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세청 빌딩앞에서 열린 거리문화제에서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소속 문명동 조직국 차장과 이규식 투쟁국장이 "서명운동 좀 해주세요"라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100만인

"새해에는 장애인 문제가 시혜적이나 동정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살 맛 나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최용기(37·지체장애1급) 대표의 새해 소망은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되짚어보면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인간 대접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실 때문인지 오이도역 사고 1주기 투쟁, 발산역 추락사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단식투쟁, 시청역 선로점거 등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공동대표 박경석) 소속 장애인들은 숨가쁜 한해를 보냈다.

2002년 12월 31일 오후.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장애인들은 서울 종로구 국세청 빌딩 앞에서 거리문화제를 펼쳤다. 박준, 젠, 우리나라, 노래공장, 연영석, 류금신 등 민중가수들을 초청해 공연을 펼치며 지난 한해의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의 새로운 다짐을 가져보는 자리였다. 이날 거리문화제에 나온 장애인들의 새해 소망을 집약해보면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최 대표의 소망처럼 '장애인들이 살 맛 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세상과의 싸움 그만했으면…" 소망

▲새해에는 세상과의 싸움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장애인이동권연대 이규식 투쟁국장.
'새해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34·지체장애1급)씨는 대뜸 "새해에는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제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우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줘서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그만 좀 싸우게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김태현 사무국장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고 있는데 이제는 이동권 만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비롯해 장애인들이 생존권을 보장받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 국장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좀더 힘을 모아야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고입과정에 다니는 문명동(23·뇌병변장애1급·장애인이동권연대 조직국 차장)씨의 새해 소망은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법적인 보장을 받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문씨에게 이동권 확보만큼 절실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이동권연대에서 진행하는 장애인 이동권 입법 투쟁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법적으로 이동권 보장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약속 잊지 마라" 주문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장애인과의 약속을 꼭 지키길 바란다는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최재호 사업팀장.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이어졌다.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사무국에서 일하는 고명숙씨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좀더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이규식 조직국장도 "자립생활이 우리나라에서 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며 "이것을 이루기 위해 장애인들이 자기 주장을 확실히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5살 난 아들이 있다는 뇌병변 4급장애인 이원진(32·서울시 은평구 역촌2동)씨는 행복한 가정을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구해서 자그마한 집 한 칸이라도 얻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됐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의 실업률이 빨리 낮아져야겠죠. 장애인들이 맘놓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상도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바람도 있었다.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최재호(38·지체3급) 사업팀장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무기여장애인연금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꼭 제정한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 약속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거리문화제에 모인 장애인들은 바쁘게 지내온 한해가 가는 것이 아쉬운 듯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3년 새해를 불과 몇 시간 남겨놓지 않은 종로거리에서 "서명 좀 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었다.

▲2002년이 저물어가는 종로 거리에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확보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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