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기업에 다니다 30대 후반에 여러 장애를 갖게 된 중복 장애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불편한 장애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시각장애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운 일인지,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만날 수가 없다. 바깥 활동을 해야지 다른 친구를 만나곤 할텐데...시력을 점점 잃으면서 친구도 점점 떠나갔다.

나는 10여년 동안 집에만 있다가 활동지원 제도가 생기면서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장애인복지관에 나오니 내가 장애를 입기 전에는 못 보았던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여수시에 그렇게 많은 장애인이 있는지 몰랐다. '쯧쯧쯧'하는 사회적 편견에 장애인복지관으로 숨어 들어온 사람도 있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장애인복지관으로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각장애인 중에 운동이나 시문학교실, 노래교실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복지관에 오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중복장애기 때문에 활동지원 시간이 많지만 다른 시각장애인은 그 시간 가지고 복지관에 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1년 전 나는 혼자 살기 연습을 하려고 임대아파트를 얻어서 독립을 했다. 75세인 어머니께서는 내가 언젠가는 혼자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허락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나중에 가라고 했다.

너무 걱정을 많이하셨기에 주중에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거기서 살기로 하고 금요일에 어머니 집으로 와서 살기로 했다. 그래도 걱정하시기에 집 한 채 더 생겼다고 마음 편하게 사시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1년 동안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는데 이 집 저 집으로 왔다 갔다 하니 잠을 자고 일어나면 집 구조가 헷갈려서 여기에 쿵 저기에 쿵. 결국에는 서랍장을 받고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나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사고는 시각장애인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살기 위해서는 활동지원 제도는 아주 유용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장애등급제 폐지로 새로운 인정 조사 문항을 보니 중복장애인인 나의 견해로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와, 걷기 힘든 뇌병변 장애, 언어장애인이다. 몸이 1000양이라면 눈이 900양이라고들 한다.

나는 중복장애이기 때문에 각 장애에 대해 비교할 수 있다. 뇌병변장애만 있었을 때만해도 겨우 20 미터 정도 걸을 수 있었고, 가족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언어장애가 심했지만, 그 몸 상태로도 택시를 타려고 할 때는 수첩에 글을 써서 그 장소 근방에 데려만 줘도 혼자서도 천천히 찾아 갈 수 있었는데 시각을 잃고 난 후에는 아예 시도 조차도 못하게 되었다.

복지관에서 알게 된 지체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다. 턱이 있는 음식점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 말고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못가는 데가 없이 자유롭게 다닌다. 뇌병변장애가 심한 또 다른 나의 친구는 싸우면 나를 이길 수가 있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눈에도 시각장애가 무력하게 보였나 보다.

시각장애인은 눈이 되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많은 부분에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비록 눈은 어둡지만 세상에 빛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심한 장애인과, 안 심한 장애인으로 나눈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등급제 폐지 정책의 핵심인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시각장애인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서비스 지원 조사문항에 실망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활동지원 제도는 신체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시각장애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회에 대해 상상하곤한다. 설령 그런 사회가 오는 것이 더디더라도 시각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당사자 목소리 공유 프로젝트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들' 일환으로, 시각, 뇌병변, 언어 장애를 가진 이형근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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