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약사항인 장애인 연금제 도입이 재정 문제에 부닥치면서 물거품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모습. <에이블뉴스 자료사진>

[기획]장애인연금제 도입 논의과정 진단

장애인연금제 도입이 ‘장애인연금제는 아직 우리 현실에 이르다’라는 현실론과 부딪치면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한 장애인복지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정계 및 장애인계에서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못한 채 부정론만 늘고 있는 추세다. 장애인 연금제 도입은 이렇게 물 건너가는 것일까? 장애인복지공약과 관련해 현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空約)으로 평가될 위기에 놓여있는 장애인연금제 논의과정을 짚어봤다.

노 대통령 독립적 장애인연금제 도입 약속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시절 “장애인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연금수준과 대상은 장애로 인한 추가소요비용, 장애 등급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노 대통령이 약속한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장애수당과 별도로 추진되는 것이었다. 실제 장애수당에 대해서 노 대통령은 “장애수당, 아동부양수당 등을 현실화하고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이 제시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애초 ‘장애수당을 현실화해 장애인연금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장애인계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장애수당 확대와 장애인연금제 도입을 별도로 추진하겠다고 최종적으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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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5개년계획 불행의 시작

하지만 지난 2월 19일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에서 확정된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에서는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장애수당의 확대를 통한 도입으로 방향이 선회한다.

그것도 5개년계획 원문에는 장애인연금제 도입에 대한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았으며 다만 기자들에게 돌린 보도자료에만 장애수당 확대를 통한 장애인연금제 도입이 언급돼 있어 혼란스럽게 했다.

5개년계획의 방향 선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8일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대통령공약 장애인연금제도(법) 확인 요청' 서한을 보내고,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지난 3월 5일 서한을 보내 '장애수당의 점진적 연금화'는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는 ‘장애수당의 점진적 연금화’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장애인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장애인계에서조차 이슈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장애인단체들은 늘어났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와 같은 응집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관심, 그러나…

공대위는 그렇지만 장애인연금제의 불씨만을 꺼트리지 않았다.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과 손을 잡으며 장애인연금제 실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무기여 장애연금법안'을 작성해 오는 9월 개최되는 정기국회에 의원입법으로 청원할 목적으로 연금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검토에는 제3정조위원장인 이원형 의원이 중심이 됐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제시한 부유세 도입과 장애인연금제 도입을 접목시켜 부유세 도입을 통한 장애인연금제 실현을 내걸고 2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동시에 장애인연금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구체적인 성과물은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연금제, 야당마저 등 돌리나

▲ 28일 오후 한나라당에서 열린 장애인연금제 토론회에서 장애인계 인사들이 장애인연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러한 가운데 28일 한나라당이 주요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장애인연금법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이강두 정책위의장, 이원형 의원, 심재철 의원 등이 참석해 장애인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애초 무기여장애인연금법을 올해 정기국회에 의원입법할 예정이었던 이날 한나라당에서는 의외로 장애수당 확대 입법 발의안을 들고 나왔다. 또한 한나라당은 공대위측에 지난해 11월 28일부터 이달까지 장애인연금제와 관련된 나름대로의 검토 결과를 정리한 하나의 문건을 제시했다.

이 문건에는 지난 5월 국회법제실에 장애인연금제 검토를 요청했으나 6월에 회의적인 답변을 받았으며 급기야 7월에는 국회법제실과 협의해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변경해 장애인복지법중 개정법률안을 작성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특히 이원형 의원은 이 문건에서 “2002년 11월 28일 공청회 참석 후 지속적으로 무기여장애인연금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현재 시점에서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무기여장애인연금법은 장기과제로 돌리고 현실 가능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제시한 장애인연금제 실현 불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무기여와 연금의 양립 불가능성 ▲재원마련 현실적 방안 없음 등으로 정리됐다.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장애인계 반발

이러한 한나라당의 문건을 본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일제히 반발을 시작했다. 포문을 연 것은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유흥주 위원장이었다.

“현재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내용보다도 못하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들에게 미래는 없다. 장애연금제를 수당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한나라당이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면 민주당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 유 위원장은 연금제 도입을 통한 고용, 소비 등 다양한 효과를 강조하며 “장애인연금제를 이야기할 때는 현실을 깨고 이야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뇌성마비부모회 최낙건 회장은 “장애연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금액이 얼마냐,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며 “마음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남세현 팀장은 “장애인연금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끝난줄 알았는데 오늘 한나라당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직 장애인연금제가 과연 필요하냐는 논쟁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며 “한나라당이 제시한 것은 장애인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박춘우 사무총장은 “장애연금제 도입은 여야를 떠나서 정치권이 하나로 뭉쳐 정책적인 역량을 쏟아줘야 가능하다”며 “장애인연금제 도입을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장애수당을 확대하는 것은 지양, 제고해주고 단계적, 순차적으로라도 장애인연금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인환 전 기획실장은 “장애수당의 확대도 필요하고, 장애인연금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도 “논의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며 “뭔가 하나라도 발전해 나가야되는데 계속해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이렇게 장애인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토론회 말미에서 이원형 의원은 “장애인연금법 제정은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장애인연금제로 가야 되는 방향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장애수당을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장애수당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정리했다.

한편 복지부는 여전히 장애수당 확대를 통한 연금제 도입 주장을 내놓았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박찬형 과장은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기존 국민연금제로 편입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나 국민연금도 그 재원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는 내년도에 장애수당을 대폭적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예산을 요구해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지금은 시행을 논해야할 때”

▲ 우리 복지수준에서 장애인연금제 도입은 무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우주형 교수. <에이블뉴스>
장애인연금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는 달리 회의적인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애인계에서 조차 “정부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도입하느냐”며 노골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재원 마련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더 이상 복지 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우주형 교수는 “더 이상 예산의 문제가 복지의 문제를 볼모로 잡을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의 국민복지를 위해 국가예산이 쓰이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며 “무기여 장애인연금제도의 시행유무를 논하기 보다는 처음에 어느 수준에서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질 때 장애인의 복지가 생산적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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