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글러브 화재참사에서 총 4명의 장애인이 사망한 이유를 대부분의 언론은 장애 탓으로 돌렸다. <에이블뉴스>

시온글러브 화재참사 진실 찾기-②

“경찰은 이날 불이 이른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고 기숙사에 있던 근로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어서 신속히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연합뉴스 1월 8일자)

“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장갑 공장에서 발생, 9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는 새벽 시간대에 일어난 데다 피해자가 사리판단 및 행동의 속도가 떨어지는 장애인이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1월 8일자)

"[기자리포트]더욱이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직원 14명은 모두 정신지체장애인들이어서 불이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피를 하지 못했습니다.

[공장직원]장애인들이 정신지체니까 저 뒷문으로 나가야 되는데 방안으로 들어갔지. 그래서 피해가 더 크지. 그게 안타까워 죽겠어."(YTN 1월 8일자)

[자유게시판]칠곡화재사건 故이동열의 동생입니다

“화재로 숨진 근로자 4명 모두 정신지체 장애 2~3급으로 정상인보다 상황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느린 탓에 신속히 대피를 못해 숨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또 화재 당시 사감 등 이들을 대피시킬 사람도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유족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중앙일보 1월 9일자)

“이날은 휴일이어서 기숙사를 관리하던 사감이 자리에 없었던 데다 장애인들이어서 사리 판단과 민첩한 행동이 어려웠던 점이 참사를 키운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한겨레신문 1월 9일자)

“경찰은 이날 불이 휴일 이른 새벽에 발생한데다 기숙사에 남아 있던 노동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이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부산일보 1월 10일자)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결에 복도로 달려 나왔다는 임모(24·정신지체2급)씨는 ‘캄캄한 복도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반대편으로 나가자고 소리쳤지만 자꾸 불이 난 곳으로 들어가 혼자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영남일보 1월 10일자)

죽음의 원인을 장애에서 찾은 무책임한 언론

시온글러브 화재참사로 총 4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죽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 중의 하나로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비장애인보다 상황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YTN은 ‘잠자던 직원이 모두 정신지체장애인이어서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다’는 기자리포트에 이어 “장애인들이 정신지체니까 저 뒷문으로 나가야 되는데 방안으로 들어갔지. 그래서 피해가 더 크지”라는 내용의 시온글러브 직원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아예 정신지체와 지체장애를 혼돈하는 언론도 있었다. 부산일보에서는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이라며 정신지체와 지체장애를 혼동, 오보를 내기도 했다. 화재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린 연합뉴스에서도 일부 보도에서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라고 표현, ‘신속히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전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구지사의 확인 결과에 따르면 이날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장애인 중에는 지체장애인 2명이 있었지만, 이 2명 이외에 모든 장애인은 정신지체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결국 정신지체장애가 이번 화재사고의 인명피해가 컸던 결정적 원인으로 단정하거나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해 이번 사건의 진실을 왜곡했다. 이날 화재사건 당시의 정황을 생존자들의 증언과 경찰조사결과를 토대로 정신지체장애인 4명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봤다.

불 일찍 발견한 비장애인 노동자 모두 탈출

화재당시 공장에는 총 26명이 있었으며, 이중 장애인이 16명, 비장애인이 10명이었다. 26명 중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사람은 19명이었고, 근무하고 있던 사람은 7명이었다. 근무 중이던 노동자 7명은 이번 사건의 진실을 가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들이다.

8일 오전 근무자 7명 중 6명은 공장 지하 1층 편직실(장갑을 짜는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1명은 경비였다. 편직실 근무자 6명 중에는 여성장애인 1명과 외국인노동자(파키스탄 출신) 3명도 포함되어 있다.

화재당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이들 노동자 7명은 잠을 자고 있었던 19명(이중 4명이 비장애인)의 노동자들보다 화재를 먼저 감지했다. 가장 처음에 불을 발견했던 사람들은 편직실 근무자 6명 중 지상 2층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갔던 노동자 3명(정모씨, 김모씨, 외국인노동자 1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3명중 정씨와 김씨는 “식사를 하던 중 밑에서 ‘펑!’ ‘펑!’ ‘펑!’ 소리가 나고 연기가 나고 전기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화재 사실을 감지했다”고 증언했다. 화재 징후를 발견한 이들은 각각 분산돼서 나름대로 대처했다. 정씨는 1층으로 내려가 경비를 찾았고, 외국인노동자는 작업 중이던 지하 1층 동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갔다.

공장 건물 마당에 있는 경비실 인근에서 경비를 찾은 정씨는“경비와 무슨 일인지 얘기하고 있는데, 1층에서 불길이 보였다. 그래서 곧 바로 119에 신고를 하고, 자판기 근처에 있던 차를 인근 공장으로 운전해 옮겼다. 불길이 번지고 있어 2층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불이 났을 당시 경비는 샤워를 하고 있다가 불이 깜박거려 화재 징후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왔다. 샤워시설이 2층에 있기 때문에 경비도 2층에서 화재를 감지하고 1층으로 나와 밖으로 나온 정씨와 만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경비가 ‘불이야!’라고 2층에서 외친 것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장애인 근무자 1명, 지하 출입구로 나가 살아

지하로 내려간 외국인노동자는 동료들과 함께 지하 1층 출입구를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목숨을 건졌다. 당시 외국인노동자들과는 다른 작업장에서 근무 중이던 여성장애인 1명은 “불이 난 줄은 모르고, 기계가 멈춰서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러는 동시에 2층에 혼자 남았던 김씨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자고 있는 기숙사 206호실에 들어갔다. 김씨는 “연기가 나고, 벽이 뜨거워져 화재가 난 것을 알고 206호 들어가 장애인들을 깨워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들어갔던 방에는 모두 5명의 장애인들이 자고 있었고, 이들은 김씨와 함께 모두 창문을 통해 탈출해 살았다. 김씨는 “‘불이야!’라는 소리를 외쳤지만 연기가 많아져 다른 방으로는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불을 일찍 간파한 근무자 7명과 206호실에 있었던 장애인 5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비장애인 4명, 장애인 10명 총 14명은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다.

불을 늦게 감지한 장애인들만 봉변당해

기숙사는 A동과 B동으로 나뉜다. 기숙사는 주·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이 교대로 자거나, 집이 멀어 출퇴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는 곳이다. B동은 외부로 통하는 비상계단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당시 비장애인 4명과 장애인 1명이 자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비장애인 4명과 장애인 1명은 불이야 소리를 듣고 화재를 감지, 이 비상계단으로 빠져나와 살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장애인 9명. 칠곡경찰서 관계자는 “비장애인 노동자들이 빠져나오면서 불이야 소리를 외치고, 창문으로 뛰어내려라 등의 소리를 외쳤지만 방안으로 들어가 장애인들을 깨우거나 구하지는 못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불을 가장 늦게 감지하고, 일찍 감지한 비장애인들에게 구조를 당하지 못한 장애인 9명 중 결국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가 난 사실을 먼저 감지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구DPI는 “화재당시 봉고차는 옮기면서, 비장애인 중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펼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사망자와 부상자는 전원 장애인이고 비장애인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따라서 80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 평소 안전교육이나 구조 활동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일부 언론에는 "기숙사 사감이 당시 외출 중이었다"고 보도됐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대구DPI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시온글러브는 기숙사 사감제도 자체를 두고 있지 않았다. 이는 시온글러브측에서 장애인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증거다.

화재경보기 늦게 울리고 소리 작아 제 기능 못해

화재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렸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여부도 점검돼야할 부분이다. 칠곡경찰서 관계자는 “생존자 진술을 받은 결과 화재경보기 소리를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반으로 갈렸다”고 밝혔다. 편직실 근무자 정씨도 이 화재경보기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라면 먹던 것을 멈추고, 계단으로 내려가다고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10초도 울리지 않았고, 소리도 작았다”고 말했다.

불을 처음 감지했을 때인 식사 도중에는 이 경보기가 울리지 않은 것이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 식사를 하고 있던 도중은 이미 지상 1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2층까지 올라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화재경보기가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 것으로 귀결되는 대목이다.

보통 화재경보기는 열이나 연기에 의해 반응한다. 열에 의해 반응하는 화재경보기보다 연기에 의해 반응하는 화재경보기가 더 빨리 화재를 감지한다. 결국 화재경보기의 기종에 대해 경찰의 세심한 확인과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화재경보기와 함께 짚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건물이 ‘스티로폼 패널’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스티로폼 패널은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고, 잘 번지며 유독가스가 많이 나와 후진국형 대형 화재참사의 주범으로 불리는 건축 재료다. 이에 따라 당시 불은 순식간에 기숙사까지 번졌고, 이 속도만큼 장애인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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