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진순 소장.

중증장애인들이 한강대교 북단에서부터 노들섬까지 기어서 행진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가 기어서 가는 것은 중증장애인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표현이며, 절박함이며, 처절함이요, 분노이다. 그리고 우리를 시설과 골방에다 소외시키고 가버리는 세상을 멈추기 위함이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고, 함께 가고 싶은 투쟁이다.”라고 그들은 밝혔다고 한다. 노들섬이란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기 위한 부지로 결정한 곳이며, 이 사업에는 7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이 한강대교 아스팔트 위를 기어서 화려한 오페라하우스 궁전까지 가겠다는 것은, 이제 자신들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너무나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이루어내기 위한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은 혼자서 신변처리도 어려운 처지에 43일 동안 비바람 치는 날에도 시청정문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를 먼저 짓기보다는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먼저 약속하라”고 촉구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이나 분노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구조적 틀 속에서 ‘빨리 빨리의 문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곧 바로 개인의 능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만 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논할 때 인권적 차원에서보다는 시혜적으로 베푸는 입장에서 논하기가 일쑤였다.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인간답게 살고 싶은 최소한의 욕구마저도 외면당한 채 시설이나 골방에다 유기되는 일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되게 되면 중증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타인이 행위의 주체가 되어 가족이나 자원봉사자로부터 불안정한 혜택과 서비스를 받아오던 것을 활동보조인서비스라는 제도를 통해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로써 자신이 행위의 주체가 되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중증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활동보조인이라는 전문직업인에 의해 일상생활을 선택과 결정이라는 계획 하에 관리해 갈수 있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도화하라는 중증장애인들의 요구는 어쩌면 너무나 오랫동안 감금되다시피 방치되어오던 중증장애인들의 분노와 한이 서려 있는 피맺힌 절규였다. 그들이 기어서라도 가고 싶어 했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거기에 담겨있는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희구와 소망을 비장애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번쯤 가슴으로 느껴 보았을까? 아니면 퇴근길 한강대교의 정체된 차안에서 자신의 갈 길을 멈추게 하는 장애인들의 돌출행동에 대해 짜증으로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을까?

무릎 보호대가 찢겨져 나가고 발톱이 빠져 피가 흐르다 마침내 탈진해 응급차에 실려 가는 중증장애인들의 모습은 이 나라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해 차별과 모멸감으로 외면해 왔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스팔트를 녹이는 그들의 분노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를 전율처럼 느끼며,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온 지난날들 속에 차별과 비인권적 실태에 대해 그처럼 사력을 다해 온몸으로 저항해 본적이 있었던가를 진심으로 되돌아보게 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노숙투쟁으로 표현해 왔던 중증장애인들의 요구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던 서울시가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를 전격 수용하며 합의서를 발표했다. 다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애인에 대한 선심성 공약들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문제마저도 중증장애인들의 시위와 농성을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한 행정당국의 눈속임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바라건대 이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문제만큼은 사회적 약자가 처한 비인권적 실태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발이라는 것을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된다면, 결코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요구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정책입안자들도 곧바로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이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를 통해 시행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 제도의 필요성은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에 대한 정책의 패러다임이 이제는 수용시설이나 재활을 통한 환자의 개념이 아닌 자립생활을 통한 인권의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하였더라면, 내가 만난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서비스만 있었다면,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생을 포기하듯 자신을 절망 속에 방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가족이 아닌 그 누군가와 대화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라고 목이 메여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아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기어서라도 도달하고자 하는 그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우리의 투쟁은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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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산 사랑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진순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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