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는 모습.ⓒ에이블뉴스DB

이달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장애인활동지원 휴게시간’이 적용되며, 현장에서의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6개월간 계도기간을 뒀지만, 일부 활동지원기관에서는 시범적으로 휴게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본지가 취재한 결과, “제대로 쉴 수 없다”, “단말기만 쉰다”는 불만들과 함께 휴게시간 도입 철회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의 생존권과 활동지원사의 제대로 된 쉴 권리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불가피한 실정. 이에 활동지원 휴게시간 도입과 관련, 풀어야 할 숙제들을 정리해봤다.

(왼)‘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며 지난 17일 국회 앞에서 동시 1인 시위에 참여한 고위험희귀난치성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오)“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해 쉴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에이블뉴스DB

■특례업종 포함 VS 제외, 서글픈 약자싸움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주세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국회 앞에서 ‘고위험희귀난치성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이하 근장생존권보장연대)’가 피켓을 들고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이들은 활동지원사업이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며,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휴게시간을 거부하고 있다.

근장생존권보장연대는 휴게시간은 곧 ‘죽음’이라며, 생존을 위협받지 않도록 다시 특례업종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근육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인공호흡기 호스 분리로 인해 최근까지 4년간 3명이 사망했다. 휴게시간 중 생명을 잃게 될까하는 두려움과 절실함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할 것이다.

반면,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실질적 휴게시간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활동지원사들은 병가를 내고 며칠 쉬고 싶어도 연차도 없고 휴가도 없이 일한다.

인터뷰 중 알게 된 A활동지원사의 경우, 새벽6시에 도수치료를 받고 다시 일터에 나와 일했으며, 10년간 휴가 한번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의 ‘쉴 권리’ 또한 마땅하다. 단말기만이 아닌, 제대로 쉴 수 있도록.

장애계와 정당 측에 의하면, 활동지원사업이 특례업종으로 당장 돌아갈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현재 정부 정책 상 특례로 다시 적용되기 어렵고, 타 사업에 대한 형평성 문제 또한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특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특례냐, 아니냐’ 보다는 생존권과 노동권 모두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복지부의 휴게시간 대책이 비현실적이라는 점과 활동지원제도의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에 두 권리를 모두 보장하기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풀 주체인 정부를 향해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약자간의 싸움은 승자‧패자도 없이 그저 상처만 남을 뿐이다.

지난 3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소하 의원, 장애인-활동지원사-중개기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의 대책이 현실성 없는 미봉책이라고 입 모았다.ⓒ에이블뉴스DB

■대체인력 투입? 추가 확충 없인 ‘헛발’

보건복지부표 대체인력도 실효성이 의문이다. 복지부가 내놓은 휴게시간 대책은 자율준수, 교대 근무, 가족에 의한 휴게시간 대체근무, 그리고 이 대체인력 지원이 전부다. 가족이 없는 경우, 사실상 대체인력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복지부가 밝힌 계획은 고위험 중증장애인 846명을 대상으로 대체인력이 30분, 1시간의 휴게동안 서비스하는 내용이다. 대체인력에게는 교통비 명목으로 30분당 5000원, 1일 당 2만원씩, 월 최대 50만원 한도에서 지급한다.

이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하고, 30분, 1시간을 일하기 위해 긴 이동시간과 이곳저곳을 오가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물론 각각의 이용자들의 욕구와 특성까지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 인공호흡기 등 생명이 오가는 전문적인 케어를 요하기도 한다.

자,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인터뷰 중 알게 된 B활동지원사는 “죽었나 살았나 와서 보고만 가는 거냐”며 질겁했다.

중증장애인들도 하나같이 “활동지원사가 최중증장애를 기피한다”며 대체인력 또한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올해 활동지원사의 임금은 시간당 약 8100원 정도로, 낮은 수가(1만760원)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이나 연차수당 등 각종 수당은 꿈도 못 꾼다. 이에 케어 난이도에 따라 수가를 책정하는 ‘수가차등제’ 제안도 있었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없다.

더욱이 대체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마저 보이지 않는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6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100억 원을 확보해 어린이집 휴게시간 확보를 위한 보조교사 6000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활동지원사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이상진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총장은 이달 초 열린 국회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집 보조교사 확대처럼 활동지원사도 예산을 투입한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누구나 원하는 직업이 될 정도로 수가를 올리든, 대체인력을 투입하든 뾰족한 대책이 없으면 중증장애인들은 또다시 방치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애인의 목숨이 현실성 없는 활동지원에 저당 잡혀 있다’ 피켓을 든 모습.ⓒ에이블뉴스DB

■선택받지 못한 자, 중증장애인 ‘사각지대’

꼼꼼하지 못한 제도와 대책은 사각지대를 낳기 마련이다. 복지부는 활동지원 휴게시간 세부방안을 내놨지만, 이 모든 것은 846명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시군구가 판단한 활동지원급여량이 1일 평균 13시간이 넘는 인정점수 400점 이상의 ‘고위험 중증장애인’인데, 장애상태 또한 인공호흡기를 24시간 착용하거나 와상장애인, 가족 또는 타인의 돌봄 없이는 사망사고 위험이 높은 장애인만 해당된다.

복지부가 추산한 이 ‘고위험 중증장애인’은 전국 846명으로, 서울 257명, 경기 210명 등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6만여 명이 넘는 중증장애인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까?

복지부는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용자 준수사항 안내 및 교육 등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했지만 사실상 강제에 가깝다. 서비스 제공계약 및 상호협력동의서에 ‘휴게시간 규정 준수’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이용자인 장애인이 휴게시간 보장 책임을 떠맡는 셈이다.

또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생존의 위험은 중증장애인 누구에게나 있다. 현장에서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지도, 와상도 아닌 발달장애인들을 가장 큰 사각지대라고 꼽는다. 대체인력이 필요할 시 이들은 정부의 지원도 없이 활동지원기관에서 오롯이 책임져야만 한다.

활동지원기관은 가뜩이나 낮은 수가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수당을 챙겨주지 못해 범법자가 돼 활동지원사업까지 반납하고 있는데, 부담만 또 늘어난다. 휴게시간으로 너도나도 사업을 반납한다면?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중증장애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나쁜 제도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이뤄졌다.

문제는 활동지원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아무런 제도개선 없이 도입됐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사, 활동지원기관까지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2년 후에는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더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6개월간의 계도기간 동안 활동지원 특성에 맞는 휴게시간 도입, 그리고 당사자 모두 피해 없는 보완책이 만들어내야 한다. 장애인의 활동지원 받을 권리와 활동지원사의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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