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포스터. ⓒ네이버영화

피아노에 ‘피’ 자도 몰랐던 배우가 오직 영화만을 위해 하루 5시간, 6개월간의 노력 끝에 이루어낸 명연주! 내 이목을 끈 건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내로라하는 명배우와 적극적인 홍보, 상영관 확보 덕인지 ‘그것만이 내 세상’은 장애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로는 드물게 지난 1월 17일 개봉이후 약 2주 만에 200만이 넘은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뻔하디 뻔한 신파를 배우들의 명연기가 살렸다.’, ‘15분만 봐도 결말을 엿볼 수 있을 정도다.’라는 관람객 평이 이어졌다. 허나 개봉 몇 주 전에 이 영화를 찜해 둔 난 주위에서 아무리 뻔한 내용이라고 해도 꼭 보겠노라 벼르고 있었다.

왜냐? 난 뻔한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영화도 재미있게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것보다도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발달 장애인이 이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무지 궁금했다.

코미디로 분류 되 혹여나 장애가 희화화되지 않을지 조금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발달장애인 진태 역을 연기한 박정민이 ‘발달장애인과 그에 가족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인터뷰한 기사에 안심을 했다.

소문대로 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자폐성 장애 연기와 전직 복싱선수 진태의 형 조하 역할을 맡은 이병현, 엄마 인숙 역을 맡은 윤여정, 그리고 진태의 피아노 실력을 알아보고 지지해 준 가율 역을 맡은 한지민을 비롯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했다.

다만 어느 한 관람객의 리뷰대로 15분 만에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영화는 결말을 끝까지 숨겨보려 했을 터이지만 관객의 예리한 눈은 속이지 못했다.

자 이제부터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장애인이, 특히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발달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꽤 어설퍼 보이겠지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니 비난은 사양한다. 하지만 비평은 환영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기억에 남아 있던 장면이 몇 가지, 되는데 하나씩 되짚어 보자면 이렇다.

영화 초반에 인숙이 어느새 자신의 키를 훌쩍 넘은 진태를 씻겨 주는 장면이 나올 때 난 이 장면이 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진태가 인숙만 의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겠으나 굳이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표현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진태는 정말 피아노와 격투기게임밖에 못할 거라는 걸 못 박아 버리는 듯 했다. 진태와 같은 장애인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편견만 부추기는 듯했다.

영화 중 진태가 노상방뇨 후 파출소에 끌려간 부분이 있다. 물론 코미디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코미디 영화인데 주인공이 전혀 웃기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이상할 거다.

이런 이유에서 매(?)의 눈으로 장애 관점에서 영화를 관찰한 나 역시도 저런 장면 하나쯤은 있어줘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비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에도 주인공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장면은 흔하디흔하기에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인 진태 또한 조금은 우습게 비쳐지더라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우려스러웠던 것은 아직도 장애인의 편견이 만연한 시대에서 장애인은 주변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을까 염려됐다. 진태만의 행동을 보면서 모든 발달 장애인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 일반화 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는 세상이라면 이렇게까지 염려스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본다. 비장애인 주인공이 우스꽝스럽게 나와도 그걸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관객을 웃기려는 행동을 취해도 모든 장애인의 특성이 아닌 그 사람만의 특성이라고 여길 거라 믿고 싶다. 한때 동양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잊힌 권투선수로 진태와 인숙 앞에 나타난 조하는 이 파출소 사건으로 배다른 형제인 진태에게 형제애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한편 식당에서 사고로 의족을 한 채 조하에게 걸어오는 가율을 조하는 물론 같은 공간에 있던 주변인물들이 빤히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연출한 거라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기가 불편했다.

조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의족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어 의족을 찬 가율이 구경거리가 됐다는 기분마저 들게 하는 이 장면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연인이 길 한복판에서 입술을 쪽쪽 빨아대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안더만 어째서 이 영화에서는 주변인물 시선이 가율의 의족을 그렇게 쫓아야만 했을까 영화 흐름상 사람들이 가율을 빤히 쳐다보는 그 장면을 꼭 넣어야 했다면 그 뒤에 사람들이 가율을 빤히 바라봤던 게 무안해질 만한 대사를 하나 쳐 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조하가 사람들에게 ‘뭘 그렇게 쳐다봐요. 의족 처음 봐요?’ 이런 통쾌한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허나 이 상황은 조하가 의족을 하고 있는 가율을 처음 본 상태였기에 영화 흐름상 조하보다는 가율이 이 대사를 치는 게 맞겠다 싶다.

자신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쾌하게 한마디 날려줬으면 했지만 가율은 자신의 장애를 죽도록 미워했다. 가율의 의족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린 조하에게 일침을 날려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지만 가율은 자신의 장애를 숨기고 싶어 하고 사라져 버리려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던지라 그런 기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혹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를 입었는데 어떻게 장애를 받아드리고 인정 할 수 있냐?’, ‘자신의 장애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하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난 장애를 가졌어도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설령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해도 다수가 보는 매체에서만큼은 장애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타지라 평 받더라도.

두 달 전쯤에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인 ‘채비’라는 영화가 선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이 영화야 말로 판타지물에 가까웠다고 본다. 오로지 엄마밖에 모르는 서른 살 청년 인규는 엄마와 이별을 앞두고 홀로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비장애인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인규가 직업훈련을 받은 지 단 몇 달 만에 홀로서기에 성공하는가 하며 구청의 사회복지사가 인규를 가까이서 보살펴 주는 등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면들을 보여 준 탓이다.

그럼에도 인규가 나와 내 친구들처럼 지역사회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준 덕인지 몰라도 오히려 인규, 자신에 삶의 속도보다 빠른 홀로서기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해졌다.

아쉽게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예상보다 일찍 막을 내렸지만 이 영화야말로 장애인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뜨린 영화가 아니었나!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다수의 영화는 장애를 불행이나 극적인 씨앗으로 연출하는 면이 없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장애인만 보여준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이겠지만 더 이상 장애가 불행의 덩어리나 엄청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사람으로, 특히 의존적인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장애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를 관람할 때마다 그런 영화는 장애인 배우가 직접 연기에 참여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운증후군을 가졌지만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강민휘처럼 장애인배우를 많이 발굴해 그들이 직접 연기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어색하지 않을 테고 어색함으로 인해 동반되는 불편함도 들지 않을 거란 생각은 나 같은 프로불편러만의 것인 걸까?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진태역을 맡은 박정민은 자폐성장애 연기를 아주 잘 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아무리 잘해도 당사자만할까 싶다.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잘 한다고 극찬하지만 말고 장애인 배우가 스크린에 나와서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은 비범한 재능과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이 아닌 나와 내 친구들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애인을, 희화화는 단박에 빼 버리고 자연스럽게 그려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흥행몰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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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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