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사무국장. <에이블뉴스>

‘왜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란 질문에 난 지금도 시원스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장차법이 갖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제정의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시원스럽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이윤과 효율을 중시하는 지금의 자본의 사회에서 모든 것에 배제되어 있던 장애인, 그들의 삶이 얼마나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고 전 생애에 걸쳐 장애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들을 법적 수단으로 얼마나 어떻게 강제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ADA(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법이 80년대 만들어지면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미국은 ADA법이 제정되기 20~30여년 전 교육과 노동에서 최소한 기회의 평등이라는 원칙이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며 자립생활운동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애인관련 정책이나 사회적 인식들은 분명히 미국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실제 장애인들이 법의 효력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식과 보안장치들이 더 갖추어져야 한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기대감들을 크게 갖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나 그래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진정한 당사자 중심의 투쟁으로…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의 움직임이 시작된 건 내 기억으론 2001년 한 지방에서 모 단체가 한국에도 ADA법과 같은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전이 시작된 것이 초기 발단이었다. 그 후 많은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드디어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라는 장애운동의 역사상 보기 드문 전국적인 연대기구가 결성되었다. 그 후 여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갖으면서 구체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이 완성된 후 드디어 2005년에 의원발의를 통해 국회에 공식 발의되었다.

장애인 관련 법안들이 선진국가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들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실질적인 강제수단이 없는 껍데기만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성문화되어버린 법안들이 때문인 것이다. 장애인편의증진법이 있긴 하지만, 아직 공공기관 조차도 장애인의 편의시설 설치율이 낮은 편이며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있지만, 고용촉진기금 고갈로 고용장려금 축소, 폐지가 되거나 장애인의 실업률이 일반 실업률에 비해 8배가 넘는 것도 이러한 것들을 강제할 만한 강제수단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강제수단이 없는 껍데기로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노동이나 교육이나 철저히 차별받는 중증장애인들의 욕구들과 목소리들을 모아 투쟁의 현장을 조직하지 못하고 그들이 스스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들이 미흡했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당사자 스스로 투쟁의 현장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들이 뚜렷이 드러나는 현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 걸쳐 장애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드러나지 않게 가해지는 차별을 받았던 심각한 문제이며 그러한 차별들을 없애기엔 법적 장치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생각할 때 당사자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차별에 대해 사회에 담론화시키고 보이지 않게 가해지는 그러한 차별들을 없애는 올바른 내용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장애민중의 염원을 담아…

2004년 연말 우리는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을 통해 만들었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제정의 기억이 있다. 이동권 투쟁을 시작할 무렵 이동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 했던 사회적인 인식을 소수의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을 통해 저상버스 의무화라는 큰 성과를 얻어 내었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자립생활의 권리 또한 이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성과와 인식들이 자리 잡히게 된 것은 장애라는 이유로 인간이 갖는 최소한의 욕구와 선택, 그리고 권리들을 빼앗겨 살아왔던 중증장애인들의 아픔들이 있었고 그러한 아픔들을 현장에서 실천해 왔던 노력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아픔들과 경험들을 단지 개인의 삶 속에서 묻혀버렸다면 아직도 우리는 저상버스를 실제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파 했던 중증장애인들의 염원들이 투쟁을 만들었고 그 투쟁이 사회를 바꾸어 가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장애인의 차별들을 진정코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민중의 염원을 담는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고 그 투쟁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바로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집단의 이익에 의해서 정치적인 치장물로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차별 받으며 살아야 했던 480만 장애인들의 염원을 담아 제정되어야 하며 이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내용들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선언적 의미로 남을 수밖에 없을 사회적 차별금지법이 아닌 우리는 개별법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ADA법은 최소한의 능력이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법이라 하면은 나는 능력위주가 아닌 모든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005년에 그렇게 제정을 원하였지만, 제정되지 못하고 올 해로 넘어와서 안타깝고, 그 이유가 장애인계가 하나가 되지 못해서였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동권 투쟁의 경험을 통해 아직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올해는 제정되기 위해 투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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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는 '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를 주제로 특별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계가 주장하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왜 독립적이어야 하는지 주장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사무국장님이 보내오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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