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나경원 의원실과 장애아이 '위캔(We Can)'이 주최하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해 열린 ‘장애인등록 판정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현행 장애판정제도를 둘러싼 문제의 개선 방향 및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나경원 의원실과 장애아이 '위캔(We Can)'이 주최하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해 열린 ‘장애인등록 판정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도 같은 맥락에서 마련된 자리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발제를 통해 “잘못된 장애판정에 대한 지적이 계속 되고 있다. 이는 의사 또는 부정판정자에게 그 잘못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판정기준 중간 선상에서 해석의 차이로 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것 같은 불안을 경험하게 하고 장애인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됐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다”고 현행 장애인 판정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내놨다.

이어 서인환 사무총장은 “장애인을 의학적 기준인 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참여와 활동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장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에 대한 정의를 의학적 기준으로 그대로 두고 판정만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서 총장은 정부가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인프라개편안과 올해 적용되고 있는 개정 장애판정기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2001년 국제보건기구(WHO)가 승인한 ICF(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방식의 판정제도 마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 총장은 논란의 중심에 선 장애인등급 재심사에 대해서는 “판정기준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사규정과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객관적 판단을 위한 기준을 정함으로써 그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 기능적 장애는 일체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류를 찾기보다 움직일 수 없다거나 타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한 수준의 해석상의 잣대를 달리해 장애인 상당수의 등급을 하양조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총장은 "ICF가 신체적 장애에서 기능적 장애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장애가 특수한 문제가 아닌 보편적 건강의 문제로 바라보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을 개인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 생태학적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서 총장은 “정부의 인프라구축을 위한 판정은 의학적 모델을 탈피하려 했으나 손상에서 기능으로 보는 조금 변했을 뿐 신체적 조건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진정 어떤 장애가 어느 정도의 손상이 상호비교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라며 “ICF는 의사에게 판정을 완전히 맡기지도 않고 의학적 기준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개별특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구를 위한 장애등급 심사인가

이어진 토론에서는 등급심사로 인해 장애인당사자들이 느끼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이춘희 여성정책 팀장은 “현행 모든 장애서비스는 의학적 판정인 장애등급과 경제적 기준에 의해서만 결정되기 때문에 등급판정제도는 그 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일관성 있는 운영이 선행돼야 한다”며 “등급심사가 객관적이라면 의료기관과 의료진에 대한 제재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또 장애심사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으로 △센터의 오류를 보완하는 모니터링 체계가 미흡하고 △이의 신청 절차가 번거롭고 △심사비용의 부담과 여유기간 없이 서비스가 제한 되는 것 등을 꼽았다.

이 팀장은 “1~3급 중증장애인은 기존의 혜택을 받을 것인지 장애연금 수급 대상이 되기 위해 등급십사를 받을 것인지 기로에 서있다. 현재의 등급심사제도는 억울한 피해자 양산이라는 부정적 결과가 큰 것에 비해 구제방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라며 “개별서비스가 자체 판정기준을 갖고 있을 때는 등급과는 무관하게 기준에 맞는 대상자가 해당 판정절차를 통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윤두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상임대표 권한대행은 “개별적인 서비스가 나오면서 장애등급이 중요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복지시책으로 인해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중증장애인은 더 어려웠다”며 “어느 정도의 등급은 필요악이라고 해도 등급 사이의 차이점도 모호할뿐더러 필요하다면 최소화하고 서비스를 신청할 자격의 폭을 넓혀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장애등급 심사인지 묻고 싶다”고 답답함을 역설했다.

권유상 한국장애인부모회 사무처장은 지적ㆍ자폐성 장애인 중심으로 장애판정기준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권 사무처장은 “최근 한 자폐성 장애인이 장애연금과 관련해 대학병원 정신과로 진단을 받으러 갔는데 검사 전문가가 없어서 외부 사설검사기관에 의뢰해 일주일 후에 검사를 확인할 수 있고 사설 검가시관에서는 장애인을 보지도 않고 검사를 하고 검사비는 현금으로만 받았다”며 “이것이 장애판정 무용론과 등급폐지론 주장이 왜 불거지는지 정부가 해결해야할 장애판정의 현주소”라고 꼬집었다.

이어 권 사무처장은 "지적ㆍ자폐성 장애인의 지능검사를 통한 등급결정을 하는 검사도구의 신뢰성을 문제 삼았으며 실정에 맞은 검사기구와 판정도구를 개발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장애판정이 이루어져야하며 그 기간 동안 재판정을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쏟아지는 장애등급제 혹은 심사제도에 대한 비판에도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종균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심사로 인한 등급하락의 이유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것들이었음을 강조하며 “모든 개별서비스별로 판정기준을 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최 과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독일, 프랑스, 폴란드에서도 장애의 정도를 분리해서 등록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등급을 나누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개별서비스별로 적절성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등급제도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최 과장은 “장애인연금을 시행하면서 장애등급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받은 장애인분들이 일부 있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의신청 절차에서는 장애인단체에서 추천하는 의사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서류심사만으로 진행하는 심사제도에 대해서는 “대면심사는 현행 산재판정과 미국 등에서도 서류심사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 과장은 “지금의 등급하락은 기준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장애등급제가 올바르게 시행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결과라고 본다”며 “등급심사제도로 제기되는 문제들은 사실 등급의 문제라기 보다는 장애인서비스 확대의 문제며 현실적인 예산의 문제로 최중증 장애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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