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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효력 실감했어요"

중등교원 임용고사 합격한 시각장애인 박춘봉씨

시험지 음성 변환 지원받아 합격…편의제공의 힘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2-23 20:17:07
올해 중등교원 임용고사에 당당히 합격한 시각장애 2급 박춘봉씨.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올해 중등교원 임용고사에 당당히 합격한 시각장애 2급 박춘봉씨. ⓒ에이블뉴스
“머지않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제가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장애인들이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교육지원과 시험편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너무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죠.”

올해 중등교원 임용고사에 당당히 합격한 시각장애 2급 박춘봉(남·31세)씨. 그는 임용시험에 합격한 소감을 묻자, 자신이 합격했다는 기쁨보다는 "정당한 시험편의 요구를 통해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가 임용시험에 합격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다. 열악한 장애인 교육시스템은 그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감당해야 했다.

우선 적합한 교재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다. 점자 및 음성교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텍스트파일이 필요했지만, 교재마다 텍스트파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은 대학동기들이 교재를 통째로 읽어주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공부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 적합한 교육교재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문제집 한권을 풀려고 해도 텍스트 파일이 없으면 불가능하죠. 동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거예요.”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더 큰 장벽을 만났다. 시각장애인들의 시험편의를 위해 점자시험지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중학교 시절 시신경 위축으로 중도장애를 입어 점자 습득 과정이 짧았던 박씨는 점자해독속도가 느려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시·도교육청에 점자문제지 대신 컴퓨터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박씨는 난해 4월 중등교원 임용고시에 응시했던 시각장애인 32명과 함께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교육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아주 고무적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16개 시·도교육청 및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대표해 “향후 임용시험에서 음성지원 컴퓨터를 지원하고, 시험시간도 1.5배로 확대해주겠다”는 답변을 보내온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은 2009년 임용시험부터 적용됐다. 그는 1차(객관식)·2차(주관식) 시험에서 음성지원 컴퓨터를 지원받아 무사히 시험을 치렀고, 결국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함께 진정을 제기했던 동료 2명도 함께 합격했다.

"중도시각장애인들은 점자문제지를 해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음성지원이 아주 절실하죠. 점자 해독 속도가 시험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제공돼야 할 편의라고 생각해요.

특히 올해는 객관식 시험은 지문이 길이가 늘어나, 점자로 충분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전맹 친구도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저도 음성변환 지원이 없었다면 분명히 떨어졌을 거예요. 정당한 편의제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이 때문에 그는 최근 전해지는 국가인권위원회 인원감축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아주 획기적인 법이죠.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릇된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래요”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각장애인 후배들에게 여러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등 관련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들을 적극 활용해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차별적 요소가 있을 때는 진정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해답을 찾으라는 것.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실시한 임용대비반에서는 문제집과 교재 등이 텍스트 파일로 제공됐어요. 덕분에 큰 도움이 됐죠. 저작권 때문에 원본제공을 꺼리는 출판사들이 많은데, 관련 기관들의 도움을 받으면 보다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거 같아요.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심히 여기지 말았으면 해요. 만약 정당한 방법을 통해 자료를 요청했는데도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요. 여러 방안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정당한 권리를 누리길 바래요. 길은 찾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리는 것 같아요.”

주원희 기자 주원희 기자블로그 (jwh@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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