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하내용이 실린 산업자원부 홈페이지.

우리나라에 장애인복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1년 유엔에서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부터이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하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것 외에 개별 장애인들이 직접 느끼는 이렇다 할 혜택은 별로 없었다. 그 후 88서울장애인올림픽을 거쳐 1989년 장애인등록이 시작되면서 등록장애인에게는 이런저런 복지혜택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애인등록 진단비도 무료였었다. 무료로 장애인등록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장애인등록을 망설였다. 그래서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등록을 장려하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었다. 이제 장애인등록은 더 이상 장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슬프게도 약간의 복지혜택이나마 받으려는 장애인등록 문의가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장애인복지시책은 40여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40여가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장애인단체 등에서 끈질기게 노력하고 투쟁한 결과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장애인들에게 주어진 혜택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큰 혜택이 자동차에 관한 것이었다.

그 동안 시행방법이 몇 차례나 바뀌기는 했지만 장애인 차량은 LPG 연료를 할인가격으로 사용할 수가 있고 1∼3급 장애인은 특별소비세와 자동차세를 감면 받을 수 있다. 그밖에도 항공료 철도 전화 휴대폰 인터넷 등의 이용요금이 할인되고 지하철은 무료이다. 그리고 국공립공원 및 미술관 박물관 등의 입장료도 무료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거의가 선택사양이라는 것이다. 차량을 구입할 형편도 안 되는 장애인에게 특별소비세나 자동차세 감면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년 내내 아니 평생을 가도 비행기는커녕 기차 한번 타 볼 기회조차 없는 장애인들에게 요금할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정말 어렵게 사는 장애인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세를 비롯하여 수도요금 전기요금 버스요금 등의 감면을 여러 차례 요구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민세는 내야하고 전화는 안 쓸 수도 있겠지만 수돗물과 전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철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불편해도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버스요금 할인도 절박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에 대해서는 마이동풍이었다. 그런데 1998년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정화원 회장이 부산시의회 의원이 되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관계기관에 요구하였던 주민세와 수도요금 및 전기요금 감면을 다시 거론하였다. 1년여의 노력 끝에 1999년 부산시의회에서 장애인수도요금 감면 조례안이 통과되어 2000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3급 이상 장애인 -시각장애인은 4급이상-월 수도사용량에서 10t을 감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도요금 감면조례가 통과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수도사업소 등 관계자들이 제일 난감해 하던 부분이 유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안이 생길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이나 최대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법안제정 등에 있어서는 처음이라서 망설였던 것이다. 물론 부산시에서도 전국 처음이라는 것에 부담을 가진 만큼 시행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처음 시도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다음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하게 따라갈 수도 있어 선구자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고 위대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장애인 수도요금은 2000년부터 시행되었지만 전기요금 감면은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7일 산업자원부에서는 올 3월부터 중증장애인은 전기요금 20%를 감면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애인복지혜택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2일 밤 10시께 전남 목포시 연산동 김아무개(67·청각장애4급)씨 집에서 불이 나 김씨와 부인(57·정신지체2급 장애인)이 숨지고 아들(23·정신지체3급 장애인)이 화상을 입었다. 이날 불은 김씨 부부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치 전기료 9만3860원을 내지 못해 오후 1시부터 전기가 끊기자 켜두었던 촛불이 방에 옮아붙어 발생했다. 김씨 아들은 불이 나자 곧바로 뛰쳐나왔지만, 김씨 부인은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깨워 피신하려다가 함께 화를 당했다"는 내용이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IMF 이후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사회 안전망 구축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개정하고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수도와 전기는 국민생활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겠다던 그 안전망 아래서 국민생활의 필수품인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이런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3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의 전기요금 감면을 환영하는 바이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을 금할 수가 없다. 이번에 시행되는 장애인 전기요금 감면은 이들 장애인 부부의 목숨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3월부터 전기요금을 감면 받는 장애인들은 마음으로나마 이들 부부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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