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과 함께 하는 세미클래식 음반을 낸 나사렛대 이상재 교수.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컴퓨터음악(MIDI) 제작 과정을 이수한 시각장애인 4인방이 시각장애인 클라리넷 연주가 이상재 교수(시각 1급·나사렛대 교수)와 함께 만든 세미클래식 음반 'Close your eyes(눈을 감으세요)'가 출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장애인의 달을 맞아 출시된 '눈을 감으세요'에는 모두 13곡의 연주곡이 담겨 있고, 이 가운데 이상재 교수가 작곡한 2곡을 제외하고 11곡이 이들 4인방이 작곡 또는 편곡한 곡이다. 지난해 9월부터 손발을 맞춰 음반작업을 해온 이봉길, 김희남, 김동원, 이윤주씨가 주인공들이다.

가장 많은 곡을 만든 11기 교육생 김동원(38세·시각 1급)씨는 이상재 교수의 자작곡 3곡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편곡했고, 이윤주(28·시각 1급)씨는 러시안 민요를 편곡해서 수록했다. 그리고 12기 교육생 중 김희남(38·시각 1급)씨는 자신의 자작곡 2곡과 이상재씨의 자작곡 1곡을 편곡했고, 이봉길(49·시각 1급)씨는 자작곡 1곡과 이상재 교수의 곡과 쇼팽의 곡을 편곡하는 등 총 11곡이 4인방의 손을 거쳐 만들어 졌다.

이들과 이상재 교수와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상재 교수가 2년 전에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컴퓨터음악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교수는 당시에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난해에 음반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복지관측에서 미디교육생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권유을 받고서 흔쾌히 허락하게 된 것이다.

이상재 교수는 "모두들 힘들게 작업하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고쳐달라고 하기가 어려웠지만 모두들 열심히 해주어 고맙다"며 "지난해 9월에 시작해서 연말에 음반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곡 수정이 많아져 지금에야 세상에 내 놓게 되었다"고 말한다.

'눈을 감으세요'라는 음반 타이틀은 언뜻 듣기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이 제목을 붙인 이유는 다른데 있다. 이 상재 교수에 따르면 눈을 뜨면 화나는 일들이 많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보다는 인상 찌푸리게 하는 세상사에서 벗어나 눈을 감고 조용하고 명상적인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심 끝에 붙인 제목이라는 것이다.

정통 클래식 음반에 이어 두 번째로 세미클래식 음반을 선보이게 된 이상재 교수는 "요즘의 음반들은 지나치게 상품성을 의식해서 인지 한 음반에 여러 장르의 음악이 뒤섞여 있어 음악적인 메시지가 들떠 있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며 "일정한 음악적 흐름을 유지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추억을 떠올리고 싶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교수는 음반시장의 주소비자인 10대의 분위기보다는 20-30대 이상의 사람들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음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 산파 역할을 했던 정경호씨(28·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미디강사)는 "Easy listening 계열의 감미롭고 부담 없는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의 뛰어난 음감과 음악성이 십분 발휘된 작품들"이라고 평했다.

이상재 교수도 이 음반에서 '잊혀진 사랑'과 '황혼의 기억', '잃어버린 날들'과 '방랑'을, '바람 부는 휴일'의 작음 설레임과 '어느 오후' 따사로운 봄볕 속에서 느끼는 아련한 슬픔들을 가슴 저리도록 진솔한 음색으로 들려준다.

또 이 음반을 들어보면 귀가 번쩍 뜨이는 곡이 하나 있다. 김희남씨가 작곡한 'A breezy holiday(산들바람이 부는 휴일)'는 매우 밝고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악으로 곡을 듣다보면 어디론가 소풍을 떠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지난 2001년부터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음악을 가르쳐 왔지만 그 동안 1백여 곡에 이르는 습작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번처럼 정식 음반으로 제작되어 음반시장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컴퓨터음악이 시각장애인의 적합한 직종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 이번 음반제작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컴퓨터음악 4인방이 곡을 만든 '눈을 감으세요' 음반 표지.

*조희도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사회재활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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