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10대 소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패륜 일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성장애인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네티즌들은 판사의 탄핵추진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 8월 충북의 한 농촌마을에 사는 지적장애 3급인 소녀 A양(16)이 일가친척 6명으로부터 8여 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온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건의 가해자는 할아버지, 아버지,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2명, 사촌오빠 등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로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임신을 우려해 피임기구까지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주지법 형사 11부는 지난달 20일 피해자의 친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다른 작은아버지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피해자의 친아버지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원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피고인들이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웠다는 점과 피해자의 장애정도에 비춰 앞으로도 이들 피고인들의 지속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토론방에서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10대 소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패륜 일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를 탄핵하자는 서명운동이 일고 있다. ⓒ미디어다음 아고라토론방

이번 판결소식을 접한 여성장애인단체들과 네티즌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 인터넷 포털싸이트에는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질책의 글들이 수없이 쏟아졌고,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토론방(agora.media.daum.net

)에서는 해당 판사를 탄핵하기 위한 이슈 청원까지 진행 중이다. 사건을 맡았던 검찰도 이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토론방과 관련 기사 댓글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폐륜범죄에 이런 판결이 나오다니 기가 막히다’, ‘이런 가족에게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게 제정신이냐’, ‘이 따위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가해자다’, ‘성노리개로 삼아온 것이 양육이냐?’, ‘키워준 정? 임신 안 되게 피임도구까지 써준 거 참작했으면 상 줄 뻔 했네’ 등 성토의 글들이 줄이어 올라오고 있다.

여성장애인 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해 이번 판결을 규탄했다. 먼저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는 “재판부는 성폭력가해자들이 무려 8년 동안 해왔던 성폭력 가해의 행동을 갑자기 멈추고 앞으로는 피해자에게 건강한 보살핌을 행할 것이라고 진정 믿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적장애인은 성폭력의 고통이나 상처도 알지 못할 것이니 먹을 것만 주고 잠잘 곳만 제공해 주어도 감사한 관심과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서울DPI와 장애여성네트워크는 공동성명을 통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엄중 처벌해 다시는 이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본연의 임무임을 망각한 재판부는 가해자들 못지않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사법부를 규탄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여성장애인 대상 성폭력 발생과 부당한 판결의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차별과 편견에 기인하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장애인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에게 일차 책임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심각성을 인식하여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