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 장생이 시각장애인이 되는 장면.

입소문이란 게 무섭다. 영화 <왕의 남자>는 순전히 입소문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왕의 남자>가 대통령을 은유하고 있고 대통령의 남자는 누구라고 하는 소문이 나면서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이 줄줄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런 기사를 본 사람들은 그럼 나도 봐야지 하는 심리로 <왕의 남자>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덕분에 <왕의 남자>는 우리나라 영화 흥행 기록 1위의 자리를 탈환했고 4월말까지 극장에 상영이 된다고 하니 4500만 인구 가운데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민의 영화로 기록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뭘 줬을까? 허수아비 임금이 정치를 망쳤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허수아비 임금과 ‘아니되옵니다’만 되풀이 하는 중신들에게서 오늘의 정치판을 느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왕의 남자>를 본 사람들은 공길 역을 맡은 영화배우 이준기가 정말 여자처럼 예쁘다는 말만 하는 것을 보면 관객의 눈은 이준기의 매력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왕의 남자>를 몇일 전에야 봤다. 휠체어를 타고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꼭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본 영화 <왕의 남자>가 나를 놀라게 했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광대 장생과 공길은 시골의 남사당패에서 불의에 저항하다가 쫒기는 신세가 돼 도주를 하는데 그들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안전한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행복한 얼굴로 시각장애인 연기를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뭘 뜻하는지 몰랐다. 그저 영화의 재미로 여겼다. 그런데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 장면이 두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암시였다는 것을 알았다.

장생은 왕의 남자로 총애를 받고 있는 공길을 모함하기 위해 꾸민 계략에서 공길을 구하려다 눈을 인두로 지지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장생이 시각장애인이 된다. 대사 가운데 앞이 안 보이는 맹인이 됐다는 것이 몇 번 나오는데 만약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면 눈먼 장님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눈먼 장님 이란 표현이 고전적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더 맛깔스런 대사라고 생각했을 텐데도 앞을 못 보는 맹인 이라고 정중히 표현했다.

현대물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병신이나 장님이란 표현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배려이다. 이토록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왕의 남자>인데 장애인들은 이 영화에 대해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 왕의 남자 속의 장애인은 아주 긍정적인 모습이다. 우선 장애 원인이 후천적이라는 점이다. 시각장애는 선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장생처럼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시각장애가 불능이 아니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시각장애를 갖게 된 장생이 그 전과 다름 없이 줄타기를 하며 묘기를 부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시각장애가 사람의 능력을 송두리째 빼앗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장생의 당당한 외침과 줄 위에서 하늘로 비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것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언제든지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씨. <에이블뉴스>

그리고 천민으로 조선시대 온갖 차별을 받던 광대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왕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었다. <왕의 남자>는 이제 새롭게 입소문이 나야한다. 왕의 남자는 소외된 사람들의 카타르시스 영화이고 시각장애인을 배려한 장애인 영화라고 말이다.

공길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공길은 요즘말로 트렌스젠더 즉 성적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공길의 아름다움은 여성미보다 장생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는 신의와 시각장애인이 된 장생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긍정적인 장애인인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영화 <왕의 남자>는 소외와 장애라는 시각으로 다시 보면 더 깊은 인생의 맛과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의 필자 방귀희씨는 현재 솟대문학 발행인이자 KBS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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