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5일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 폐지 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때문에 교내 기념행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영란법이 제정됐기 전까지는 스승의 날이면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가 있었다. 학생들 중에는 성의껏 준비한 작은 선물도 선생들에게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을 부정한 뇌물로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부모님과 같은 선생님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생각되었다.

부모님은 몸을 낳아주었다면 선생님들은 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낳아주는 부모님들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많은 지식들뿐만 아니라 평소에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내게도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들이 있어 지금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와 같은 뇌병변장애를 가지신 사회선생님과 소아마비를 가지신 수학선생님 덕분에 이름이 없기는 하지만, 꿈이었던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의 꿈인 자립생활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분은 1년 차이를 두고 내가 재학 했던 특수학교로 부임해 오셨다. 사회선생님께서는 내가 중학부 2학년 때 부임해 오셨는데 그 때 나는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진로문제 때문에 큰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말로는 담담하게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시설에서 살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던 내가 궁상맞게 생각되어 몹시 싫었다.

뇌병변장애를 이겨내고 특수교사가 된 사회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부활한 헬렌켈러처럼 보였다. 나도 사회선생님처럼 공부해서 꿈을 이루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 내 모자랐던 생각으로는 못할 것만 같았다.

중등부까지 특수학교를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일반학교에 진학해서 중상위권에 성적을 유지했던 사회선생님처럼 나는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못했다. 겨우 일반교과서를 이해하는 수준 밖에 안 되었던 것이 나의 학습능력이었다.

비장애인 두 동생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에 나갔던 만큼 집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선생님께서 꿈을 위해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 하라고 할 때 나는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이에 사회선생님께서는 할머니께서 계시니까 지금은 그런 말 할 수 있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너를 보살필 사람 없다고,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공부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마음에 박혔지만 공부를 쉽게 시작하기 못했다.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고 쳐도 심한 장애로 대학생활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운이 좋아 대학을 졸업 할 수 있어도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 있어서다.

이런 나의 생각을 없애준 선생님이 바로 중학부 3학년 때 우리학교에 부임해 오신 소아마비 수학선생님이다.

수학선생님은 대학에 진학해서 적응하지 못해 포기해도 대학에 진학해보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막상 대학에 진학해서 생활하다가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범이 생긴다고 하셨다. 한번 해보지도 않고 왜 포기하는 핑계들만 찾고 있느냐고 하셨다. 나는 그런 수학선생님과 사회선생님의 권유로 수능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모자란 학습능력 때문에 수능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처음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하루 밤에 영어단어와 숙어 각각 100씩을 다 암기할 수 있었고, 영어해석도 별로 어렵지 않게 되었다.

전에는 쉽게 암기할 수 없었었던 국어와 사회 학습 내용들도 한두번 들으면 암기할 수 있었다. 그 때 사회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은 내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것을 장애인이란 좌절감에 공부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셨다.

이것은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다고 하셨다. 그 좌절감을 이겨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나도 생각하지 못하는 능력과 방법으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 옮은 말씀이었다. 대학시절이나 대학 졸업한 이후에 어렵고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두 분 선생님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하는 중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능력과 방법으로 해결하며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사회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나를 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낳아주신 부모님처럼 생각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글은 전주에 사는 장애인 활동가 강민호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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