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몸에 맞지 않는 책상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돌려서 시험장에 앉아 있는 허광훈씨. <사진 대구DPI>

올해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장애인 수험생들의 수험 환경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구DPI 김병하(58·대구대 특수교육학 교수) 상임대표가 지난해 수험 환경이 열악해 수능시험을 포기해야했던 허광훈(38·뇌병변1급)씨를 대신해 대구광역시 교육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상대로 제출한 진정에 대해, 장애인 수험생의 수험환경 대폭 개선하는 내용을 담아 최근 조정 조치를 취했다.

특히 조정 과정에서 대구DPI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장애인 수험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내용에 합의함에 따라 향후 수능시험을 치르는 장애인들의 편의가 크게 증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권위 차별행위조정위원회 조정서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교육감은 피해자 허씨가 시험을 보기에 적합한 책상이 마련돼 있고, 고사장 건물 내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돼 있는 대구대 부설 보건학교에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허씨에게 수리영역 등 계산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푸는데 사용할 별도의 연습용지를 충분히 제공하고, 매 교시별 휴식 및 준비시간 중에 시험실에 피해자가 입회한 가운데 피해자가 문제지에 표시한 답안을 이기요원이 OMR 답안지에 이기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당해 교시의 휴식 및 준비시간 중에 피해자의 사정으로 이기확인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다음 교시의 휴식 및 준비시간 중에 피해자가 이기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마지막 시험시간의 경우에는 시험시간이 종료된 후 피해자에게 상당한 시간을 주어 피해자가 이기확인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정 조치와는 별도로 대구DPI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시험 원서에 ‘이기 필요 여부를 묻는 항목’을 신설하고, 시험주관기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기작업 확인을 책임지도록 하는 데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에 따르면 기존 수능원서에 ‘뇌병변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라고 표시하면 무조건 이기가 필요한 수험생으로 판단했으나, 이기 필요여부를 장애유형으로 구분하지 않고 수험생의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이는 뇌병변장애인 중에도 이기가 필요없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지체장애인 등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에도 이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해 수능시험의 변화를 이끌어낸 허광훈씨. <에이블뉴스>

또한 수험원서에 ‘이기가 필요하다’고 표기한 모든 수험생은 이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본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으며, OMR 답안지 이기실은 장애인 수험생이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시험장 건물 1층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 특히 이러한 모든 내용은 2005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업무처리지침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대구DPI 윤삼호 정책부장은 “장애인 수험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국가고시 등도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해 개선책 마련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편 윤 부장은 이번 사건이 ‘차별 시정조치’가 아니라 당사자끼리 합의하는 ‘조정 조치’가 내려진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한계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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