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각장애인이 새로나온 신권을 만져보고 있다. <에이블뉴스>

지난 1월 22일 정식 발행된 1천권과 1만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시각장애인들은 액면가 식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시각장애청년연합, 희망제작소 등 관련단체들은 “그동안 지폐의 액면가를 구분하기 어려워 지속적인 경제적 손실을 당해왔는데, 이번에 발행된 신권 또한 시각장애인의 식별문제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5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제출한다.

▲지폐 식별, 왜 어려운가=지폐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불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지폐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액면가를 구분하도록 1천 원짜리에는 점 한개, 5천 원짜리에는 점 두개, 만 원짜리에는 점 세 개가 볼록하게 찍혀 있다.

하지만 점자표식이 잉크로 돼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폐종이가 마모되어 식별이 어렵다. 또한 각 지폐마다 크기 차이가 조금씩 나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미미해 촉감으로 구분해 내기 어려워 시각장애인들은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와 조선대(특수교육학) 김영일 교수가 지난 1월 7일부터 9일까지 시각장애인 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시각장애인들은 지폐 구분이 어려워 손해를 본적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폐를 잘못 구분해 손해를 본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2명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지폐를 한 장만 가지고 있을 경우 액면가를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65명이 ‘구분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지난 2006년 1월 2일 발행된 5천원 권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이상이 ‘이전 지폐에 비해 점자표식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구권이나 새로 발행된 5천원권이나 시각장애인들로부터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신권은 어떻게 바뀌었나=한국은행은 올해 1월 발행된 신권은 시각장애인들이 식별 마크를 쉽게 찾도록 하기 위해 지폐 앞면 왼쪽 아래에서 앞면 오른쪽 중간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또한 지폐별 크기 차이를 5mm에서 6mm로 조금 늘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용 식별용 점자 크기는 오히려 줄었다. 기존 지폐는 직경 4.3mm(1천원권은 3.2mm)였는데, 신권은 1천원권, 5천원권, 1만원권 할 것 없이 2.5mm로 모두 축소된 것이다. 특히 점자 표식이 예전보다 더 쉽게 마모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시각장애인들의 불만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구분이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전 지폐에 비해 점자표기법이 나아진 것이 없고, 지폐의 종류만 많아져 크기로 구분하기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1천권과 1만원짜리 신권.<에이블뉴스>

▲한국은행, 장애인 의견 수렴했나=한국은행측은 새 지폐를 발행할 때, 시각장애인들의 이 같은 어려움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얼마 전 한국은행 발권 정책과 차장을 직접 만나봤다.

그는 “새 지폐의 점자표기는 대전조폐공사 기술연구소 담당과장이 대전지역의 맹학교 교사 6명에게 직접 자문을 구해 제작한 것이며, 시각장애인 6명을 대상으로 식별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개인차가 있었으나 식별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근 지적되고 있는 점자식별 문제는 마모에서 유발된 문제로 전 세계의 공통된 고민이다.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하겠으나, 현 시점에서 재발행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관련 기관에 문의를 했고, 나름대로의 배려를 했다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들의 생각은 달랐다. 개선책에 대해 장애인당사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한국은행 측은 시각장애인의 지폐 식별이 이전보다는 분명 나아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시각장애인 6명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부의 안일한 정책방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또한 “지폐들의 크기에 좀 더 차이를 두고, 지폐 종류별로 모서리 모양을 조금씩 달리해 비교하기 쉽도록 제작하는 등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플합시다]2007년 황금돼지해, 장애인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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