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네일아트 국가자격증 실기시험이 치러진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내 중소기업인력개발센터 기업협력처 건물. 현관에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다. ⓒ박종태

역량 강화로 사회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조영경(여, 56세, 지체장애1급)씨는 올해 2번 치른 네일아트 국가자격증 실기시험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네일아트는 민간자격증으로 운영되다가 지난해 8월 국가자격증 시험으로 변경됐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최하고 있다.

조 씨는 사회진출을 위해 각종 공예자격증을 취득했고, (사)내일을여는멋진여성 인천협회(이하 인천협회)의 2014년 정기기획사업 ‘네일아트 자격증반’ 교육 참여를 통해 네일아트 전문가의 꿈을 키웠다.

하반기에 치러진 이론시험에서 합격, 자격증 취득에 한발 다가섰다. 하지만 지난 3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내 중소기업인력개발센터 기업협력처 건물에서 치러진 첫 번째 실기시험에서 합격점수 60점에서 1점이 모자라 아깝게 낙방했다.

실력이 모자라 그랬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조 씨가 시험을 보기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시험을 치르는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응시원서에 장애 상태를 기입했음에도 말이다.

시험 당일 조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경사로를 찾기 위해 건물 한 바퀴를 돌았으나, 경사로 진입하는 문은 굳게 다쳐있었다. 인천협회 직원이 1층 로비를 뛰어다니며 진입하는 문을 열어 겨우 들어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2층까지 이동할 수 없는 상황. 시험 주최 측 직원을 만나 항의하며 1층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는지 물으니, ‘안 된다’고 답변했다. 할 수 없이 시험장소인 2층까지 전동휠체어를 들어 올려줄 것을 요청했고, 장정 3명이 들려다가 안돼서 결국 조 씨는 남성 등에 업혀서 2층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서도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장애인화장실이 없어 시험 보는 4시간 동안 김밥, 커피, 물을 전혀 먹을 수 없었다.

조 씨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실기시험에 도전했다. 이에 인천협회는 시험장소가 지난번과 같은 장소인줄 알고, 주최 측에 공문을 보내 편의를 요청했다. 담당자도 성실하게 몇 가지를 수용해 줬지만 여성장애인 단독으로 시험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1일 시험 당일 응시자가 많이 물려 시험장소가 후생관 2층으로 바뀐 상태였다. 후생관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전동휠체어와 함께 들려 올라갔고, 장애인화장실이 없었다.

조 씨를 힘들게 한 또 하나는 남들은 시험 전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를 하고 있는 반면, 상황 상 혼자 책상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몇 번 옮겨 다녀야 했던 점이다. 책상에는 2~3명이 앉고, 맞은편에는 모델이 있으며 매 교시가 끝난 뒤 바꿔야 하는 재료는 모델 쪽 방향으로 약 5미터 가량에 놓여 있는 상황으로 조 씨는 재료를 책상 한쪽에 놓아야 했던 것이다.

결국 조씨는 두 번째 실기시험에서도 실력 발휘를 못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실력이 없어서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장애 상태에 따른 편의 제공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시험에 영향을 미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 씨는 “장애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같은 공정한 환경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이렇게 편의가 제공되지 않으면, 장애인들이 네일아트 국가자격증을 따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인천협회 박지연 사무처장은 “조 씨의 상황은 한 개인 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장애 상태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 받을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해 개선을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15일 실기기험은 중소기업인력개발센터 기업협력처 건물 2층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장애인은 남성의 등에 업혀 올라가야만 했다. ⓒ박종태

지난 5월 31일 치러진 2차 실기시험 장소인 후생관 정문 계단에 경사로가 없다. ⓒ박종태

지난 5월 31일 치러진 2차 실기시험 장소인 후생관에는 장애인인화장실이 전혀 없다. ⓒ박종태

지난 5월 31일 2차 실기기험은 후생관 건물 2층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여성장애인은 전동휠체어와 함께 들려 올라가야만 했다. ⓒ박종태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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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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