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란 연구원이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된 ‘장애인교육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한국 농인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 수어 학급을 신설하고, 교원자격이 있는 농인 교사 배치 등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강남대학교 특수교육재활연구소 곽정란 연구원은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된 ‘장애인교육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농학교는 수어가 아닌 청각언어(한국어)를 지원하는 학교가 됐다. 통합학급에서는 방치되는 게 현실”이라며 “학습권 보장을 위해 일본 사례를 참고해볼만 하다”고 강조했다.

곽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농인의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농학교에 속한 교사의 수화구사능력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육방향 자체가 농인의 제1언어가 아닌 한국어의 읽기 쓰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곽 연구원은 “농학교는 한국어 읽기 쓰기가 중심이다. 언어인 수어는 보조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한국수화언어법 제1조는 농인과 한국수화언어 사용자의 언어권,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같은 법 제11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학교 교육에서 한국수어를 사용한 교육・한국수어를 통한 학습이 원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유형의 변화도 농인학생들의 학습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상적으로 농학교 구성원의 1/3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거나 보청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 학생이다.

수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과 구화와 수지한국어를 사용한 청각장애인이 같이 공간에 있다보니 수어로만 수업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 제24조는 농인이 수화학습, 집단의 언어정체성 증진을 촉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농인)의 교육이 개인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적절한 언어, 의사소통 방식 및 수단으로 학업과 사회성 발달을 극대화하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도록 보장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일본의 경우 청각특별지원학교(한국의 농학교), 난청학급, 통급지도교실 세가지 형태로 농인교육을 지원한다. 2018년도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에 따르면 청각특별지원학교가 5546개소로 가장 많고 통급지도교실 2196개소, 난청학급 1122학급 순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훗카이도삿포로 청각특별지원학교(농학교)는 농인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립농학교인 삿포로학교는 아동과 보호자의 교육적 요구, 학생 개개인의 의사소통 방법에 따라 3가지 학습형태로 운영된다.

먼저 일본수어그룹은 일본수어에 최적화된 그룹으로 모든 수업이 일본 수어로 이뤄진다. 삿포로학교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거나 보청기를 사용해 구화 및 수지일본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청각장애에 다른 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한 그룹을 별도로 운영한다.

메이세이학원의 사례 역시 눈여겨볼만 하다. 메이세이학원은 2008년 4월 설립된 농인에 특화된 교육기관이다. 일본 구조개혁특별구역계획에 따른 교육특구로 지정받아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독자적인 교육과정은 일본 정부의 정식 인정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일본수어가 제1언어로 사용된다. 일본어 읽기・쓰기를 제2언어로 하는 이중언어・이중문화 농교육을 실시한다. 수어교과는 일반 국어교과에 해당하며 일본어는 제2외국어와 비슷하다.

가장 큰 특징은 교직원 중 일본수어를 일상생활의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 전체인원의 절반 이상이라는 점(전체 교직원 42명 중 22명)이다. 학교장 역시 농인(카야 요코) 당사자다. 이 외에도 일본 정부는 농인교사를 확대하기 위해 실태조사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곽 연구원은 “한국의 농학교는 한국수어를 생활언어로 사용하는 농인과 인공와우 수술을 하거나 보청기를 사용하는 학생이 함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수어로 배우고하 하는 농학생을 위한 한국수어 학급을 신설해야 한다. 삿포로농학교의 사례는 한국이 참고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학교 교사의 수어능력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교사를 배치하는 것”이라면서 “(교원자격을 갖춘) 농인교사가 배치되면 학습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복지대학교 한국수어교원과 허일 교수(사진 좌)와 숙명여자대학교 박민영 학생(사진 우)이 발언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토론자로 나선 한국복지대학교 한국수어교원과 허일 교수는 “대부분의 농학교 교사들은 수어장애인들이다. 수어장애 교사가 입으로 한국어를 말하면서 수지한국어를 하니, 농학생들은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고 학교 생활에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 교수는 “농학생들은 한국수어에 능숙한 교사가 하는 수업을 듣고 교사와 수어로 대화하고 싶어한다”면서 “농학생이 더 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교사가 양성되고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명여자대학교 박민영 학생(당사자)은 “농학교는 수어가 제1언어인 농학생을 위한 학교다. 농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어로 수업하는교사 이 꽤 있다고 한다. 구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이들은 의사소통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학습권도 침해된다”면서 “농학교 근무 교사는 수어통역사 자격 내지 수어교원 자격을 반드시 충족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된 ‘장애인교육 발전방안 토론회’ 전경.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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