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장애인부모회 김혜미 회장. <에이블뉴스>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면담 요구 및 장애인 교육 예산 확보’를 위해 지난달 1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지 어느덧 20일째를 맞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의 교육청 천막농성과 관련해 투쟁현장 때마다 힘찬 목소리로 투쟁결의문을 낭독해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서대문장애인부모회 김혜미(39) 회장. 직업이 성우인 그녀는 현재 발달장애를 가진 딸 동연이(10)의 엄마로서 일하느라 농성에 참가하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 회장이 부모회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다. 아는 분의 소개로 서대문장애인복지관에 방문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이번 천막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일과 농성의 스케줄이 맞지 않자 일을 조정해가면서까지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농성이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이번 서울교육권연대의 천막농성의 의미를 짚어봤다.

성우 김혜미씨가 투쟁에 나선 이유

김 회장에게는 동연이 위로 중학교 2학년인 딸이 더 있다. 아무래도 엄마가 밖에서 투쟁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른 가족들이나 사춘기 큰 딸이 섭섭할 만도 한데.

“큰 딸이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도 깊고 어른스러워서 엄마의 활동을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예요. 가족들도 이왕 하는거 끝까지 잘해서 좋은 결과 나오길 바란다고 격려해줘서 큰 힘이 됩니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연이는 학교생활에 잘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1년 유예한 뒤 입학해 현재 일반초등학교 특수학급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요즘 동연이는 삭발한 엄마의 모습이 어색해 피하려 한다고.

“아이가 긴 머리를 좋아하는데 얼마 전 제가 삭발을 해서 아직까지 제 머리는 잘 안 만지려고 해요. 머리 자른 첫날은 무섭다고 오지도 않더라고요.”

지난달 28일 삭발식을 하기 전 모습. <에이블뉴스>

김 회장은 지난달 28일 장애인교육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주최로 열린 삭발식에서 다른 장애학생 부모들과 특수교사, 장애성인 등 6명과 함께 머리를 삭발했다.

“우리가 머리를 깎은 것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교육현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로서 그 비통함을 참지 못해서였습니다. 또 머리를 자름으로써 교육감의 답변을 좀 더 빨리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기도 했구요.”

교육권연대 요구안, 왜 절실한가

하지만 이런 많은 장애인부모들과 특수교사, 장애학생 등 장애인교육주체 당사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교육권연대의 대다수 요구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요구하고 있는 요구안 가운데 가장 시급히 요구하고 있는 사항은 특수학급 증설에 관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가 없어서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학급이 생기게 되면 자연히 특수교사도 오게 되는 것이고, 치료교육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먼저 만들어 주고 질적인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김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서대문 지역의 경우 초등학교 13곳, 중학교 3곳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고, 고등학교에는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에 김 회장은 이제 동연이도 몇 년 후면 인근 중학교로 진학해야 하는데 현재 특수학급이 있는 그 학교도 포화상태라고 큰 걱정이다.

“서울시내 어디든 사정은 마찬가지예요. 특히 서울 11개 지역 모두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일단 학교는 가야하니까 아이들이 일반학교 일반학급에 진학해 다니고는 있지만 아무런 지원이 없어 힘든 상황이에요. 아니면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거나 기껏 통합 교육시킨 보람도 없이 다시 특수학교로 가는데 그곳도 포화상태여서 정말이지 갈 학교가 없어요.”

현재 성우일을 하고 있는 김혜미 회장은 투쟁기자회견 때마다 힘찬 목소리로 투쟁결의문을 낭독한다. <에이블뉴스>

이처럼 초·중등교육 뿐 아니라 김 회장은 장애아유아교육기관 부족에 대해서도 문제의 시급함을 지적했다. 동연이는 보통의 장애아부모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 사교육기관에서 치료교육을 받았다. 유아교육기관이 없었을 뿐더러 복지관에서도 한없이 기다릴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장애아이에게는 조기치료가 정말 중요한데 교육기관도 거의 없을 뿐더러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복지관에서 치료교육을 받으려면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몇 년씩 기다려야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치료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교육기관을 찾게 되고요.”

이어서 김 회장은 “이처럼 엄청난 사교육비로 인해 몇 년 간 치료교육 몇 년을 받다보면 자기집 있던 사람들도 집을 팔고 전세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통합교육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동연이의 경우 언어치료가 가장 필요했는데 통합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일반아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학교가기 전에는 ‘주세요’, ‘줘’ 간단한 단어밖에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엄마 이렇게 해 주세요’하는 문장을 말할 정도가 됐다고.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덕분에 현재 언어치료는 받지 않고 미술심리치료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해 미술치료만을 받고 있다”며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동연이는 월, 수, 금 일반학급에서 수업하는 오전시간에 보조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아닌 김 회장이 직접 사비를 들여 보조원을 쓰고 있는 경우다.

이와 관련 교육부가 전국에 유급 특수교육보조원을 1천명 배치하고 있지만 장애학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혜택 받기가 쉽지 않다. 이에 인천이나 전북 등 일부지역교육청의 경우 추가예산을 편성해 자체적으로 특수교육보조원을 배치하고 있다.

이번 장애인교육예산 확보등을 위한 교육청 점거 농성은 현재 서울을 비롯해 울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경남도교육청의 경우 경남장애인교육권연대의 경남교육청농성 9일 만인 지난달 20일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 정문앞에 붙여진 장애인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들. <에이블뉴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말도 하는데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요구안 가운데 장애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실시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며 “이것은 장애인교육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대부분 요구안 수용불가 입장 고수

지난 1일 서울교육청은 실무협의를 통해 ▲특수학급 증설 불가 ▲치료교사의 증원 문제를 치료교육보조원이라는 일용직의 형태로 지원해 줄 수 있음 ▲직업교사의 배치 불가 ▲특수교육보조원 및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원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추경을 통해 마련함 ▲장애인야학 지원 불가 등 서울교육권연대의 요구 사항들에 대해 대부분 수용 불가의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지난 4일에는 전화를 통해 서울교육권연대 대표단에 ▲특수교사 증원 불가 ▲강사 등 비정규직 교사 배치를 통해 2006년도부터 특수교사 증원 계획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 지원의 경우 2005년도 하반기부터 지원 가능(특수학교는 2004년도에 지원했으므로 2005년도에는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등의 입장을 추가로 전달했다.

이에 대해 교육권연대는 어이없는 대책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도 “현재 서울에 순회 치료교사가 7명 배치돼 있는데 여기에 겨우 4명 증원해 합해서 내년이면 11명이 된다”며 “이 말은 서울 11개 교육지청에 1명씩 배치하겠다는 소린데 교육지청마다 700~800명씩이나 되는 장애학생들을 치료교사 혼자서 다 감당하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이번에 서울교육청이 제시한 ‘치료교육보조원’이라는 제도는 교육부의 어떤 계획에도 없는 것으로 근거조항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문적인 치료교육을 할 수 있는 치료교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를 배치해달라는 것이지, 이렇게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마련도 없이 내던지는 정책이 아닙니다.”

“예산은 교육감 의지만 있으면 추경예산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인데 서울교육청에서 장애인교육에 대한 의지가 너무 없어요. 어떻게 농성 20일 동안 얼굴한번 안 비칠 수가 있나요?”

지난달 28일 장애인교육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거행한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김경애 공동대표, 서울통합교육학부모회 박문희 회장, 서대문장애인복지관장애인부모회 김혜미 회

엄마들이 뭉치고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천막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학부모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부모모임을 비롯해 그동안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을 중심으로 참여한 것에서 조만간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도 대거 참여할 계획이다.

“얼마 전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둔 학부형이 오셨는데 우리들의 요구와 천막농성 모습을 보시고는 정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제는 하나로 뭉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고는 다른 부모님들도 설득해 함께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장애인교육권확보를 위해 함께 투쟁하면서 알게 된 다른 엄마들과는 이젠 거의 가족같다는 김 회장. 같이 활동하는 어머님들이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보니 금세 친해져 이제는 하루라도 안보면 이상할 정도예요. 농성하면서 선생님들이 엄마들 힘드시다고 대신 천막을 지킬테니 하루 쉬라고 해도 그 하루를 못 참고 다시 나올 정도라니까요.” 오직 장애아이들도 다른 비장애아이들처럼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박한 바람을 위해 추운날씨에도 엄마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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