 매일 밤 고민에 신음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에도 보란 듯이 남자 아이를 출산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병원에서 출산과정에서 장애와 각종 질병의 문제로 진료를 거부했으며, 유산과 출산 사이에서 결정하는데도 수개월이 걸렸다. 출산 후 다양한 지원이 필요했지만 겨우 80시간의 활동보조인 추가 급여지원으로 이 모든 상황을 벼터야 했다.

지자체에 지원을 문의했지만, 중증장애인이며, 기초생활수급자인 부부에게 아무런 지원제도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60만원에 육박하는 자부담을 부담하고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답변 뿐이었다. 신씨는 “장애인도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우리를 궁지에 모는 거냐”고 토로했다.

현재 장애인 모성권과 관련한 제도는 장애특성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 하다. 임신 이전에 관련된 제도로는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제도가 유일하지만,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저소득, 만 44세 이하의 여성이 대상이다.

또한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지원’, 9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는 저소득 여성장애인의 홈헬퍼를 파견하는 ‘여성장애인 홈헬퍼’, 출산가구 월 80시간을 추가적으로 지원하는 ‘장애인활동지원 사업’ 뿐이다.

그나마 알려진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지원’제도는 전 장애 유형, 1~6급의 여성장애인 중 출산을 했거나 유산 및 사산(임신기간 4개월 이상)을 한 경우에 태아 1인당 100만원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보건복지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지원사업은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전국 1160명에게 총 11억6000만원이 지원됐지만, 그 해 아이를 출산한 여성장애인 2000여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제도 홍보가 부족해 알지 못한 사례들이었다. 이와 함께 당사자들은 금액 인상 또한 원했다.

최근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여성장애인 모성권 증진을 위한 임신, 출산 지원 정책 연구’ 실태조사 속 여성장애인들의 출산비용지원금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 3.32점이었다. ‘보통’ 이하로 답한 응답자들은 현 100만원의 금액에서 ‘200만원 이상 250만원 미만’까지 확대되길 원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여장연)이 전국 여성장애인 7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장애인 건강실태조사’와도 같다. 임신출산 시 필요한 서비스로 28.2%가 출산비용 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꼽은 것. 이는 지난해 사회복지사업 유사중복서비스 통‧폐합으로 지자체에서 추가로 지원했던 출산지원금이 대부분 폐지됨에 따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장연 이희정 사무처장은 “여성장애인은 나라에서 고위험으로 분류되지만 출산지원금은 달랑 100만원이다. 유사 중복이라는 이유로 추가 지원도 거의 없어져 중앙에서 지원하는 100만원이 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무처장은 “모성권은 출산만이 아닌 임신 전부터 양육 모든 부분까지 지원시스템 구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모성권 관련 희망서비스.ⓒ한국장애인개발원

출산비용 지원 사업 외에 모성권관련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의견은 양육지원 서비스 확대에 대한 욕구(35.3%)가 가장 컸으며, 현행 산후도우미 제도상의 지원 자격, 지원 기간 및 시간, 부담금, 도우미 역량 강화 등에 대한 개선의 욕구가 26.5%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산후조리 서비스 확대에 대한 욕구도 14.7%로 조사됐다.

특히 최근 핵가족의 증가로 전문 산후조리원에 가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성장애인은 절반 이상인 54.8%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적이 없다. 2주 약 200만원 정도의 금액에 따른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고, 장애 친화적 산후조리원이 부재하며, 장애여성의 입소를 꺼리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니 건강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쟤 낳고서는 살이 더 빠졌어요. 애기가 먼저라서 애기 분유 먹이고 그 시간에 제가 다른 걸 할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혼자 보게 되면요 아무것도 못해요. 먹을 걸 챙겨먹지를 못해서.'

아이가 클수록 자녀의 생애주기에 맞는 다양한 양육 서비스를 희망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동기로 들어서면서 좀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신체 활동이나 체험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역을 포괄하는 양육에 대한 지원이 요구되는 것.

만5세 아이를 키우는 시각장애인 엄마 은진슬씨는 “감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언어바우처사업이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에만 집중돼있다. 신체적 활동을 같이 못 해주기 때문에 아이의 체육, 발레, 체험 욕구까지 바우처가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중증장애인 부모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에이블뉴스DB

이 같은 현실에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를 비롯한 4개 장애인단체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도 넣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8조에는 ‘누구든지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장추련 박김영희 대표는 “인권위 진정 이후 신 씨가 이용하는 센터에서 따로 지원하고는 있지만 제도적인 변화는 아직 없다. 출산 의료, 양육, 교육 등 모‧부성권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지난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여성장애인지원법 제정을 하거나, 여성정책 속 장애여성에 대한 정책을 추가할지 전 장애계가 함께 논의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개발원 서해정 부연구위원은 “현재까지 여성장애인의 출산의 양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쳤다면 향후에는 질 높은 장애여성 임신 출산 환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장애유형에 따른 개인별 임신‧출산 지원을 위한 맞춤 패키지 개발과 보급 방안을 마련해 임신 전 관리부터 접근성, 산후우울증 등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책에 앞서 선행으로 여성장애인 출산관련 국가 통계 구축도 필요하다. 서 부연구위원은 “여성장애인 모성권과 관련해서는 ‘장애인실태조사’가 유일하지만 결혼 상태를 전제로 배우자와 자녀의 장애등급, 유형 등을 주로 조사하고 있다”며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장애여부 설문 문항 추가하는 등 장애여성과 관련한 국가정책의 기초자료를 마련해야 할 것”고 강조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