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오늘의 기고문에서는 좀 딱딱한 이야기 대신 우리시대에 맞는 한 인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신문 지상에 연일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 발족…문 대통령이 월 1~2회 직접 주재’ 등 루즈벨트와 뉴딜에 관한 기사가 자주 눈에 뜨이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에이블뉴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도대체 누가 오늘날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실토하건데, 이야기는 2007년 말 필자의 편저 ‘희망의 대통령 루즈벨트’에서 비롯된다. (지구문화사 2007).

제목도 몇 번 바뀌었다. 진보를 표방했던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진보주의 대통령 루즈벨트’가 첫 제목이었다. 그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면서 평소의 소신대로 ‘장애인 대통령 루즈벨트’라 하였다. 그러나 그 제목은 루즈벨트를 너무 축소시키는 것 같았다.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가 실로 남들이 별로 기억해 주지 않는 장애인이었지만, 분명한 ‘희망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루즈벨트가 이렇게 위대한 세계적인 지도자였던 이면에 그가 1921년 38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15,000여 개의 기업이 파산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절망과 좌절 속에서 미국이 파산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첫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절대로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고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언변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통령을 물러나는 마지막 날에도 “강하고 활동적인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라고 국민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된 배경을 그의 신체장애와 신앙에 연관시키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최근의 신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화돼 속도를 냈지만 사실 한국판 뉴딜정책은 취임 이전부터 그려왔던 문 대통령의 구상이 알려졌다. 특히 '롤 모델'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핵심은 '잊힌 사람들을 위한'이 눈을 끌었고 반가웠다.

평생의 멘토이셨던 고 이윤구 박사님도 내 책의 추천 문에서 ‘이 책은 과연 잊힌 사람들을 위했던 한 대통령의 이야기 때문에 더욱 귀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영국의 윌슨 수상도 ‘이제는 1970년대 이후 로날드 레건과 대처가 주장하는 경쟁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1945-1970년대 루즈벨트의 뉴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즈벨트는 업적이 실로 대단한 대통령이었다. 가장 길고 처절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까지 집권했다. 한 마디로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미국 초유의 4선 대통령으로 12년 5주 동안의 집권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외교적으로 미국 역사상 최대의 분기점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원고에서 무엇보다 그는 사회에서 잊혀지고, 고통 받는 소수, 낙오되기 쉬운 국민에게 찬란한 꿈, 밝은 희망을 주었던 대통령으로 소개하고 싶다. 그런 큰 인물이 오늘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없을까 생각도 하며. 그는 실로 “잊힌 사람들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싶다.

1921년 8월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하여 뉴 브런스윅의 캠포벨로에 있을 때 그는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다.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으나, 강인한 투병의지로 고비를 넘기고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가 병상에서 투쟁하는 동안 현명한 부인 엘레노의 도움을 받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두 다리를 전혀 못 쓰는 장애인인데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 처한 미국을 구했다. 국민화합과 경제리더십의 상징인 루즈벨트 대통령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지도자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망의 대통령 루즈벨트”. 좌절한 국민들에게,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소시민들에게, 노후를 걱정하는 노인들에게, 가정의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이 우리 앞에 나올 수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는 없다”는 명언도 투병이라는 인간적인 시련 중에 터득한 진리였다. 그는 투병으로 병마를 극복하였지만 결국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특히 국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일지라도 용기를 북돋아 주고 도움을 주면 회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그의 믿음과 확신은 그의 수많은 연설문을 통해서, ‘난롯가에서 행한 국민과의 담화’에서, 정적들과의 격렬한 충돌에서, 그리고 그가 추진하고 제정한 수많은 개혁적 입법에서 잘 나타난다.

“과연 루즈벨트는 자신의 신체장애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러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문헌이나 자료도 많지 않았으며, 루즈벨트 자신도 본인의 장애에 대하여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애를 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도 ‘장애인 대통령’, ‘장애인 국회의원’ 등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지만 적어도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출마할 당시 미국인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휠체어 장애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였음이 분명하였다.

루즈벨트의 전기 작가이며, 자신 또한 소아마비 장애인인 휴 갤러가(Hugh Gallagher)는 ‘화려한 기만’이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상황을 들려준다. 감동적이어서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이 원고를 끝낸다.

대통령은 그가 연설할 연단까지 경호원과 그의 아들에게 부축되어 옮겨지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이 걷는 것처럼 보여 지도록 그 일을 해냈습니다. 연단에 도착하면 그가 부착된 강철 보조기 고정 쇠를 채우고 바닥에 고정된 강연탁자의 특수 손잡이를 꽉 잡고 선 채로 감동스런 연설을 했습니다.

그가 재향 군인병원을 순시할 때에는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의 휠체어는 젊은 미국부상병들에게 ‘자네도 그 병상에서 일어나 뜻 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흑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하워드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할 때에도 그는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있음으로써 기본적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보다 이미 한 세대 전에 “자네들도 승리할 수 있다(You shall overcome!)”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설이 끝나면 대통령 일행은 다시 기차로 돌아간다. 철도변에 늘어서서 마지막 환호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지역의 유지들과 정치인들이 자동차를 타고 대통령 행렬의 뒤에 합세한다. 이제 대통령은 그가 기차에서 내리고 탈 때에 사용하는 램프 앞에 차를 멈춘다. 그가 램프를 이용하여 기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 몇 년 동안 대통령을 수행하던 시끄러운 기자들을 포함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정적들마저도 이 중증의 장애인이 램프의 손잡이를 그의 크고 강한 손으로 꽉 움켜지고 어깨와 팔뚝의 근육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며 아주 힘겹게 기차에 오르려고 애 쓰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독일의 메르켈 수상도 ‘발달장애를 겪었던 어린 시절에 이미 정치인으로서의 훈련을 혹독하게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었던 메르켈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후에야 움직였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한 일화만 소개하고 마친다. 루즈벨트가 처음 은행위기에 관한 주제로 ‘난롯가의 담화’를 시작했을 때 한 방문객이 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 어려운 은행의 문제를 쉽게, 명료하게 설명하셨는지요?” 하고. 보좌관이었던 루이스 하우가 이렇게 회상했다

“프랭클린은 의자에서 휙 돌려 앉으며 밖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를 가리켰습니다. ‘저 사람 보이지? 내가 은행위기에 관한 연설문 구상을 하던 그날부터 저 사람은 저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어. 옳지! 내 연설문을 저 사람이 이해하도록 써야겠구나 하고 작정을 했어. 그래서 나는 저 사람을 앞에 놓고 연설문을 쓰기 시작했던 거야.’

이 긴 기고문에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루즈벨트는 인간의 고통은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대통령이면서도 감수해야 했던 편견의 장벽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빈곤과 가난, 인종, 장애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벽을 낮추는 일로 노심초사했던 대통령. 아울러 그는 자주 ‘품위 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적당하고’, ‘적절한’, 그리고 ‘이성적’인 삶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편견과 차별로 인한 장애인의 문제를 고심하는 이들이 추구 하는 것이 바로 ‘품위 있는 인간’의 삶이 아니었던가? 아마 독자들도 아래의 연설문에 공감 할 것 같다.

버락 오바마의 영 부인 미셀의 강연 중에서 “저도 사람들이 ‘버락이라는 사람이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아직 미국이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 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저는 이해합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이 나라의 인종주의와 차별과 억압의 쓰디쓴 잔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유산입니다.” <경향 7.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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