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공동기획단이 오는 4월 20일까지 실시할 계획으로 3월 26일 밤부터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첫날 노숙투쟁을 완수한 장애인이동권연대 이규식 연대투쟁국장. <에이블뉴스>

“분하다. 오늘 사태가 정말 분하다. 종로경찰서를 박살내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지 밤샘 노숙투쟁을 사수해 앞으로 노숙투쟁을 지켜나갈 것이다.”

27일 새벽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 앞에서 전동스쿠터에 탄 채 노숙투쟁을 완수한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이규식 연대투쟁국장은 경찰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 국장은 “다른 때보다 경찰이 심하게 장애인들을 다뤘다”며 “마음먹고 연행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420공동기획단 문화제 강경 진압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열사 2주기 추모제 및 장애인차별철폐촉구 문화제가 열린 지난 26일 밤 경찰은 문화제 참가자를 강제로 연행했다. 불법 집회라는 이유였다. 이 행사를 연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은 집회가 아닌 문화제라는 것을 경찰측에 설명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경찰은 문화제가 진행되던 도중인 밤 8시40분경부터 본격적인 진압을 시작해 밤 10시경 문화제 참가자 70여명을 연행했다. 참가자들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5개 중대 병력이 투입된 경찰의 물리력을 막아낼 수 없었다.

몸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420공동기획단 관계자 10여명은 간신히 인근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이들은 굳이 몸을 피한 이유는 이날 밤부터 오는 4월 20일까지 진행하기로 한 노숙투쟁 때문이었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밤 11시경부터 경찰은 병력을 빼기 시작해 자정 즈음 전경 병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하지만 사복경찰들은 27일 새벽 1시가 넘도록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순찰하며 노숙투쟁 차단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규식 국장, 첫날 노숙투쟁 완수…밤샘 시위

27일 새벽 가로등불 아래 장애인이동권연대 이규식 연대투쟁국장이 전동스쿠터를 탄 채 외로이 서 있다. <에이블뉴스>

하지만 경찰은 장애인들의 투쟁 의지를 꺾지 못했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이규식 연대투쟁국장은 비롯한 420공동기획단 관계자 10여명은 사복경찰이 모두 철수한 것을 확인한 후 새벽 1시30분경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첫날 노숙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한 인물은 이규식 국장이다. 이 국장은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36살의 미혼 장애인이다. 이 국장은 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한 인물로 19살에 되어서 집을 나와 10년 동안 경기도 일대 시설을 전전하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새 삶을 찾았다.

27일 새벽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 국장이 들려준 지난 인생이야기는 차별과 차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외로이 홑이불 한 채로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켜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야학에 처음 갔는데 박경석 교장선생님이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교장선생님의 머리가 짧았었다. 어느날 교장선생님이 ‘가자’하고 말해서 따라나섰는데 그게 바로 에바다 투쟁현장이었다. 처음으로 전경을 보았고, 처음으로 투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이 국장은 31살 때가 되어서 처음으로 술과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성격도 바뀌었다. 그는 “성격을 버렸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19살 시설에 들어가기 전 방안에서만 살던 때와 10년 동안 시설에 갇혀 살던 때는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한다.

그가 노숙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던 이유

장애인이동권연대 이규식 연대투쟁국장의 동료들이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자 홑이불을 덮혀주고 있다. <에이블뉴스>

“10년 동안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만 돌아다니며 살았다. 맨 날 똑같은 사람만 봤다. 가끔 자원봉사자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돌아다녀야하는 성격인데….”

그가 야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전동스쿠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난 이후 ‘세상이 참 좋구나’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쿠터는 내 발”이라고 말하는 이 국장은 “이것만 있으면 내가 다니고 싶은 곳에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31살 때 그걸 알았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그가 가슴이 아프고,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교육문제이다. 그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는 6남매 중 둘째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생들이 학교에 들어간다고 좋은 신발과 가방을 사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다. 마징가제트, 그랜다이저, 아톰 등이 그려진 신발과 가방을 갖고 싶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부모님께 한 달 동안 졸라댔지만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방에서만 살아야했다.”

걸을 수 없는 그가 학교에 입학했던들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지만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은 가슴속에 한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그가 밖으로 나와 처음 찾아간 곳이 정립회관에 위치하고 있던 노들장애인야간학교였다.

야학을 약 7년째 다니고 있지만 그는 공부에만 매진할 수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장애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으로 맞서다보니 그에게 투쟁은 이미 또 다른 삶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의 투쟁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동스쿠터다. 지난밤 경찰에 연행될 위기를 모면했던 가장 큰 덕택도 전동스쿠터 때문이었다. 그의 스쿠터는 보통 스쿠터보다 커서 전경 버스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이 전동스쿠터는 이동권연대에 나오는 상근비를 받아 할부로 직접 지난해 8월 구입한 것이다. 그는 230만원의 고가이지만 상근비 대부분을 매달 털어 넣어 “이 달로 할부가 끝난다”고 기뻐했다.

전동스쿠터는 그에게 삶의 동반자이지만 전동스쿠터 때문에 목숨을 일을 뻔한 적도 있었다. 지난 99년 6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한 적이 있고, 지난해 5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아 계단으로 내려오다 떨어진 적도 있었다. 모두가 전동스쿠터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현재 그는 장애인이동권연대 박현 사무국장, 장애인문화공간 최재호 대표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던 즈음에는 집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제 집밖에서의 삶은 그에게 너무 자유롭다.

"차별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

그에게 “추운데 밤샘 노숙투쟁을 왜 하느냐”고 뻔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뻔한 대답을 받았다.

“이동, 교육 등 장애인들은 너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차별받는 비장애인들도 있지만 그들보다 더 심한 것 같다. 그 차별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 노숙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노숙투쟁을 한다고 약속했으니까, 약속을 지켜야하지 되지 않느냐?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난 밤 경찰서에 보낸 420공동기획단 관계자 70여명은 27일 오전 대부분 풀려났다. 하지만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가 집회 주도혐의로 아직 나오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420공동기획단은 어제 마무리를 하지 못한 문화제를 오늘 밤 또다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규식씨는 지난밤부터 한번도 떠나지 않고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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