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내가 일하는 이 곳은 비가 오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동에 불편함이 많은 장애인들은 비가 오면 할일을 다음으로 미루고 대개 집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에게는 상담이나 민원으로 협회를 방문하는 장애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간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장애인을 수송하는 복지택시에 항상 동승하는 상담실장이 서울출장 중이라 내가 복지택시에 동승하게 되었다.(복지택시는 장애인이 외출할 시 전화로 예약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특장차다.)

오늘 이용자는 아이를 낳은 후 원인 모르게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45살의 P씨로 장애를 고쳐보고자 소위 말하는 사이비 종교에 모든 재산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대출을 내어 2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덩이에 앉아 있는 장애인으로 생활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방문한다는 목적이었다.

이전에 몇번 협회에 나와 자신의 삶을 하소연하며 딱한 처지를 상담했던 터라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엔 남편이 나서서 장애를 고쳐보고자 스스로 대출을 내 종교단체에 기부해 놓고선 별다른 차도 없이 빚만 늘어나니까 이젠 P씨한테 책임을 묻고 나가서 돈 벌어 오라고 구타를 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얘기를 할 때 울기까지 했던 그녀였다.

한 15분쯤을 달려 간 그녀의 집은 5층짜리 아파트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볼일을 보러가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나들이라도 되는 양 좋아했다. 별다른 이동수단이 없어 내가 그녀를 업고 계단을 내려와 특장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동사무소로 가는 내내 그녀는 ‘비 오는 바다가 너무 보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졸라댔다. 그녀의 본연의 일은 마치 잊은 듯 했다.

순간, 누구의 도움 없이는 18평 자신의 집 외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녀가. 학교에 가면 밤늦게 돌아오는 중학생 아들을 가진 그녀가. 그녀를 이유 없이 때리는 남편을 가진 그녀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녀가 차창 밖을 내다보는 동안 차는 무심히 달려 동사무소로 달렸다. 동사무소의 볼일은 몇 가지 준비부족으로 다 보지 못했다. 우린 내일 다시 들러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을 만나기로 하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출발했다.

그녀는 다시 바다타령(?)을 했고 그럼 우린 내일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커피를 사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해 나는 다시 그녀를 업어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그녀의 친청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셔서 돌아오지 않아 문이 잠겨 있었다. 내 등에서는 땀이 흘러 내렸다. 그녀는 그냥 땅바닥에 자신을 내려놓고 가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올 거라고. 나는 차 안으로 가서 기다리자고 다시 내려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하다며 한사코 거절을 했다. 그녀를 업은 채 옥신각신 하다 일단 그녀를 집 앞에 내려 놓았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맙다며 잘 가라고 인사하는 그녀를 두고 도저히 돌아설 수 없었다. 난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 차 안에서 휠체어를 꺼내와 그녀를 앉히고 비가 잘 보이는 곳에 그녀를 데려다 놓은 후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허리와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휠체어를 가지고 올라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그녀 핸드폰을 전화를 하니 20여 분쯤 기다려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며 덕분에 비 구경 너무 잘 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내일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을 행복한 웃음이 그녀의 삶에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명주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포항지체장애인협회에서 회보를 만드는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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