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113주년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장애인들. <에이블뉴스>

어제 나는 함께 일하는 동지들과 고려대에서 열린 4,30 노동절 전야제에 갔다. 중증 장애인들의 걸음으로 40분이나 걸리는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가슴이 탁 트였다.

고려대 노천 극장을 꽉 메는 2만여명의 노동자, 농민, 학생들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길을 터 주며 투쟁이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의 동지애를 느끼며 자리를 잡았다. 여러 투쟁들을 하는 동지들의 때로는 힘차고 때로는 분노와 울분을 터뜨리는 발언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담배만 계속 피웠다. 다채로운 문화 공연과 상징의례까지 마치고 동료 형의 차를 타고 새벽 공기를 마치며 돌아오면서 나는 우리의 장애운동을 생각해 보았다.

20여년이 지난 우리의 장애운동, 수많은 장애인들의 차별과 억압 속에서 많은 선배님들이 만들어 오신 운동이다. 수많은 투쟁과 피와 땀으로 여기까지 장애인들의 생존과 권리를 쟁취시킨 운동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장애운동은 어떻게 가야 올바른 것이고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작은 힘을 실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지금의 장애운동은 크게 두 축이 있다. 다양한 우리의 권리들을 위해서 열심히 투쟁하는 노력과 좀 더 많은 장애인 대중들을 만나면서 힘있는 장애운동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다. 나는 두가지 노력들이 모두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는 찢어져서 따로 가지 말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가야한다.

아무리 힘찬 투쟁이라고 해도 장애인 대중들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그 투쟁은 오래갈 수 없다. 그리고 그 투쟁이 승리해서 성과물을 얻는다고 해도 그 성과물을 올바르게 지켜내려면 정치력이 필요한데 정치력은 대중들의 지지없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선배님들의 피나는 투쟁으로 '장애인고용촉진법률' 이라는 엄청난 성과물을 얻어냈지만 왜 지금은 이 법이 거의 유명무실 해졌는가? 그것은 우리의 정치력이 부족해서이다. 몇몇 장애인 정치가들로부터 나오는 정치력이 아니라, 장애인 대중들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정치력 말이다.

한편 장애인 대중들을 만나고 이들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이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꼭 담보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올바른 운동성과 역동성(투쟁성) 이다.

'아무리 많은 물이 모인다 해도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면 그 물은 폐수가 된다.'

우리는 아주 폭넓게 친근하게 장애인 대중들을 만나야 한다. 절대로 그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어렵게 느껴지면 안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항상 고민과 문제의식을 안겨 주어 그들이 이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많은 장애인 대중들을 만나도 이런 활동을 못한다면 우리 장애인 운동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데 앞으로 우리의 장애인 운동은 끊임없이 장애인 대중들을 만나고 일깨우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아무리 어렵고 느린 길이라고 해도 이것을 못한다면 장애인 운동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수많은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노조를 만들어내고 투쟁하는 113주년 노동절을 맞이하며 드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