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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학' 이론과 현장실천의 융합

포괄적 장애현상·문제, 수준 높은 학문·연구로 보여 줘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7-27 09:31:06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
가끔 학기 초 강의나 타 대학에 특강을 나가게 되면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다. 그것은 ‘과연 사회복지가 혹은 장애인복지가 학문이냐?’ 하는 질문이거나, 현장에서 강의할 때는 ‘현재 여러분들의 현장 실천의 바탕이 되는 이론적 기반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현장 전문가들이 쉽게 대답해 주지 않거나 아예 대답을 못한다. 필자는 후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기고문에서는 이론의 중요성과 현장실천에서의 융합과 활용이 핵심이다.

장애 현장의 전문가들이 무게를 두는 이론적 기반은 어떤 것들인가의 해답은 아마도 기초 사회 조사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장애의 여러 개념? 사회, 인권 모델 등 여러 모델? 권리기반의 현장 실천? 정상화 이론? 우선은 세계적으로 장애 학이 지배하는 활발한 연구 활동과 문헌의 증가와 함께 상당한 관심과 함께 성장일로에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유럽을 필두로 한 범세계적인 장애 운동의 확산과 특히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장애 학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대학가에서, 혹은 관련 영역에서 장애 학은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서 그 존재와 위상을 인정받은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철학에 속 하던 심리학이 새로운 학문 영역으로 인정되고, 겨우 사회복지가 오늘의 위상을 얻어내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왔던가? 한 때는 사회학과의 틈바귀에서 갈등을 했고, 한 때는 여학생들이 많이 진학한 사회사업은 남성 교수들에게 열등감을 주 것도 분명하다. 필자에게 익숙한 미국, 영국, 호주 등 외국 대학의 사례이다.

나중에는 사회정책에 기대면서 발 돋음 하려던 때도 있었고, 장애 학이 그 정체성을 굳힌다는 것은 현장을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한 두 개의 이론을 신봉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론과 패러다임은 변하게 되어있고, 변해야 한다. 마치 특수교육에서 통합교육으로, 동화적 통합(assimilation)에서 완전통합(inclusion)으로 전환하듯.

그러나 아직도 장애 학의 본질은 규명되지 않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너무 심한 주장일까? 아니라면, 분명한 것은 장애 학은 심리학, 사회학, 언어 학, 경제학, 인류학, 철학과 윤리학, 법학 등을 포괄하며, 기존의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여러 개념과, 가치와 이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학제적 학문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 오랜 장애 운동을 기반으로 등장한 장애 학이 구체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인가?

결국 장애 학이라는 것은 이제는 진부해진 장애의 개념이나 각종 서비스 공급이 핵심이 아니라 장애를 계속 고정화, 악화 시키는 사회자체의 본질, 지배담론과 세력, 삶의 질, 생존 할 권리 등에 대한 비판적인 논쟁이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진부해진 장애의 개념’이라니? 가깝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신체적으로 도전받는 'physically challenged'가 있다. 마치 장애인들은 무엇인가 극복해야 할 과제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인 것처럼, 아니 세상에 어려움이 없고, 극복할 도전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었던가?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Differently abled'에 장애인은 남다른 재능이 이어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는 안 되는가? 장애인이 가지고 있다는 ‘다른 재능’이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이며 왜 이런 것을 요구하는가?

왜 현장에서는 장애인의 권리 대신에 욕구(needs)만을 가지고 서비스를 접근하는가? 이것은 전문가들이 장애인을 통제하려는 권력 관계가 그 본질이 아니던가? 왜, 장애인들은 ‘보호’를 거부하며, ‘보살핌’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고 하는가? 이와 유사한 질문은 무수하다. 장애 학의 대상으로 정책, 서비스 제공과 실천의 과제도 있다.

예를 들어, 에이블뉴스의 기사에 의하면 15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장애를 가진 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대하여 ‘장애인 의원이 발의한 50여 개 법안은 모두 폐기되어 가결된 법안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그만큼 장애인비례대표 의원들이 장애인계에 미친 영향을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장애인비례대표 의원들’이 무력했던 것이 아니라 비장애의원들이 장애를 넘보는 사회의 지배담론과 세력을 대변한 것뿐이고, 장애인비례대표 의원들도 특정 장애 단체를 편향적으로 지지했거나 장애인비례대표 의원들도 장애계도 모두 함께 세력을 규합하는데 실패했던 결과이다.

생각해 보면 본래 장애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없다’는 온통 부정적인 것이었다. 장애인은 제대로 걸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다운이 증상이 있거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온통 할 수 없다 cannot’ 는 것이 모든 특성을 집약해 버렸다.

일말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장애란 사회 속에서의 살아가는 한 조건·제약’, 즉 장애인은 ‘차별, 격리와 분리의 대상으로 여러 부당한 제약 속에 생활했으며,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거부당한 삶을 강요받는다.’라는 인식의 시작이다.

이미 '유엔장애인 권리협약 해설'(김형식 외, 2019)에서 ‘장애인의 시민권 권리’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실로 이 개념은 2천 500년 전 도시국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로 올라가서 그리스와 로마의 시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권을 희구하던 시대환경에 적용되었다.

핵심은 ‘어느 시민이나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제나, 차별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향유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 구속받지 아니하고 완전히 평등하게 참여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적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떠한 형태의 차별과 분리 현상은 장애인의 살 주변에 모든 사고, 언어, 환경, 권력구조, 정보, 가치, 규범과 규제를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더 이상 장애는 비극이 아니며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작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인정받기 시작한 긍정적 이미지이다.

이것은 여권 운동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그리고 흑인들이 그들의 민권 쟁취를 위해 변화를 주도했듯, 장애도 당사자들이 먼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여 장애의 대안적 정의·개념을 창출해 냈다. 그것이 바로 장애의 사회적, 인권모델이며 장애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사고이다. 장애 학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외면 할 수 없고 이 계기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국가 속에서 ‘속박된 사회의 삶 disabling society’을 살아가고 있다. 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구교와 신교,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동계층과 집권층, 성적 소수자와 주류, 여성이 성 차별을 받으며, 흑인이 인종차별 속에서, 난민이, 가난한 사람들이 평등권과 인권을 박탈·침해당한 채, 평등과 불평등, 배제와 통합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인권을 회복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자존심과 독자성, 생각의 자유, 평등권의 회복이다. 누가, 어떤 사회가 이것을 억압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장애를 차별하고 구속하는 사회, 문화, 역사의 본질에도 문제를 제기해야하는 도전이 수반된다.

그런데 누가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가? 장애 학을 발전시켜온 저명한 학자들에는 장애 당사들이 상당수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위에 제기 된 문제를 다루는데 장애 당사자 이론가들에만이, 혹은 가족과 장애와 연고 있는 학자들이 모든 도전을 감수케 해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학문 영역의 학자, 연구자들이 공동과제로 떠맡아야 하는가?

필자는 고백하건데 지속적으로 ‘편견과 차별’을 문제로 제기해 왔지만, 장애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자칭 알량한 식자(識者)로 자처하며 사회 부조리의 한 국면에 집중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우선 장애 당사자 학자들이 먼저 과감하게 보다 포괄적인 문화, 역사, 사회구조 속의 장애현상과 문제를 높은 수준의 학문과 연구로 보여 주어야 장애 학이 학문적 위상을 강화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장애 당사자 학자들도 또 하나의 열등 학문으로서 ‘낙인’의 피해자가 된다. 분명한 것은 이제 장애 학은 학문의 지평을 넓혀야 하며, 구체적인 사회변화를 위한 도전을 받아들이고 다른 학문영역과도 적극적으로 합류해야 하며 연구와 이론으로, 그리고 현장의 인정을 받음으로 도전에 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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