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시청자를 품고 있다. 우리가 해품달에 열광하는 것은 달이 해를 품었기 때문이다. 해에 비하면 달은 형편없이 작다. 한마디로 달은 약자이고 해는 강자인데 약자가 강자를 품었다는 것 때문에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큰 것 속에 작은 것이 들어가는 것은 구속 같은 소속이고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포옹이다. 이런 아름다운 포옹을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집어삼키는 것이 우리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 다름 아닌 쇄신이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자는 해이고 소외계층은 달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권력을 태양에 비유했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달동네라 하여 해와 달은 상반되는 개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 짧은 다리의 역습이 시작됐다. 달이 해를 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외계층이 권력을 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외계층 그 가운데 장애민중이 권력을 품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언제부터 장애민중이란 표현을 썼느냐고 의아해하거나 반박할 자세를 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 장애인이라고 다 소외계층은 아니다. 장애인 사회에도 상류층, 중산층, 저소득층이 존재한다. 비장애인에 대해 비율과 재산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장애인 사회에 이 계층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장애인 사회의 상류층은 일반 사회에 편입돼서 살면서 장애인인 것이 유리할 경우에만 장애인 당사자 주의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비례 대표나 공공 장애인 기관 단체장이나 정부 기관 요직에 장애인 몫을 주장할 때 여지 없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장애인 중산층은 상류층에 올라가려는 꿈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거리감이 있다 보니 장애인 문제에 냉담하다. 장애인복지서비스가 만들어지면 누리기는 하지만 그 제도를 만들기 위해 나서지는 않기 때문에 참 애매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장애인 사회 저소득층이 우리 나라 장애인복지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복지가 아니면 생존권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민중은 장애인복지에 온몸을 던져 투쟁한다.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장애민중이다. 장애민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장애민중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장애인복지를 피부로 체감하는 사람이 장애민중이라 장애민중의 평가에 따라 표를 얻을 수도 있고 시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할 수 있는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장애민중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안정을 이루어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

이제 장애민중이 왜 권력을 품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존재하는 것은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다. 국민 가운데 소외계층의 안정이 가장 핵심이다.

그래서 권력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이 불만을 갖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얼핏 정부가 소외계층을 보살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외계층이 정부의 존재 가치를 부여해주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사회 상류층은 보수 성향이고 장애민중은 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상류층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고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장애민중은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늘 찾고 있는 속성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선거 때 정치인들이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계층이 바로 사회 소외계층인 것이다. 과연 장애인 사회의 소외계층인 장애민중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글은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진흥회 회장이자 방송작가인 방귀희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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